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한동훈·이준석 뉴스…선거제 개편 보도는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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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뜨거운 한동훈 장관 팬덤 보도…특정 정당 관점 내면화한 기자들
‘이준석 신당’ 보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보도 3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을 방문, 문화관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을 방문, 문화관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총선이 채 5개월도 남지 않았다. 정치권도 바쁘고 언론도 이미 ‘총선 모드’다. 곧 벌어질 각 당의 공천 관련 이합집산과 갈등을 전망하는 보도가 넘쳐나고 유력한 출마자를 예상하기 바쁘다.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문제는 또 외면 받고 있다. 선거제 개편이다. 12월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도 시작되지만 정치권은 선거제 확정 법정시한을 이미 7개월이나 넘기고도 선거구 확정조차 못했다. 총선 판도를 가를 것으로 보이는 비례제 적용 방식을 두고 여야가 치열한 눈치싸움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치권은 유불리를 계산하며 선거제 개편을 신경이라도 쓰는 편이라 선거제 개편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태도에 가까운 언론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언급한 보도는 106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민주당 이탄희 의원 등 연동형 비례제 확대를 요구하는 의원들이 ‘위성정당 금지법’을 발의하면서 크게 늘어난 양이다. 그 중에서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역구 의석수와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의 50%를 연동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이나 ‘모정당과 위성정당 합당 시 국고보조금 절반 환수’라는 ‘위성정당 금지법’의 취지를 언급이라도 한 보도는 15건에 불과하다.

다수 보도는 <선거제 딜레마 빠진 민주당…내부선 "위성정당 방지 입법" 목소리>(머니투데이 11.26)처럼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 시 국민의힘만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석수에서 손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하는 민주당 지도부와 약속대로 비례제 확대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원들 간의 ‘갈등’으로 그렸을 뿐이다. 심지어 그 ‘갈등’도 “비명(비이재명)계”와 “지도부”의 갈등으로 규정했다.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비례성과 다당제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제 개혁을 약속했는데 어느새 언론 보도는 ‘당 내 계파 갈등’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총선 모드’에 이미 진입한 언론이 ‘선거제 개편’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이준석 신당’ ‘인요한 혁신위’ ‘한동훈 출마설’ 등 주로 정부‧여당 쪽 총선 판도이다.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이준석 신당’을 언급한 보도는 무려 326건이다. 아무리 파급이 큰 이슈라고 해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106건의 3배에 가깝다. ‘이준석 신당’은 주로 국민의힘과의 기싸움으로 묘사되는데 특히 최근엔 인요한 혁신위원장과의 설화가 화제다.

조선일보 11월 23일자 6면 기사.
조선일보 11월 23일자 6면 기사.

그 중엔 노골적으로 한쪽을 편드는 기사들도 있다. <인요한, 전라도 사투리로 ‘여의도 사투리’ 뒤덮다>(조선일보 11.23)는 인요한 위원장을 향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여당을 비판하고 달래가며 혁신위의 지난 한 달간 여정을 지휘”, “호남 토속어를 쓰는 백인 혁신위원장의 등장은 관례처럼 해오던 여의도 정쟁의 힘을 뺐다”, “인 위원장의 전라도 사투리가 기존 정치인들의 문법인 ‘여의도 사투리’를 덮었다” 등 찬사를 보냈다.

인 위원장의 ‘중진‧친윤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권고’가 지도부와 중진으로부터 무시 또는 거부당하고 혁신위원 조기 사퇴설까지 나오며 갈등이 증폭됐는데 어떻게 ‘호남 사투리’로 ‘여의도 정쟁의 힘을 뺐다’는 것인지 아리송한 기사다. 더구나 이 기사는 “지난 4일 이준석 전 대표가 자신을 만나려고 부산까지 찾아온 인 위원장을 향해 ‘미스터 린턴(Mr. Linton)’이라 부르며 영어로 말했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신당 창당을 하겠다는 이 전 대표의 명분에도 금이 갔다”고 썼다.

