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의 날’, 천재지만 슬프고 바보 같지만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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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담는 아이러니와 반전의 세계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ENA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김명준(윤계상)은 아픈 딸의 병원비 때문에 11살 아이 로희(유나)를 유괴한다. 괴력을 가져 한때 괴물이라고도 불렸던 김명준은 분명 유괴범이지만 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특히 어린 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약해지는 인물이다. 유괴한 아이 로희에게서 병원에 누워 있는 딸을 느낄 정도로 ‘딸바보’인데다 실제로도 현실적인 계산이나 두뇌회전이 빠르지는 않은 바보 같은 면을 드러낸다. 약삭빠른 사람들만 살아남는 세상에 던져진 김명준은 그래서 바보 같지만 어딘가 따뜻한 사람냄새가 나는 인물이다. 액면으로는 유괴범이 되었는데, 지금 세상사람 같지 않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김명준. 그는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아이러니와 반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로희(유나)는 김명준에게 유괴된다. 김명준의 차 앞으로 뛰어들어 쓰러졌는데, 그가 로희를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깨어난 로희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기억을 잃었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이 아이는 여러 나라 언어를 줄줄이 구사하고 명석한 머리로 자신의 상황을 추리한다. 기억을 잃은 로희에게 자신이 아빠라고 둘러대는 김명준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하며 적당히 부려먹는다. 자신의 팔에 있는 주사를 맞은 흔적을 보고는 자신에게 무언가 안 좋은 일들이 있었다는 걸 직감하고, 김명준이 유괴범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린다. 이 아이는 너무나 상황 판단을 명쾌하게 하는 천재지만 어딘가 슬프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의사로 집안도 잘 사는 것 같지만 어쩐지 이 아이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유괴의 날>에서 김명준이라는 인물이 유괴범이 아니라 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은 그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이 철거촌에서 아무 집이나 마구 들어가 물건을 훔쳐가는 고물상 사내가 등장하면서다. 그 사내가 로희를 유괴하려 하자 김명준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사내를 향해 육탄돌격한다. 즉 로희는 두 번의 유괴를 당하는 셈인데, 첫 번째 유괴를 한 김명준이 두 번째 유괴를 한 고물상 사내를 향해 육탄돌격할 때의 마음은 유괴한 아이를 되찾기 위한 욕심 때문이 아니다. 김명준은 마치 자기 딸이나 되는 것처럼 애타게 로희를 부르며 찾는다. 그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순수한 마음의 발현이다. 즉 진짜 유괴범의 등장은 김명준이라는 인물이 실상 유괴범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준다.

유괴범이 바보 같고, 유괴된 아이가 천재라는 사실은 보통 유괴를 소재로 하는 범죄스릴러의 평이한 서사 구조를 뒤집어 버린다. 유괴된 아이가 오히려 유괴범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유괴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같은 말을 건넨다. 그러면 거꾸로 유괴범인 명준이 “뭘 책임져? 유괴를 당한 아이는 경찰이 책임을 져야지.”라고 말한다. 뒤집어진 관계는 웃음을 만들지만, <유괴의 날>이 그려놓은 로희라는 아이를 둘러싼 비정한 현실은 그 웃음 끝에 씁쓸함을 남긴다. 유괴된 아이가 유괴범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 착한 유괴범(?) 명준을 벗어난 세상이 얼마나 살풍경한가를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ENA

드라마는 아이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비정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밑그림으로 깔아놓고 있다. 그 집안에 구비되어 있는 수술실이나, 아이의 팔에 남겨진 주삿바늘, 그리고 살해된 아이 아버지에게 거액의 돈이 연구비조로 입금되었다는 사실은 이 ‘천재 아이’가 가진 능력을 축복이 아닌 저주로 보게 만든다. 그건 어쩌면 아이가 천재적인 능력을 갖기를 원하는 어른들의 욕망이 만들어 낸 저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던가. 아이를 연구대상으로까지 삼는 저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이 우글거리는 살벌한 현실 속에서 김명준 같은 어설픈 유괴범은 거꾸로 아이를 지켜주는 유일한 어른이 된다. 이 어른이 현실성이 떨어져 어딘가 바보 같다는 건 그래서 여기서는 오히려 반전의 가치가 된다. 욕망 앞에서 영악해져만 가는 어른들이 아닌 앞뒤 재지 않고 아이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줄게”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유괴의 날>을 보면 그래서 우리네 현실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천재인 아이가 축복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슬프게 느껴지고, 바보 같은 어른이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현실이라니. 그런 천재니 바보니 하는 속물적 잣대가 없이 아이가 아이답고 어른이 어른다운 그런 현실은 어쩌다 어려운 일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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