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감독이 '정당한 보상권' 도입을 호소한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흥행에도 추가 보상 요구할 수 없는 현실
왜소한 창작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

한국영화감독조합·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한국독립PD연합회 등이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영상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을 위한 저작권 개정안 통과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D저널

[PD저널=엄재희 기자] "어딘가에서 영화 <다음 소희>가 상영됐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넷플릭스, 유튜브에서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데도 정작 그 사실은 저와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어떤 곳에서 언제 어떻게 얼마나 상영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도희야>와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영상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감독은 제작사와 IP(지적재산권) 양도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제작사가 저작권을 독점하기 때문에  OTT나 TV에 상영되어도 추가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3~4년의 시간을 오직 영화를 위해 바쳤지만 영화의 저작권은 실제로 저에게 없다"며 "영화를 창작하는 감독으로서 '역할'만 있지 '권리'는 없다"고 했다.

음악 창작자들이 자신의 노래가 한 번 사용될 때마다 일정 수준의 저작권료를 받는 것과 상반되는 현실에서 영화·영상 창착자들은 이른바 '정당한 보상권'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정당한 보상권'은 저작권을 양도한 영상창작자가 영상물의 최종공급자로부터 수익에 비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창작자가 제작사와 계약하는 초기에는 협상력이 약해 제대로 된 계약을 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으로 보상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넷플릭스가 세계적으로 흥행한 ‘오징어게임’으로 1조원대 수익을 올린 반면 영화를 제작한 황동혁 감독은 흥행 성적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공론화됐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정당한 보상권'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영화·영상물 창작자들은 '정당한 보상권'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했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유럽은 '작품이 시장에 공개되면, 그 사용량에 비례하는 보상을 창작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미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를 한 번에 지급하고 향후 수익을 독점하는 계약 형태인 '매절 계약'에 대해 "2012년 넷플릭스가 유럽에 상륙하면서 매절 계약을 강제하자, 2019년 유럽연합의회는 ‘디지털 단일 시장’에 대한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 명령서를 통과시켰다"며 "현재 27개 회원국 모두가 해당 명령서를 각국 저작권법에 반영하였고, 이에 따라 넷플릭스와 OTT들은 유럽 창작자들에게 정당하고 비례적인 보상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자들은 열악한 방송계 노동환경을 개선과 사업자와의 상생을 위해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원준 한국독립PD연합회 정책위원장은 "방송 외주제작 현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3D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산업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모른다"며 "한국 창작자들이 고사하고 나면, 도대체 제작은 어느 나라에 맡기려고 이러나"라고 꼬집었다.

반면, 플랫폼업계는 '정당한 보상권'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비용 증가로 인해 국내 산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양윤호 대표는 "음악 저작권자들로 인해 음반산업은 축소된 게 아니라, 글로벌 환경에 맞는 창작으로 몇 단계 점프했다"며 "영화영상의 창작자 저작권 보호야말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이다"고 주장했다.

창작자들은 '정당한 보상권'이 금전적 보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주리 감독은 "이 제도가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것은 저 같은 왜소한 창작자들에 대한 보호이고 최소한의 보상"이라며 "이 제도는 우리에게 영화가 어딘가에서 상영되는 한 아직 나와 연관되어 있고, 여전히 감독으로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확신과 다시 작품을 만들 힘을 준다"며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를 호소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