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대학살 100년, ‘종북’ 타령하는 한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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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추적60분'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지난 9월 1일,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벌인 '간토 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이 100년을 맞았다. 이날 KBS <추적60분>은 '조선인을 죽여라, 학살 그 후 100년' 편을 방송했다. <추적60분>은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위령비의 간토 대학살 추도식에서 시작해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며 역사를 부정하는 극우단체로 초점을 옮겨갔다. 조선인 학살 관련 영상 작품인 <in-mates>의 상영을 금지한 도쿄도 등 일본 사회의 ‘역사 수정주의’ 실태, 일본 시민사회와 재일동포들이 그간 집대성한 대학살의 기록들, 일본 방위성이 대지진 당시 ‘불령선인 대비 무기 준비’ 등을 지시한 전보 등 일본 정부 측 증거들을 조명한 뒤, 다시 요코아미초 추도식으로 돌아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마무리된다.

똑같은 요코아미초 추도식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보도들이 다음 날부터 한국 언론을 뒤덮었다. 9월 1일, 요코아미초 조선인 위령비에서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 연구자들이 함께 개최한 추도식이 열렸다. 간토대학살 관련 도쿄에서 가장 대표적인 추도식으로서 1973년 일본 시민들이 모금하여 조성한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와 납골당에서 50년간 매년 추모가 이뤄지고 있다.

요코아미초
지난 2020년 일본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간토 대학살 추도식 모습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매년 추도문을 보내던 도쿄도지사가 2017년부터 갑자기 추도문을 보내지 않아 논란이기도 하다. KBS <추적60분>이 이 추도식에서 역사를 부정하는 극우단체로 시선을 옮겨 학살의 진상으로 나아간 반면, <조선일보> 등 다수 매체는 느닷없이 윤미향 의원을 겨냥했다. 윤 의원이 총련이 개최한 행사에 참석했고 그 행사에서 고덕우 총련 도쿄본부 위원장이 '남조선 괴뢰도당'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가만히 있었으니 ‘종북’이라는 결론이다. <조선일보>의 <윤미향, 친북 조총련의 ‘관동대지진 행사’ 참석>(9.2.)은 윤미향 의원이 “한국 정부와 한국계 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도쿄에서 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도 행사에는 불참”한 채 “친북(親北)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고, “입국 과정에서 외교부와 주일(駐日) 한국 대사관 측으로부터 입국 수속 및 차량 등을 지원받았다”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친북 성향의 행사에 참여한 것”이라 쏘아붙였다. 여기다 “남편 김삼석(59)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라며 간토 대학살과 전혀 무관한 윤 의원 가족의 과거 사건까지 덧붙여 ‘종북몰이’를 완성했다.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기준으로 ‘간토 대지진’을 언급한 보도는 총 176건(총 54개 언론사)에 불과한데 이 중 절반이 넘는 93건이 9월 2일 갓 알려진 ‘윤미향 의원 논란’을 다뤘다.

언론이 움직이자 정부‧여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일,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의 국가전복 기도행사이며, 침묵한 윤 의원도 그에 동조한 것”, “국회 사무처와 주일 한국대사관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 “윤 의원의 남편은 물론 보좌관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을 했거나 수사 중이기에 이번 일은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역사의 아픔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팔아 사익을 채운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반국가단체 행사에 당당히 참석하는 윤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없다”고 갖은 비난을 쏟아냈다. 급기야 9월 4일엔 윤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하며 제명하라 요구했고 극우단체가 윤 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대통령실도 9월 4일, "헌법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세력을 체제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볼 수 있는 건가"라며 윤 의원을 ‘함께 할 수 없는 반국가세력’, 즉 ‘적’으로 규정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뉴시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9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식 공안몰이, 남북협력법 부당 적용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언급했듯 총련이 주최에 참여하는 요코아미초 추도식은 정작 한국에서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일본 내 간토 대학살 추도식 중 가장 대표적인 행사다. 윤미향 의원이나 총련의 평가가 아니라 실제 일본 시민사회의 인식이 그렇다. 총련이 북한과 가깝고 그 대표자들이 한국을 비난했다고 한들 추도식이 일본 시민사회와 재일동포들이 함께 만든 간토 대학살 추모 행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행사에 한국 정치권이 너무 무관심한 게 문제다. 윤미향 의원이 참석한 것은 그나마 한국 국회의 체면을 차린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국회의원이 타국에 방문하면 대사관이 수속과 이동을 지원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간토 대학살의 진상과 증거들, 넘치는 사료들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자료가 없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 태도에 전혀 보도를 내지 않는 언론들이, 진상규명과 ‘특별법’은 언급조차 안 하는 언론들이 윤 의원 가족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대부분의 의혹이 1심 재판에서 허위로 드러난 위안부 기부금 횡령 의혹까지 운운하는 건 창피한 일이다.

언론과 정치권이 전혀 엉뚱한 정치적 공세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조선인이 얼마나 희생됐고 누가 참살당했는지도 모르는 간토 대학살의 진실은 한 걸음 더 멀어졌다. 피해 당사국인 우리 정부는 진상규명은커녕 피해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어 유족들은 스스로 과거 재적등본을 발급 받아보고 일본 자료를 뒤져가며 애타게 부모, 조부모의 행적을 찾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몇 번이고 일본을 ‘파트너’라 말하며 ‘제노사이드’를 부정하는 가해국 일본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판국에 언론이 추도식에 참석한 국회의원을 향해 ‘종북’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그게 기가 찰 일이다. 국회에서 3월 발의됐으나 소식이 없는 '간토학살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은 보도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데 윤미향 ‘친북’ 보도는 넘쳐나니 간토 대학살 전쟁 범죄와 조선인 학살을 매번 부정하는 일본과 딱히 다를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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