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저 산 간다 저 산 잡아라'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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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애도 방식

김천조·천수호의 시집 '저 산 간다 저 산 잡아라', 2013년, 책나라

[PD저널=박재철 CBS PD] 편지하면 연서가 떠오른다. 연서하면 시인 유치환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는 그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20년간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고 한다. 어림잡아도 20년간 매일같이 편지를 써야 이 숫자가 가능할 텐데, 사실일까 싶다.

탕후루를 감싸는 달콤한 설탕막처럼, 신화라는 당의(糖衣)를 입히길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욕망이 살짝 엿보인다. 그럼에도, 에로스의 꽃봉오리에 뮤즈라는 나비가 앉으면 아름다운 화원을 이룬다는 점만은 새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연인이 아닌 모녀 사이에도 그런 창작열이 가능할까?

시집 <저 산 간다 저 산 잡아라>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시집은 시인 천수호와 그의 어머니 김천조, 모녀의 글로 이뤄져 있다. 편지 삼아 자식을 향해 쓴 어머니의 노트를 어느 날 딸이 보게 된다. 스스로 깊어지면서 자신만의 울음을 곡조화하는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 거기 있었다.

신경림의 시 <갈대>마냥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임을 특유의 감수성으로 일찌감치 눈치챈 엄마의 마음을, 가장 가깝다는 시인 딸은 몰랐던 셈이다. 내심 안 되겠다 싶어, 엄마의 글에 자신이 화답하는 형식으로 시를 써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이 시집 이야기를 시인과의 인터뷰 중에 우연히 접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만 전할 목적으로 소량 출간해, 자연스레 지금은 희귀본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혹은 애도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지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였다.

천수호 시인(왼쪽)이 CBS '주말 뉴스쇼 조태임입니다' 진행자 조태임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환전성이 강한 유산과 달리, 역설적이게도 이런 시집은 그 무용(?)함으로 인해 몇 세대를 거쳐 후세에 전해질 듯싶다. 전승되고 보존되는 한 권의 시집 안에서 선조 누군가가 한자 한자 손으로 꾹꾹 눌려 쓴 연서 같은 시들을 읽고선, 후대의 누군가는 집안의 문화적 정서적 그리고 예술적 지문(指紋)을 확인하게 될 테고, 먼 훗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고유성에 깊은 자긍심과 존경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집을 찬찬히 바라보다, 열일곱에 혼례를 올리고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새색시의 애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지도 모른다. 아래 시는 시인 천수호의 어머니 김천조의 시로 제목은 <남편 한번 드 볼력고>다. 

“전쟁이 터지고
군 잎대 열차가 떠나던 날
남편 한번 드 볼력고
임신 구 개월 짓은 몸으로 뛰어 따라간니
벌써 열차애 몸을 담꼬
열차 문을 온몸을 다 숙겨 수근을 헌들면서
나 여기잇다는 목소리
눔물이 가로막켜 그 모습 잘 보지도 못 핸는데
무정한 그 열차는
부부의 이별도 몰라주고
뜨난다는 소리만 외치면서
끄문 영기만 남겨두고 헌적 읍시 뜨난 후
집으로 돌아올라 한니
발자주글 옹길 수가 읍서
나믄 다릉 가족들
우름바다만 지켜보고 선네”

시인 천수호와 그의 어머니

남편이 떠난 기차역. 그곳에는 앳된 아낙네 하나 서 있다. 기차는 떠났지만, 그녀는 못 떠난다. ‘님’은 갔지만, 아내는 ‘님’을 보내지 않는다. 혹여 목놓아 울면 진짜 이별이 될 듯 해설까? 생면부지의 이별 가족들이 그녀 대신 울어준다. 이 시에, 딸은 <엄마의 시에는>이라는 시 한 편을 나란히 세운다.

“엄마의 시에는
아버지 ‘군입대’가 아니라 ‘군잎대’이다
전쟁터 가는 남편이
가랑잎처럼 가팔라 보여서 군잎대이다
내 나무둥치는 알지 못하는 잎이다
젊은 아내 혼자 남아서 잎에나 매달리고 있을 줄 몰랐던
아버지는
머리에 꽂은 나뭇잎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일격 진격 포격 반격까지
격렬하게 밀어붙였다

내 나무둥치가 매달아보지 못한 나뭇잎이다
엄마의 시에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뜨나는 것이다
어떤 부력으로 어떤 타력으로
날 수밖에 없던”

소똥구리는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공처럼 굴린다. 오랫동안 이러저리 뒹둘다 벌레보다 더 큰 몸짓으로 경단은 커진다. 글쓰기는 힘든 일이다. ‘뼈를 깎는 고통’은 과장법이겠지만 살갗을 헤집고 뼈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 겨우 몇 자를 쓰는 이가 있다. 다른 표현으로 바꿔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소똥구리가 그러하듯 하루 종일 자신의 머릿속을 전쟁터로 만드는 이도 있다.

글쓰기가 버거운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그런 과정을 거친 글은 불순물을 오랫동안 증류하고 남은, 생각과 감정의 고갱이다. 이미 세간의 예술성과 완성도의 잣대도 넘어선다. 시집 <저 산 간다 저 산 잡아라>을 천천히 읽으면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애도 방식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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