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없는 ‘통계조작’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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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없이 '통계 조작' 몰이 나선 언론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9월 15일 감사원이 또 전 정부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엔 문재인 정부의 조직적인 ‘통계조작’이다. 감사가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례적인 ‘중간감사결과’ 발표를 반복하고 검찰에 수사 요청한 ‘전 정부 인사’ 명단을 공개하는 형식 자체로 ‘정치 감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 통계 조작’이라는 내용 역시 자극적이다. 감사원은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전 정부 주요 인사 22명의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고 대통령실은 “주식회사 대한민국 회계 조작 사건”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언론도 바빠졌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 분식회계’라는 자극적이면서 단순한 메시지에 ‘받아쓰기’ 보도가 쏟아졌다. 감사원 발표를 요약하자면 국토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이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원래 일주일에 한 번 확정치만 국토부에 보고하게 되어 있는데 청와대가 공표 전 수치인 주중치, 속보치까지 보고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확정치의 집값 상승률이 주중치보다 높게 나오면 그 사유를 소명하게 하는 등 ‘조작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소득과 일지라 관련 통계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불법적인 데이터 사전 보고와 조작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감사원 발표 직후부터 쏟아진 언론 보도는 감사원 발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무엇이 ‘조작’이고 어떻게 ‘조작’이 벌어졌으며, 그게 ‘조작’이긴 한 건지 설명하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 ‘조작’ 없이 시작된 ‘통계 조작’ 보도는 갖가지 방식으로 가지를 쳤는데 서울신문 <“文정부, 부적절한 통계로 부동산 보유세 급격히 인상”>(9.25)의 경우 국민의힘이 감사원 발표를 사실로 전제한 채 문재인 정부가 ‘조작된 통계’를 근거로 부동산 보유세를 급격히 인상했다고 주장한 토론회를 그대로 받아쓴 사례다. 그 흔한 반론조차 없다. ‘통계 조작’을 모호하게 처리한 채 시작된 보도들이 급기야 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까지 ‘조작’으로 규정하는 ‘받아쓰기’로 진화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조선일보 <단독/文정부 통계 조작 의혹 부서 실무자들, 2배속 승진>(9.26)은 “감사원이 문재인 정권에서 집값과 소득 등 통계가 조작됐다며 검찰 수사를 의뢰한 가운데 당시 고용·가계 통계를 담당했던 직원들이 고위직으로 영전하거나 고속 승진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사다. ‘통계 조작’을 별다른 분석도 없이 사실로 확정한 후 ‘조작을 담당한 직원을 초고속 승진까지 시킨 파렴치 정부’라는 네러티브로 급발진한 사례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많은 언론이 숨 가쁘게 저멀리 뛰어나갔지만 감사원의 발표는 ‘중간발표’일 뿐이며 검찰 수사는 시작도 안 했고 감사원이 주장하는 ‘조작’이 ‘조작’인지도 불분명하다. 이를 짚어주는 보도조차 찾기 어렵다. 그나마 전 정부 인사들이 모인 ‘사의재’의 반론을 실어주면 다행인 수준이다. MBC <"전제부터 틀렸다"‥'조작 감사' 반발>(9.15)같은 사례들인데 흔한 기계적 중립에 그친 보도로서 ‘조작’이라는 객관적 쟁점을 각 정파마다 달라지기 마련인 해석의 영역으로 보이게 할 위험이 있다.

