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찾은 '장기 투숙객' 겨울 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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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겨울철 울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떼까마귀.
겨울철 울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떼까마귀.

[PD저널=박재철 CBS PD] 울산 태화강에서 호사비오리가 관찰된 건 2년 전이다. 옆구리 비늘 모양과 붉은 부리, 검은색 댕기가 ‘호사스럽다’ 하여 이름 붙여진 호사비오리는 우리나라 멸종위기 천연기념물이다. 산업 도시 울산에서 포착된 게 처음이라 환경 개선 노력에 큰 진척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돼, 적잖은 이목을 끌었다. 그 후로 다시 울산을 찾았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아, 조류학자와 주민들의 목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호사비오리가 ‘희소가치’의 새라면, 울산에는 ‘잉여가치’의 새도 있다. 떼까마귀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5만 마리 이상이 겨울나기를 한다. ‘떼까마귀 군무’가 이곳의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은 지는 이미 오래다. 눈(雪) 보기가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울산 동절기의 따뜻한 기후와 양산, 언양, 경주, 김해에 드넓게 펼쳐진 인근 평야의 풍부한 먹거리, 그리고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10만㎡ 규모의 삼호대숲이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어, 몽골과 시베리아에서 여름을 보내고 겨울철 무리를 지어 태화강을 찾는다. 

여름 철새로 백로, 겨울 철새로 떼까마귀가 대표적이지만, 해오라기, 흰목물떼새, 독수리, 큰고니 등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철새들이 울산 도심의 창공을 가른다. 명실상부 ‘철새의 도시’다. 그런 특성 때문인지 특화된 홍보관이 따로 있을 정도다. ‘철새홍보관’ 박창현 관장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것과 비슷하게 떼까마귀도 해뜨기 전 먹이를 찾아서 일제히 흩어졌다, 해질녘 다시 대숲으로 귀가합니다. 숲에 들어가는 데도 나름의 순서가 있어요. 조금 일찍 도착한 친구, 조금 늦게 돌아온 친구, 순번에 맞춰 들어가면서 시차 조정을 하다 보니 대나무 숲 위를 맴도는데 그게 군무(群舞)처럼 보입니다. 장관이죠”

울산을 찾은 철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창현 철새홍보관 관장.
울산을 찾은 철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창현 철새홍보관 관장.

새의 움직임을 춤에 빗댄 건 오롯이 인간의 시선이다. 은신처를 맹금류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떼까마귀는 시야가 어두워지는 틈을 타, 번호표를 받은 이가 은행 창구를 찾아가듯, 순서에 맞춰 대나무 숲에 깃든다. 자연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붙으면 치명적이다. 모두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서다. 이를 깨닫게 되면 우리 눈앞 풍경이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저희가 가장 관심을 쏟는 대상은 유아와 초등학생입니다. ‘자연 사랑’, ‘환경 보호’, 이런 실천이 ‘열매’라면, 아이들이 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건 ‘씨앗’입니다. 태화강에 함께 나가서 ‘넌, 새에 대해 얼마나 아니?’, ‘이 새의 특성이 궁금하지?’ ‘왜 다른 곳이 아닌 우리 울산에 올까?’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호기심이 탐구욕으로 그리고 지식으로 확장되는 것이지요. 저희는 그걸 체계화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애씁니다. 씨앗이 열매가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꾸 열매부터 먼저 꺼내면 주객이 전도된 겁니다.”

새에 대한 앎의 기반을 차근차근 쌓는 것이 긴 호흡의 일이라면, 당장 생사의 기로에 선 철새를 보살피는 현안은 숨이 가쁜 일이다. 매년 먹이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시민단체와 마을 주민들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시간을 정해놓고 생고기를 직접 들고나와 강변에 놓는 일은 그중 하나다. 황인석 녹색포럼 사무총장의 말이다. 
 
“두 살짜리 독수리 대박이가 농약 중독으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먹이가 없어 벌어진 일이죠. 위세척을 해보니 고무장갑도 나오더군요. 두 달 만에 회복하고, 올 3월 몽골 이크나크 자연 보호구로 떠났어요. 위치 추적기 확인 결과, 보름 만에 가더라구요. 하루 평균 350㎞를 날아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놀라운 건 똑같은 경로로 겨울에 다시 울산으로 왔다는 점입니다. 대박이었죠. 그래서 이름을 대박이라 지어주었습니다.”

필자는 요즘 ‘이어주고 맺어주자’라는 제목의 테마 캠페인에 담을 내용을 찾아, 취재를 다니고 있다. 울산을 찾는 철새들은 이른바 ‘장기 투숙객’이다. 손님인 그들을 위해 울산은, 잘 쉬고 또 먼 길을 갈 채비를 도와주는 품 너른 ‘숙소’가 되고 있다. 이동 경로를 ‘이어주고’, 새와 인간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일로 겨울철 울산 지역민의 손발은 점점 바빠지고 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의 詩 <방문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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