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사태 속 언론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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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효과 6천억’ 등 장밋빛 미래에 집중했던 언론
문제되자 '정권 비호' 나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6일 오전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 내 프레스룸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결국 사실상의 파행을 맞았다. 1일 개막식부터 수백 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의료 자원 부족, 물과 전기 부족, 화장실‧샤워실 등 제반시설 부족과 비위생, 뻘밭 텐트, 해충 피해가 불거져 4일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행사 중단을 권고하기도 했다. 정부의 부실, 졸속 운영이 본격적으로 분출된 시점이 윤석열 대통령이 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화려하게 등장한 2일 개영식부터였다는 점, 7일 전원 조기 철수 결정이 10일 상륙한 6호 태풍 카눈이라는 점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이 블랙코미디는 정부 맞춤형 극본을 쓰는 언론에 의해 완성된다. 7일 전원 조기 철수 결정에 국민일보 <잼버리 결국 태풍에 발목… K팝 콘서트, 반전 카드될까>(8.7)는 K팝 콘서트를 ‘반전 카드’로 기대하면서 조기 철수 결정은 정부가 “결단을 내린 것”이라 전했다. 일주일 내내 기초적 제반 시설 준비와 의료 대비에 있어 터무니없는 수준을 드러내 4만여 명 청소년들이 위기에 빠졌다가 태풍 때문에 ‘탈출’하는 사태에 대한 평가 치고는 대단히 후하다. 조선일보 <새만금 철수 英 대원들, 서울 도심·경복궁 관광 나서>(8.7) 등의 보도는 열악한 환경에 이미 4일 조기퇴영한 영국 대원들의 ‘즐거운 한국 관광 일지’를 앞세우기도 했다. 스카우트 대원들의 개척 정신이라는 잼버리의 근본 취지가 ‘한국 관광’으로 변질된 데에 언론의 비판 의식을 찾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개막 이전 보도들을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언론이 준비 부족을 일제히 질타하고 있으나 개막 전까지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대부분의 보도는 ‘대규모 국제 행사’ ‘경제효과 6천억’ 등 장밋빛 미래에 매몰됐다. 특히 공영방송 KBS의 태도는 의아할 정도다.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KBS의 ‘잼버리’ 언급 보도는 무려 188건으로 보통 같은 이슈에 보도량이 더 많기 마련인 신문들(동아일보 21건, 서울신문 43건, 경향신문 18건 등)을 압도하며 YTN 31건, MBC 3건, SBS 4건 등 다른 방송사들과도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 188건의 보도 중 ‘우려’를 언급한 건 19건에 그쳐서 채 10%에 불과하다. KBS <32년만 ‘세계 잼버리’ 새만금에서 8월 개최…“170개국 4만여 명 온다”>(4.30)는 “170여 개국, 4만여 명의 전 세계 청소년들이 참여” “참가국이 다양해진 만큼, 이번 대회에 참여하는 각국 청소년들에게 한류를 알릴 수 있도록 K-팝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IT 강국답게 행사장 전역에 와이파이 중계기가 설치되고, 주요 시설마다 QR코드를 이용해 사용 방법을 익히고, 불편 사항도 전달” 등 행사의 규모와 K팝 콘서트, 첨단IT기기 등 충실한 준비 상태를 홍보했다. 특히 KBS <새만금을 K컬처 중심지로…‘K팝 국제학교’ 설립 추진>(7.9) 등 ‘K팝’을 강조한 보도가 많은데 8월 2일 대통령의 힘찬 개영식 환영사와도 닮아있다. 개막에 임박해서는 KBS <“세계 잼버리 최대 6천억 원 이상 경제 효과”>(8.2)와 같은 보도가 화룡점정이다. “새만금 일대도 '잼버리 특수'” “정부는 세계 잼버리 개최 이후 관광과 캠핑 산업 등 내수 시장 확대로 6천억 원 이상의 생산 유발 효과를 예상” “우리나라 최대 간척지인 새만금 내부 개발도 가속화”“미래세대인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면 경제 효과를 뛰어넘는 더 큰 가치” 등 숫자로 환산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밝혀진 ‘경제적 효과’를 나열했다.

8월 2일 KBS '뉴스7' 보도화면 갈무리 

KBS의 이런 보도들은 ‘새만금 잼버리 특수’, ‘새만금 개발 가속화’는커녕 국제적 망신과 새만금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야 하는 현 상황에 비춰볼 때 부끄러운 수준이다. 다른 매체들도 비슷한 보도가 있지만 너무 많은 보도량과 과도한 홍보성은 공영방송의 가치와 역할에 의구심을 자아낸다. 아무리 대규모 국제 행사라지만 무조건적 홍보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국영방송’의 태도다. 1년 전부터 행사 파행 우려가 불거진 바 있는데 다른 언론은 몰라도 ‘공영방송’이야말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막았어야 한다.

