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두만강 1550km의 대장정..."평화적 상상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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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PD연합회 '평화PD 프로젝트' 북한 접경지역을 다녀와서
“남북 관계 어려워도 북한에 관심 갖고 공부해야”
“북한 게임 활용 등 가볍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기획도 가능”

답사 참가자들이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PD연합회
답사 참가자들이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PD연합회

[PD저널=엄재희 기자] 압록강 하류 중국 단둥시부터 두만강 하류 훈춘 방천 풍경구까지. 북중 접경지역 서쪽 끝과 동쪽 끝을 잇는 1550km의 대장정을 다녀온 PD들이 있다. 한국PD연합회 소속 PD 23명은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5박 6일간 북중 접경지역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다녀왔다. 단둥과 신의주 사이의 압록강 철교(조중우의교)에서 시작해 중국 지린성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릉비, 압록강 최상류 장백현을 지나 백두산 천지에 오른 뒤 다시 북쪽 기슭을 따라 내려가 북중러 접경지역인 훈춘 방천풍경구까지 이어진 대장정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북녘땅은 손에 닿을 듯 가깝지만, 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 경색된 남북관계와 고조되는 전쟁 위기 속에서 PD들이 금단의 땅을 코앞에 둔 접경지대를 찾아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과 나눔’ 후원으로 이번 답사를 다녀온 PD들 중 4명과 김종일 한국PD연합회 회장이 9월 22일 PD연합회 사무실에 모여 소감을 나눴다. 사회는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이 맡았다.

"저 너머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웃이 있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이하 이 위원) 중국 단둥시 압록강 철교부터 백두산 천지와 북중러 접경지역까지 다녀왔다. 5박 6일 동안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다녀온 소감이 어떤가.

백시원 SBS PD(이하 백PD) 시야가 탁 트인 듯했다. 사실, 80년대생 PD의 입장에서 남북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 답사를 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깊게 고민했다. 윗세대는 통일에 부채감을 느끼고 아랫세대는 통일에 냉소적이라 이른바 '낀 세대'인데, 어떻게 보면 남북평화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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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OBS PD(이하 박PD)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초현실적인 세계를 접하고 온 느낌이다.

김효진 KBS PD (이하 효진PD) 1550km의 대장정 자체가 상징적이다. 서쪽부터 동쪽 끝까지 접경지역을 둘러봤는데, 그 긴 시간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국경으로 나뉘어 있지만 예전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철조망이 쳐지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지만, 이전에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겠구나'라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박 PD가 초현실적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익숙한 풍경이었다. 산세라든가 마을을 꾸며놓은 모습이 강원도 여느 시골 마을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저 너머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 이웃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가깝게 느껴졌다.

김정은 BBS PD(이하 정은PD) 강 건너 북한의 산은 중국의 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헐벗었더라. 들판 위의 소도 삐쩍 말랐다. 그런 광경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답사 며칠 전 북한 김정은이 딸 김주애와 평양에서 열병식을 열었는데, 이 헐벗은 모습과 대비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형준 CBS PD(이하 이PD) 북중 접경 지역에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더라. 직접 가보니 북한이나 남한이나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이나 강의에서 듣던 북한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다. 답사하는 동안 북한의 겉모습만 봤지만 그 안쪽에 사는 사람들도 만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답사 참가자가 압록강변에서 접경지역 북한쪽을 보고 있다. ⓒ한국PD연합회

밥 짓는 연기 피어나는 북녘땅, '아 저곳에도 사람이 살지’

이 위원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

박PD 장백현 마을에서 해안 도로를 끼고 쭉 지나갈 때, 강 건너에 있는 북한 혜산시 풍경을 잊지 못한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접경지 북한 마을을 유심히 보면서 차분하고 숙연한 느낌을 받았다.

정은PD 새벽에 숙소 인근을 산책했는데, 풍경이 달랐다. 새벽부터 활기찬 중국의 농촌과 북한의 텅 빈 아파트가 기억에 남는다.

이PD 강 건너의 모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멀리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아, 저녁이니까 밥을 지어먹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천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북쪽에 있는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직접 가보고 싶었다.

백PD 압록강과 두만강 폭이 생각보다 좁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탈북자들이 목숨 걸고 지나가는 공간으로 묘사되곤 해서, 두 강의 폭이 굉장히 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두 강의 폭을 보니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윤동주 시인 생가가 있는 명동촌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만,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고 적혀 있는 현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접경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요동쳤을 것이다. 누구는 북으로 편입되고, 누구는 남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그 경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중국 륭정시 명동마을 윤동주 시인 생가. 공사를 이유로 가로 막혀 방문을 할 수 없다. ⓒ한국PD연합회
봉오동전투 전적지 인근 봉오동저수지 근처에서 참가자들이 “우리는 홍범도 장군을 기억한다”는 현수막을 펼쳐 홍범도 장군의 뜻을 기렸다. ⓒ한국PD연합회

현재의 눈으로 경계지을 수 없는 땅

이 위원 최근 국내에서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었다며 흉상 이전 논란이 벌어졌는데,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한다. 중국은 홍 장군이 조선민족주의의 상징이 될까 우려하는 듯하다.