눈여겨볼 보도는 SBS <취재파일/감사원은 어떻게 '조작'이라고 단정했을까?>(9.28) 정도다. 방송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인터넷판 보도로만 기자들의 노고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SBS는 이 ‘취재파일’에서 “감사원은 분명 압박이 '조작'이라는 '행위'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행위가 있었다는 건 단순 진술로 확인이 사실상 어려울 거 같습니다”라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료 추가 제출’ 요구나 ‘소명 요구’라는 청와대의 ‘압박’이 과연 실제로 수치를 고치는 ‘조작’이라 볼 수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이다. SBS는 나름의 답변까지 내놓았다. 요컨대 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 통계는 각 지역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표본 가구의 ‘표본 가격’을 조사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조사하여 입력하는데 이 수치는 지사를 거쳐 본사로 보고되며, “입력된 값을 계산하고 알리는 것이 전부”일뿐 인 본사가 ‘표본 가격’ 수치를 건드린 정황을 감사원이 포착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주택 가격 상승률이 너무 높다고 압박을 가하자 확정치 이전에 보고된 속보치 단계에서 부동산원 ‘본사’가 표본가격 수치를 직접 낮췄고 이게 ‘압박’이 ‘실제 조작’으로 이어진 내막이다.

‘대한민국 회계 조작’ 등 껍데기만 거칠어진 ‘조작’의 내막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빛난 보도다. 다만 SBS ‘취재파일’을 보고도 더 많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속보치’ 단계에서 ‘본사’가 수치를 고친 게 ‘조작’이 되려면 ‘속보치’가 ‘확정치’만큼 ‘확정된 수치’, 즉 ‘정답’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속보치와 주중치는 말 그대로 확정치 이전의 조사 중인 수치로서 이걸 ‘조정’하는 건 확정치를 계산하는 ‘조정’ 과정의 일부일 수도 있다. 통계에서 조정과 보정은 매우 흔한 일이다. ‘본사’의 ‘조정’ 권한이라는 절차적 문제를 차치하면 불확실한 ‘속보치’를 고친 게 ‘조정’인지 ‘조작’인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주택 가격 통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각각 다양한 표본과 조사 방식을 지니는데, KB국민은행 수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수치가 ‘조작’이라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주택가격 동향 조사는 표본조사로 이뤄지므로 본질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발표하면 표본이 너무 적어서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더 근본적인 제도적 한계도 짚어봐야 한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발표한다.

SBS '취재파일' 기사

감사원이 ‘조작’으로 단정했으나 SBS ‘취재파일’도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고용, 소득 관련 통계도 마찬가지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7년~2018년 가계동향조사에서 전 정부 청와대가 ‘과거 17개 분기 8만명의 소득‧지출 원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한국노동연구원에 무단으로 넘겨 ‘가구’가 아닌 ‘개인’의 소득 변화 분석을 요청하고, 소득 통계에 임의로 가중치를 적용했으며, 비정규직 조사 방식을 설문 방식으로 바꾸는 등 소득‧고용 관련 수치가 유리하게 나오도록 ‘조작’했다. 그러나 정책 효과 분석을 위해 통계 분석 방식을 다양화하는 건 어느 정부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또한 2017년 표본가구 수가 종전 8700가구에서 5500가구로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표본에 가중치 등 조정을 가하는 건 통계적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결국 청와대가 규정에 어긋나게 통계 수치를 보고 받거나 연구기관에 제공했는지 여부 등 절차적 문제를 제외하면 소득‧고용 부문에서의 ‘조작’ 역시 흐릿하다.

‘통계’라는 복잡한 이슈에 ‘조작’이라는 자극적인 보도는 쏟아져 나오는데 정작 그 보도에 ‘조작’은 없다. 시민들은 안 그래도 어렵게 보이는 이슈에서 마침 가장 어려운 쟁점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보도 덕분에 너무 쉽게 ‘조작’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설명해야 할 쟁점을 더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짚어주는 건 언론의 매우 기본적인 기능이며 그 기능을 하다보면 SBS ‘취재파일’처럼 ‘조작’으로 보이는 부분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더 깊이 있게 파고들면 그마저도 아직 ‘조작’이라 하기 어려우며 그런 식으로 따지다보면 역대 모든 정부가 통계 조작을 한 셈이 된다는 단호한 반론에도 닿을 수 있다. 여러 객관적인 분석으로 독자의 선택을 돕는 것 역시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조작 없는 통계조작 보도’에서 기본을 잃어버린 언론의 현주소가 더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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