개막 전 KBS의 보도가 일이 터지고 나서도 정부 비위나 맞추려는 보도들과 닮아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뼈아프다. 조선일보 <“이제부터 정부가 챙긴다”…잼버리 달려간 총리·장관들>(8.5)는 작년 국감과 올해 개막 직전까지도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고 했던 김현숙 여가부장관과 10.29참사 탄핵 기각 직후인 7월 29일 잼버리 현장을 찾아가 “아무런 사고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의 준비해왔다”고 장담해 사실상 거짓말쟁이가 된 현 정부 장관들을 ‘위기의 순간 직접 현장으로 뛰어가 사태를 안정화 시킨 주역들’로 묘사했다. 3월, 직접 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대통령으로서 모든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시 파행을 방치한 윤석열 대통령도 아시아경제 <'휴가 같지 않은 휴가'…尹, 잼버리 등 사태에 업무모드>(8.6)와 같은 보도에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휴가까지 반납한 대통령’이 됐다. 문화일보 <물품 보내고 현장서 환경미화까지… 기업들도 ‘잼버리 살리기’ 총력전>(8.7) 조선일보 <7일에도 기업들 잼버리 총력 지원...현대차는 견학 프로그램·간이 화장실 제공, 쿠팡은 화장지, 홈플러스 냉동생수 전달>(8.7) 등 기업에 찬사를 보낸 보도들도 있다. 개막쯤까지 ‘6천억 경제효과’를 전한 ‘공영방송 KBS’가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있을까?

이렇듯 개막 전과 후 기묘하게 비슷한 양상으로 만난 KBS와 ‘정권 비호’ 언론들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은 공교롭게도 현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다. 특히 잼버리 파행에도 긍정적 보도에 앞장선 매체 중 조선일보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 등 현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에 가장 적극적인 협력자다. 조선일보 [[사설] 대규모 적자에도 수신료 믿고 법카 펑펑 KBS, 더 이상은 안 된다]7.13는 감사원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했고 아직 국민권익위의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KBS남영진 이사장의 해임 절차까지 시작한 빌미가 됐던 KBS이사의 법인카드 남용 의혹을 공적 재원인 수신료와 연결했다. 수신료 분리징수와 KBS이사장 교체를 동시에 압박하기 위함이다. 지역 방송 인프라와 재난 방송, 사회적 소수자 방송, 한민족 방송 등 공적 역할을 위한 재원으로 쓰이는 수신료가 마치 이사들 법인카드 밥값으로 쓰이는 것처럼 왜곡하는 대표적인 프레임이다. 조선일보 <사설/ 도 넘은 도덕적 해이와 편파 KBS,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자초>(7.6)의 경우 “대통령실이 진행한 국민 참여 토론에서 KBS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찬성 의견이 96%를 넘은 것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며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징수의 근거로 삼은 국민제안 홈페이지 온라인설문 결과를 객관적, 과학적 조사로 만들어버렸고, “KBS는 지난 정권에서 정권 응원단이 되어 공공성 의무를 저버렸다. 대통령 방미 기간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자 비율은 야당이 여당의 7배를 넘었다”며 정파성이라는 주관적 근거로 무려 공적자원인 공영방송의 재원을 없애는 공안적 사고를 노출했다. “KBS는 전체 인원 4400명 가운데 억대 연봉자가 2200여 명으로 절반을 넘고 이 중 무보직자가 1500여 명에 이른다”며 수신료가 KBS 직원 월급으로만 쓰이는 것처럼 왜곡하는 프레임도 일관적이다.

공영방송KBS와 ‘KBS의 적’들이 잼버리 파행을 전후로 하여 잼버리에 대해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는 건 함의가 크다. 지금 정부가 밀어붙이는 대로 공영방송 이사와 경영진들을 수사기관을 동원해 잘라내 정부 측 인사로 교체하고, 비판적 언론인들 퇴출하고, 급기야 KBS2TV를 민영화해 시민들의 공적자원을 불구로 만든다면, 미래의 언론 지형은 온통 ‘잼버리를 위해 휴가도 반납한 대통령’ 따위를 외치는 보도밖에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이것이 잼버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공영방송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자 공영방송이 스스로를 반성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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