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무력해지지 않도록...'지구 위 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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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지구 위 블랙박스'

KBS '지구 위 블랙박스'

[PD저널=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사람들이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감정을 울리면 좋겠어요.”

KBS <지구 위 블랙박스>를 연출한 구민정 PD가 제작발표회에서 남긴 말이다. <지구 위 블랙박스>는 KBS가 창사 50주년을 맞이해 지난 9일부터 선보인 환경 예능(4부작)이다. 예능이라기엔 제작비 24억 원, 제작기간 500일가량 걸렸을 정도로 안팎의 기대작이다. 남극, 스페인, 제주도, 서울 등지를 누비고, 뮤지션 윤도현, 김윤아, 최정훈, 호시, 르세라핌이 등장한다. 배우 김신록, 박병은, 김건오와 함께 SF 소설가 천선란 작가가 각본 작업에 합류했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콘서트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딱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 어려운 <지구 위 블랙박스>. 과연 대중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을까.

‘기후’, ‘환경’이라는 소재는 마냥 환영받는 아이템은 아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가능해도 예능으로 제작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구민정 PD는 지난 2021년 <오늘도 무해하게>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후’와 ‘예능’을 결합한 시도를 벌였다. 하지만 대중의 호응은 미미했다. 배우 공효진과 가까운 친구인 이천희·전혜진 부부가 에너지자립 섬 죽도에서 일주일간 ‘탄소제로’ 캠핑하기에 도전했다.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쓰레기뿐 아니라 ‘탄소배출’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분투한다. 페달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채소와 해산물을 거둬 먹는다. 당시 ‘기후위기’를 다룬 프로그램의 취지는 시대적 요구와 맞아떨어졌지만, 외면하고 싶은 이슈였다. 실제 배우 공효진은 최근 정재형의 유튜브에 나와 “개인도 개인이지만, 기업과 국가가 해야 할 부분이 있다”라며 프로그램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KBS '지구 위 블랙박스'

<지구 위 블랙박스>는 무해하게 살려는 개인이 무력해지지 않도록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이끈다. SF 소설<천 개의 파랑>, <이끼숲> 등을 집필한 천선란 작가가 그린 기후위기 세계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구가 ‘거주 불능 지역’으로 선포된 미래. 지구의 데이터센터인 ‘블랙박스’와 지구 기록자 한 명만이 남아있다. 소수 인간은 방공호에 탑승해 지구가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다. 기록자이자 30년 후의 인류인 윤(김신록), 50년 후의 인류인 한스(박병은), 100년 후의 인류인 니오(김건우)는 매일 지구를 기록하며 인간이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윤’은 방공호에 탑승한 딸을 기다리고, 온갖 재해를 겪고 자란 기후난민 ‘한스’는 지구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다.

미래의 기록자들이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의 과거 기록을 꺼내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2023년 현재다. 잔나비 최정훈은 실시간으로 빙하가 녹아내리는 남극에서, 김윤아와 댄서 모니카와 립제이는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스페인에서 노래를 부르고 퍼포먼스를 벌인다. 바싹 말라버린 저수지에 선 모니카는 “할 말이 없어. 난 할 수 있는 게 없어.”라고 허탈한 탄식을 내뱉는다. 갈리시아 지방의 저수지를 찾은 김윤아는 “이 많은 물들이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와이너리 등 기후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는 ‘증언자’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이미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수치나 자료는 넘쳐난다. <지구 위 블랙박스>는 수치보다 기후위기를 직접 목격한 이들의 말에 힘을 실어 인간의 무력함보다 무한한 욕망의 민낯을 보여준다.

KBS '지구 위 블랙박스'
KBS '지구 위 블랙박스'

기후위기는 모두의 문제이지만, 이를 해결하는 데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지구 위 블랙박스>는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누구든 ‘구경꾼’이기보다 ‘경험자’로서 움직이길 기대하는 것 같다. 뮤지션의 노래를 듣다가 한 번쯤, 퍼포먼스를 보다가 한 번쯤, 가상이지만 어쩌면 정말 도래할지 모를 ‘윤’, ‘한스’의 사연을 듣다가 한 번쯤 ‘기후위기’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다음의 실천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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