이준석 전 대표의 대응이 논란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이준석 신당’ 명분에 금이 갔다면 언론이 이렇게 수많은 보도를 ‘이준석 신당’에 쏟아부으며 이 기사처럼 ‘인요한 혁신위와의 대결’까지 묘사할 일도 없다. 지나치게 인요한 위원장 편을 들다보니 현실과 괴리된 묘사가 넘쳐나는 이색적인 기사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뉴스 앵커에게 ‘좋은 면을 좀 보소. 오늘 동생한테 하나 가르쳐주고 가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에겐 ‘여보, (혁신위에) 들어와’라고 손을 내밀었다”고도 칭찬했는데 이준석 전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말한 게 논란이라면 뉴스 앵커를 ‘동생’이라고 칭한 것도 문제가 되어야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천하람 당협위원장은 ‘여의도 문법을 바꾼 사투리’에도 불구하고 혁신위 합류를 거부했다.

<조선일보>는 “인요한 혁신위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침체돼 있던 당 분위기를 바꿔놨다’는 분석에는 여의도 정가가 대체로 동의한다”며 “좌우 어디서도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어 내년 총선에서 선대본부장 같은 중책을 맡아도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기사를 마무리했다. 마지막까지 아리송한 분위기가 압권인 기사다.

여당의 보궐선거 패배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혁신위원장’이 총선에서 또 ‘선대본부장’ 중책까지 맡는 게 과연 ‘혁신’에 걸맞는 것인지, 그간의 ‘여의도 문법’에 한참 어긋나기는 한 설명들이다.  

이처럼 ‘총선 모드’에 과하게 취한 기사는 현실과 동떨어져 특정 정당 관점을 내면화하는 수준에 이른다. 최근 언론이 집중하는 총선 이슈 중 다른 하나는 ‘팬심’이 역력한 사례다. 바로 한동훈 장관 행보 보도다. 지난 15일 대한적십자사 행사에 등장하며 처음 언론에 노출된 한 장관의 부인 진은정 변호사에 ‘팬덤 보도’가 빗발쳤다.

뉴스1은 당일 "쓰레기 치우며 솔선수범하는 한동훈 장관 부인", "사랑의 선물 제작에 진심인 한동훈 장관 부인" 등 낯뜨거운 제목의 사진기사를 쏟아냈다. <“김앤장 변호사래”…한동훈 부인 진은정씨에 쏠린 시선>(국민일보, 11.16)은 “전날부터 보도된 진씨 관련 기사에는 평균적으로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큰 관심이 쏠렸다”면서 진 씨 이력을 자세히 소개했다.  

지난 21일 한동훈 장관의 “5천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 발언에도 “총선 출사표”라는 해석을 단 보도들이 줄을 이었고 26일 배우 이정재 씨와 식사를 한 사진이 공개되자 <"이정재 만나자 주가 불기둥"…'한동훈 테마주' 또 상한가>(한국경제, 11.27)와 같은 보도가 터져나왔다. 이쯤되면 한동훈 장관이 총선 출마 의사를 직접 밝히기도 전에 이미 언론이 ‘총선 스타’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아무리 선거에서 구도와 인물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건 정당에 해당되는 얘기지 언론이 구도와 인물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하물며 아직 경선도 안 치렀는데 벌써부터 이준석, 한동훈, 인요한 등 특정 인물에만 보도가 치중되는 건 종전의 사례에 비춰봐도 퇴행적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언론은 유권자 관점의 보도를 해야 한다. 지금 유권자에게 가장 시급하고 필수적인 정보는 나의 한 표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결정할 선거제 개편이지 한동훈 장관 출마 여부나 이준석 전 대표의 ‘창당 분투기’가 아니다. 그런 이슈는 나중에 분석해도 된다.

반면 선거제 개편은 지금 공론화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게 왜 거대 양당에 불리하며 위성정당 꼼수는 대체 왜 못 막는지, 비례제를 어떻게 확대해야 우리 정치 구조에서 사표를 최대한 방지하고 다당제를 확보할 수 있는지, 다당제가 왜 꼭 필요한지, 대충 생각해도 보도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 질문들에 답하기에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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