[비필독도서 70] 궤도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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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명 앗아간 일본 JR탈선 참사...10년에 걸친 유가족의 분투

2005년 일본 아마가시키시에서 발생한 JR 열차 탈선 사고
2005년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글항아리

[PD저널=오학준 SBS PD] 2005년 4월 25일, 일본 효고현의 아마가사키시에서 열차 탈선사고가 일어났다. 'JR서일본' 산하 후쿠치야마선 쾌속열차가 곡선구간에서 선로를 벗어나 근처 아파트 1층에 충돌한 것이다. 사망자는 107명, 부상자는 562명이었다. 아사노 야시카즈씨는 하루아침에 아내와 여동생을 잃었다. 둘째 딸은 중상을 입었다. 아내의 '다녀올게'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2년 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의 원인은 젊은 운전자의 브레이크 사용 미숙으로 밝혀졌다. 그가 곡선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제때 밟지 못했고, 제한 속도를 넘어서 곡선 구간에 진입한 열차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해 탈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자는 사고 직전 과속과 오버런을 반복했다. 지각하면 일근교육이라는 징벌형 재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근처 이타미역에 정차할 때엔 오버런(정차 위치를 지나쳐서 정차하는 실수)을 범해서 선배에게 허위 보고를 간청한 상태였다. 운전자가 운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사노는 기관사의 주의 소홀은 진짜 원인이 아니고,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이 보고서에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원인으로 운전자의 부주의만 언급하는 건 누군가를 제물로 바치려는 시도가 아닐까? 진짜 문제는 'JR서일본' 조직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마쓰모토 하지무의 <궤도 이탈>은 이 사고의 진짜 원인을 찾으려는 아사노의 시선을 쫓는다.

                                                          글항아리 '궤도 이탈'

국토문제연구회에서 활동하며 '당하는 쪽'의 입장에서 다양한 주체들을 연결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던 그는, 'JR서일본'이 진지하게 사고에 대해 반성하고 원인을 검증해 그 결과를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를 요구했다. 그래야만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고, 다시는 똑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요구를 "유가족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불렀다.

그런 아사노의 곁에는 사고 피해자 모임인 '4.25 네트워크'가 있었다. 네트워크를 주도한 후지사키 미쓰코씨는 14년 전 인쇄소를 경영하며 시가현의 철도사고 유가족들을 위한 소송자료를 제작해 준 경험이 있었다. 사고로 딸을 잃고 그녀가 과거의 유가족들에게 연락했을 때, 그들은 피해자들의 연대를 추천했다. 과거의 유가족이, 오늘의 유가족을 모이게 했다.

유가족이 한데 모였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상실감을 견디기도 벅찬데 '가족을 팔아 신세 폈다'는 조롱이 계속됐다. 저열한 언어로 비웃는 이들, 얄팍한 지식으로 막을 길이 없는 사고였음을 '해설'하는 사람들은 유가족을 고립시켰다. 'JR서일본'도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장례식장에서 보상을 들먹이고, 유가족을 분리해 협상력을 약화시켰다.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임원을 자회사 사장으로 복귀시켰다가 들통나기도 했다.

익명의 악의, 무책임한 기업, 삶이 파괴된 피해자라는 삼중의 지옥도에서 아사노는 물러서지 않았다. 네트워크에서 정례 회의를 꾸준히 열었다. 활동에 감동한 참여자도 늘어났다. 사고의 사회화, 소중한 가족이 희생된 사고를 '우연히 일어난 불행한 일'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비화시키기 위해서 그는 긴 시간을 버텼다.

일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현장의 모습 ⓒ 일본교통안전위원회
일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현장의 모습 ⓒ 일본교통안전위원회

국철 민영화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데 마사타카는 'JR서일본'의 부사장으로 임명된 후 고속 차량 개발 및 보급, 배차 간격 축소, 노선 개량에 집중했다. 후쿠치야마선에도 쾌속 전철이 도입되고 복선 구간이 연장되는 등 개량이 이루어졌다. 선로의 최고 속도 제한이 완화되고 배차 간격이 늘면서 노선 이용객이 증가했다. 수익성은 높아졌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시간표가 개정될 때마다 기관사의 여유 시간이 줄었고, 안전 시스템 개량을 위한 설비 투자는 비용을 이유로 미뤄졌다.

이데 마사타카 본인은 '안전'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정작 안전의 내용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실현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진 않았다. 오히려 일근교육이 정신 재무장에 도움이 된다는 둥 전근대적 사고를 버리지 않았다. 그 사이 조직 내 안전의식은 희박해졌지만 그의 절대적 영향력에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가 고문으로 물러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사고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웠기에 그는 고문직에서 사임했다. 대신 ‘패전처리’를 담당할 후임 사장으로 기술직 출신의 야마자키 마사오를 내정했다. 이데가 승인하긴 했지만 야마자키는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조직 개혁에 진지한 태도를 취한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이데의 의도와 달리 사고의 진실 규명에 속도가 붙었다.

2009년 '4.25네트워크'는 공동검증위원회 설치를 요구했고, 야마자키 사장도 동의했다. 조직 전체의 결함을 파악해 다시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테이블에서 함께 보고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일근교육, 열차 시간표, ATS, 안전관리 체계 네 가지가 검증 대상이었다. 2년 후 발간된 보고서에서 'JR서일본'은 회사 조직문화의 문제를 인정했다.

또한, 아사노는 안전 팔로업 회의를 주도해 사고에 이른 주요한 원인들을 인과 관계로 엮은 차트를 만들어냈다. 사고 발생 9년이 지난 2014년, 2년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된 안전 팔로업 회의는 148페이지의 보고서를 남기고 종결되었다. 유가족, 가해 기업, 연구자가 시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공통의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인 결과였다.

이 책은 두 가지 미덕이 있다. 하나는 아사노라는 독특한 인물의 시선을 따르는 구성이다. 그는 유가족인 동시에 노련한 협상가다. 북받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고 원인 규명에 매진할 수 있는 인물이다. 유가족과 기업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지점으로서 ‘재발 방지’를 철저하게 밀고나가 끝내 관철시켰다. 죽은 자의 억울함을 달래고, 말단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대응하던 기업의 조직 문화도 바꿨다. 그의 행동은 우리가 다시금 재난을 마주했을 때 어떤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게 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아사노를 ‘단수’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모두가 아사노처럼 강하지는 않다. 모두가 아사노처럼 싸울 수는 없다.” 아사노라는 사람을 함부로 영웅화하거나 그가 택한 전략이 모두에게 적용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아사노의 헌신적인 노력에 경의를 보내면서도 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 이후를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부정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다. ‘올바른’ 유가족의 태도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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