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농사 짓고, 밤엔 책 짓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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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출판사 ‘상추쌈’ 운영하는 전광진·서혜영 부부

출판사 '상추쌈'

[PD저널=박재철 CBS PD]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 밭을 일구고 밤에 책을 읽는다. 이 익숙한 사자성어는 어려운 여건에도 공부에 힘쓰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농경시대에도 ‘쟁기’와 ‘서적’은 양손에 쥐어야 할 인간의 조건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밤낮으로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다”는 푸념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주야로 밭을 갈아도 살기 퍽퍽한 사람들은 늘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 계층의 두께는 눈에 띄게 두터워졌다. 그들에게서 책은 점점 멀어졌고 일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피로사회’는 최근의 용어지만 그 증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귀농은 만성 피로사회를 탈출, 주경야독의 가치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일 수도 있었다. 성경의 출애굽처럼.

전광진, 서혜영 부부는 귀농 15년 차, 경남 하동에 터를 잡았다. 낮에는 밭일을, 밤에는 책을 읽는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삶이다. 거기에 더해 이들은 책을 직접 만든다. 담벼락에 출판사 ‘상추쌈’이라는 패널 간판이 명패 옆에 나란히 걸려 있다. 주경야독에서 주경야‘편’(晝耕夜編)으로 귀농의 동기를 확장한 셈이다.

출판사 '상추쌈'

그간 <상추쌈>은 생태와 환경, 유기농과 교육, 마을 가꾸기 관련 책들을 내왔다. 출간될 책의 주제는 농촌의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정해진다. ‘책의 쓸모’는 ‘삶의 쓸모’에 비례한다는 원칙을 상추쌈은 오랫동안 고수해왔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는 없다. 그러나 스테디셀러는 있다. 요즘은 출판사의 이름만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도 제법 생겼다. 출판 목록을 쌓아가면서 출판사의 신뢰 역시 쌓았다는 뜻일 게다.

두 사람은 출판사 편집인으로 만났다. 농업과 자연을 주제로 한 서적들을 내면서, 그 책들을 통한 배움 반, 동경 반으로 둘은 귀농을 결심했다. 아직까지 농사일에는 초년생이라는 서혜영 씨는 풀을 베면서 귀농 초기 일화를 꺼낸다.

“저희가 약을 안 쓰고 뙤약볕에서 밭을 갈며 애를 먹고 있으니 하루는 윗논 할아버지께서 혀를 끌끌 차시며 한마디 던지시더군요. ‘풀한테는 몬 이기~’ 지금도 밭에 풀을 솎아낼 때면 명언이라 여기며 혼자 웃습니다.”

전광진 씨는 상추쌈의 책들을 통해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연친화적일 수 있는 기회를 얻길 바란다.

“한번은 도시에 사는 지인이 저희 집에 놀러 왔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서 집까지 못 걸어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벌레가 많다고 차에서 내리질 못하더군요. 상자텃밭도 좋고, 주말농장도 좋아요. 아이들이 자연과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앞으로도 계속 내고 싶습니다.”

이어 본인이 직접 원고를 쓰며 출간을 준비하는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덧붙인다.

“우리나라 호미는 일본이나 중국 것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이웃나라의 것들이 평면적인 데 반해 우리의 호미는 안쪽이 입체적이라 땅에 힘을 굉장히 잘 전달합니다. 작은 규모로 농사짓는 분들에게 필요한 소농기구 관련 책을 곧 내려고요.”

일견, 귀농은 도시와의 단절을 전제로 하지만 전광진, 서혜영 부부는 삶의 터전인 농촌에서 출발한 새로운 선분을 도시를 향해 한 줄 두 줄 그리고 있었다. 세 아이와 함께 평화롭고, 조화롭게, 앞으로 그 아이들이 읽을 책들을 만들면서.

“‘본래 고향’이라는 말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다. 그리고 그것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 그것을 나는 ‘본래 고향’이라 부른다. 사람이 고향을 버리고 도시의 주민이 될 수는 있어도 이 지구라는 ‘본래 고향’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 ‘본래 고향’이라는 말은 대자연이 내게 준 선물이다. 그것이 지금 내 마음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상추쌈에서 출간한 <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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