백PD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을 어떤 '주의'로 묶기는 어렵다. 현재의 눈으로 판단하거나 경계 짓기 어려운 복잡한 시기였는데, 단편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분들의 치적을 폄훼하고 있다.

효진PD 한편으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유적지 현판이나 설명문을 보면 나름대로 실제 역사 내용에 가깝게 기술해놓았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도 사실 우리나라가 나서야 하는데 사실상 버려두다시피 한 것을 중국이 관심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것이다. 양가감정이 들더라. 중국도 윤동주 시인을 위대한 분으로 인정했다는 것 아닌가. 물론, 동북공정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사회도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두만강 유역인 중국 혼춘 지역 철조망을 따라 북한 접경을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 ⓒ한국PD연합회
두만강 유역인 중국 훈춘 지역 철조망을 따라 접경지역을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들 ⓒ한국PD연합회

단절된 남북관계... 위기 속에서 평화를 준비해야

이 위원 접경지역을 답사하는 동안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찾았다. 국제정세가 변하고 있다. 또,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도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효진PD 계기가 딱 맞았다. 특히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한 달 전, 남북 유소년축구교류 진행 겸 취재차 다녀온 평양이 생각나더라. 언론인이라면 평화가 조성되는 시기를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취재 활동이 어떤 결과를 내놓으려면 평소 평화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9.19 평양공동회담 당시 엄청난 규모의 취재단이 구성됐다. 똑같은 현장을 열흘간 봤는데 나오는 결과물은 미묘하게 달랐다. 어디에 주목했는지, 어느 현장을 더 보여줬는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기자들은 주어진 틀 안에서 취재하는 반면, PD들은 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취재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언제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일 회장(이하 회장) 북한을 단기간에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북한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어렵다. 평상시에도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다. 언론인이라면 남북관계가 적대적이더라도 북한 사람을 만나고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을 공부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안 좋을수록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려우니 남북관계도 더욱 어려워진다. 평상시 남북 교류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남북 관계가 가까워졌을 때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정치 이슈에 종속되어 있지만, 이를 뛰어넘어 PD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답사 참가자들이 연길 공항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PD연합회

한강 하구 남북 접경지역에 유람선 띄우면 어떨까

박PD 평화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평화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강 하구다. 한강 하구는 남북 접경지역이다. 사실, 군사분계선 개념도 없다. 압록강이나 두만강만큼 가깝진 않지만, 망원경을 통해 북쪽 농사꾼이 농사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일상적으로 왕래하던 열린 공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강 하구에서 당장 유람선 사업이라도 할 수 있지 않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실현 가능한 상상을 해보고 프로그램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위원 이번 접경지역 방문으로 무엇을 얻었나? 경험을 토대로 방송 프로그램에 녹여낼 방법도 다양할 것 같다.

박PD 봉오동 근처 조선족 마을인 수남촌이 생각난다. 이곳에 말이 통하고 풍습이 비슷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대를 이어서 그 문화를 계승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자신의 언어와 생활 풍습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존경심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민족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됐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남북 관계나 한민족 문제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답사를 다녀와서 단순한 관점의 변화가 아니라 큰 울림이 있었다. 남북과 민족 문제를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PD 북한 관련 아이템은 위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서 조금 더 북한에 다가설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남북 관계가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북한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

중국 단둥시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모습 ⓒ한국PD연합회

정은PD 미디어가 북한 문제를 잘 안 다루고 있다는 반성부터 했다. 특히, 영화나 방송은 연변을 낙후된 이미지로 그리는데, 직접 보니 나름 잘 발달된 도시였고, 우리 문화를 잘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또, 강연에서 소개한 북한 게임도 재밌어 보였다. 저는 불교방송 PD니까 젊은 스님들이 출연해서 북한 게임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볍게 접근해서 호기심이 들도록 남북 문제를 풀어가다보면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회장 지난해 한국PD연합회 회원 대상으로 관심 주제를 고르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5년 차 이하에서 '한반도 평화'를 고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북한과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인식을 PD들만이라도 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답사를 기획했다. 북한에 대한 장벽이 높지만, 장벽을 넘으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번에 참여하신 PD들은 이 장벽을 넘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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