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를 기록한 어느 PD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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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 1주기를 맞이하며...시상식에서 하지 못한 수상소감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간 근조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간 근조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제가 담당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10․29 참사, 기억과 기록>이 상을 탔습니다. 제50회 한국방송대상 시사보도라디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런데 아쉽습니다. 주최 측이 시간 관계상 시사보도 및 다큐멘터리 부문의 수상자들에게 수상 소감을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큰 상을 받은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이번 수상작만은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못한 수상소감을 대신하여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작년 10.29 참사가 일어난 이후 유가족들은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정부의 관계자들은 유가족들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답답해하고 있던 유가족들 역시 쉽게 국내 언론들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끼리 모여서 처음으로 한 인터뷰가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사실 이 때 이태원에서 벌어진 엄청난 비극을 보면서 누구나 자연스레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습니다. 동시에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쏟아졌던 일각의 비난 여론도 함께 소환됐죠. 10.29 참사 유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나도 황망하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키보드로 던져대는 비난과 조롱은 포탄보다 강력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방송쟁이'들은 당연히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추진했습니다. <시선집중> 제작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분들이 얼마나 움츠려 있고, 얼마나 참담한 고통 속에 있는지도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상과의 접점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쟁이의 감각으로 막연하게 시도하던 인터뷰에 대해 제작진 역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분들이 이야기하고픈 걸 전하자'는 것이 <시선집중> 제작진의 결론이었습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마포역에서 국회까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 종교인들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br>
서울 마포역에서 국회까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 종교인들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진심을 어떻게 유가족들에게 전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참사 초기 일부 유가족들에게 법적인 조언을 해주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처음에 조심스러워하던 변호사도 <시선집중> 제작진이 반복해서 진솔하게 요청을 하자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인터뷰를 요청하는 당신들의 의도를 진솔하게 밝혀서 글을 써달라. 유가족 몇 분이 함께 모여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내가 그 글을 단톡방에 올리도록 전달하겠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팀의 작가 한 사람이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여기서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진정성 가득한 훌륭한 글이었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선집중>의 인터뷰 요청문이 유가족들의 단톡방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글을 전하면서도, 어찌 됐든 유가족들의 생각과 입장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인터뷰를 추진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제작진이 모았더랬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아니 가슴 졸이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첫 연락이 왔습니다.

인터뷰에 나선 유가족분은 제작진과 사전 인터뷰를 하면서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작가도 따라 울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마련된 첫 인터뷰가 그렇게 방송을 탔습니다. 아마도 많은 유가족들이 그 인터뷰에 귀를 기울이셨던 것 같습니다. 첫 인터뷰가 나간 이후 인터뷰하겠다고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제작진은 처음에 한 분만이라도 인터뷰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만, 마음을 열고 언론에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가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10.29 참사, 기억과 기록'이라는 코너가 만들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이 참사를 기억하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방송을 통해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뉴시스

이 코너를 만들 당시는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청문회가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에 청문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문제의 해결을 국회에 넘기고 코너를 마무리하려는 게 처음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신통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했고, 유가족들을 둘러싼 상황은 오히려 더 답답해져갔습니다. '기억과 기록'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10.29 참사가 일어난 지 1주기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이 코너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 코너가 계속 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상이 밝혀지고 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들이 이루어진다면 10.29 참사 유가족들도 굳이 세상에 대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 멀리 떠나버린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고통스럽게 되살리는 건 남은 가족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전에 무언가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전히 '기억과 기록'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10.29이태원참사특별법이 마무리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방송협회에서 주신 이 큰 상에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마음을 다치신 유가족분들께 드리는 작은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 인터뷰를 통해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 김종배 진행자와 좋은 방송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넣고 있는 권진숙, 김민희 작가께도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맡은 일들을 야무지게 해내는 조연출 김예은 피디와 박지혜 피디에게도 진심 어린 따봉을 드립니다. 특별히 유가족들의 마음을 열게 한 그 글을 쓰고, 지금껏 이 코너를 맡아 마음으로 이끌고 와 준 '열정남아' 김연욱 작가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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