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마저 점점 특권이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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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저자 문미순 작가를 만나다

인터뷰 중인 문미순 작가 CBS '조태임의 주말뉴스쇼'
CBS '조태임의 주말뉴스쇼'에서 인터뷰 중인 문미순 작가

[PD저널=박재철 CBS PD] 명주는 불안하다. 엄마의 시신과 동거하는 명주. 소문은 냄새를 닮았다. 내가 알아채면 이미 늦은 것이다. 소문을 막듯 명주는 매일 봉인된 관(棺) 주변을 세심하게 탈취한다. 그녀는 한때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실직한 50대 이혼녀였고, 치매 노인 돌봄 노동자였다. 물론 여기서 치매 노인은 명주의 엄마다. 힘겹게 붙들고 있던 생의 끈을 스르르 놓아버리려 손에서 힘을 빼는 순간,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엄마의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찍힌다.

1,005,500원이 입금됐습니다.

기초연금 307,500원, 유족연금 698,000원. 엄마의 연금 입금 소식에 명주는 죽음의 벼랑을 기어 올라왔다. 엄마의 죽음을 영원히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선. 모진 생만큼이나 생의 의지 또한 모질었다. 준성은 명주의 이웃이다. 준성 역시 불안하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불운하고 부주의한 사고사였다. 명주의 조력으로 준성도 아버지의 죽음을 은폐한다. 준성의 삶도 출구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하나 있는 형은 일찌감치 집 담보 대출금을 쥐고 잠적했다. 알콜중독에 뇌졸중 아버지의 병간호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밤사이 대리운전을 하며 자격증 준비를 하던 이 평범한 20대 청년은, 엄청난 외제차 수리비를 감당해야 하는 비범한 처지에까지 몰린다. 거기에 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은 주저앉으려는 수레 위에 떨어진 하나의 지푸라기였다. 명주와 준성의 불안은 그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디스토피아적 세상에서 친족 시신 은폐 생존기를 은밀히 쓰고 있는 이 둘은 어떤 결말에 다다르게 될까?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명주와 준성의 이야기다. 독자는 어느 순간 명주가 되기도, 준성이 되기도 한다. 한계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를 묻는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명주와 준성‘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서사 안으로 들어왔던 적은 많지 않다. 간병과 돌봄, 누구나 언젠가 그 시혜와 수혜의 대상이 된다. 피할 수 없다.

“2년 반 전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두 달 반 동안 병간호를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라 재활 병동의 외출 외박은 철저히 통제 됐구요. 80대 어머니가 60대 아들을 간병하는 것도 봤습니다. 그 안에서 보고 느낀 게 많았습니다. 세상은 위에서보다는 아래에서 보아야 더 잘 보인다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문미순 작가
문미순 작가

작품의 완성도와 독서의 몰입감은 작가 스스로 작중 인물이 섰던 바로 그 자리, 그 척박한 땅에 서서 삽을 박고 퍼 올린 상황의 리얼리티, 그리고 문장의 단단함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한 사람의 자본주의적 생산성이 제로에 수렴해갈 때, 사회가 그를 어떻게 케어하는 가는 그 사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육아와 교육, 재난과 참사, 간병과 돌봄 등의 문제에서 각자도생을 묵인 내지 승인한다. 문미순 작가는 명주의 입을 빌려 말한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존엄한 죽음마저 점점 특권이 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더 많은 사람들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이 소설은 때론 묵시록으로 또 때론 예언서로 읽힌다. 처음은 소재의 무거움으로 들기 힘든, 나중은 주제의 깊이감으로 놓기 힘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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