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취재' 논란에 덮인 ‘김건희 명품백 의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의 소리'가 제기한 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함정 취재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언론의 '침묵'

JTBC가 지난 11월 28일 보도한 '김건희 명품백 수수' 함정취재 논란 리포트 갈무리.
JTBC가 지난 11월 28일 보도한 '김건희 명품백 수수' 함정취재 논란 리포트 갈무리.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세간은 떠들썩한데 언론과 사정기관은 조용하다. 유튜브 매체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 선물 수수 영상 파문이다.

지난 11월 27일 첫 보도 이후 2주가 지나도록 ‘반환선물 창고’라는 기상천외한 개념을 앞세운 ‘익명 관계자’ 해명 외에 대통령실 공식 입장은 없으며 여당에서도 ‘함정취재’ ‘정치공작’으로 ‘서울의소리’를 비판한 이후 함구령이다. 8월에는 KBS 야권 추천 이사를, 11월에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야권 추천 이사를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수사에 넘겨 공영방송 이사 교체에 일조한 국민권익위도 조용하다. 범죄 혐의가 있다고 사료되면 수사를 개시할 의무가 있는 검찰도 침묵 일변도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아 모른다’는 입장을 냈다.  

‘언론이 보도를 안 해서 모른다’는 한동훈 장관의 발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11월 28일부터 12월 12일까지 김건희 씨 명품 수수 영상을 언급한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54개 주요 언론사) 기준 114건이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 수수 영상’이라는 중대성을 감안할 때 턱없이 적은 보도량이지만 방송인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 발언까지 법적 대응에 나서는 법무부가 모를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이 보도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14건 중 절반이 넘는 59건이 ‘함정취재’를 언급한 반면, ‘뇌물’은 27건, ‘청탁금지법’은 15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보도가 김건희 씨의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 등 ‘명품 선물 수수’의 문제를 다루기보다, 보도를 한 유튜브 매체와 기자들의 ‘취재윤리’에 초점을 맞췄으니 보도가 좀 있었다고 한들 영상의 정확한 내용을 장관이 모를 수는 있겠다.  

다수 언론이 ‘함정취재’만 부각한다고 해도 수사기관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논란의 ‘신학림-김만배 인터뷰’를 인용해 다뤘다는 이유로 언론사들을 연달아 강제수사하고 있다. 그토록 ‘취재윤리’나 ‘보도 전 사실확인’이 중요하다던 검찰이 더 직접적으로 문제 삼을 수도 있는 ‘몰래 촬영’엔 묵묵부답이다. 권익위와 검찰 등 사정기관의 칼날은 대통령 주변에만 오면 무뎌진다. 

‘함정취재’만 주로 전시하고 있는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함정취재’ 문제도 제대로 다룰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2주간 보도량이 고작 59건에 그쳤다는 것도 2020년 4월 총선 직전 ‘검언유착 의혹’ 보도 당시 MBC를 향해 쏟아냈던 ‘저널리즘’ 비판과 대조적이다.

보도 내용은 더 허술하다. 세계일보는 11월 30일, <[단독] 방심위, JTBC 김건희 여사 명품백 보도 긴급심의 안건으로>을 통해 주요 방송사 중엔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보도한 JTBC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됐다고 전했다. ‘업계’라는 이색적인 ‘출처’로 방통심의위원회 회의에 상정된 적도 없는 ‘긴급심의’를 ‘특종’한 셈인데 당연히 심의위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류희림 위원장조차 긴급심의 상정 여부를 “결정된 바 없다”“모른다”고 답했다. 

이 미스터리한 기사는 방송통신심의위의 ‘긴급심의 상정’ 이유에 대해 “방심위 내부에선 JTBC 뉴스룸이 함정취재 등 언론윤리가 논란이 된 점을 사전에 알면서 관련자인 최 목사 인터뷰를 보도한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JTBC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가 지목한 28일 뉴스 당시 JTBC는 <[단독] "명품도 카메라도 서울의 소리 측에서 준비했다"…선물 준 최 목사 밝혀>에서 “서울의 소리가 또 함정취재했다”는 논란, “김 여사 줄 명품 가방을 사주고, 촬영 할 카메라 달린 손목시계를 준비해준 것 모두 '서울의 소리'”라는 사실을 영상과 함께 상세히 전달했다. <세계일보> 보도가 사실이라면 방심위 위원들이 무려 ‘인권침해 등 심각한 피해’가 예상될 때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긴급심의’를 결정하면서도 그 대상인 JTBC 보도를 보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그게 아니라면 <세계일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게 한 것일 수 있다.

일부 야권 추천 방통심의위원들은 방통심의위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긴급심의’ 가능성을 흘려 ‘김건희 명품 수수 의혹’을 덮거나, 다른 언론에 압박을 가한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함정취재’를 말하지만 마음은 엉뚱한 곳을 향해있다.  

‘김건희 명품 수수’ 영상을 두고 복잡한 속내가 보도에서 솔직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세계일보> 보도의 경우 명품 선물을 건네고 영상을 촬영한 목사를 향해 “평양과 서울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신분이며 ‘인간해방의 횃불-전태일 실록’ 저자”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전력”을 거론했다. 이는 똑같은 논리로 "(선물 구입을 위해) 북한 자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익명의 대통령실 관계자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27~28일 서울의소리와 JTBC 보도를 안 봤거나, 보고도 ‘메신저’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비겁한 처신이다. 

조선일보 12월 2일자에 박정훈 논설위원실장이 쓴 칼럼.
조선일보 12월 2일자에 박정훈 논설실장이 쓴 칼럼.

 

지난 2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박정훈 칼럼] 이른바 ‘응징 언론’의 몰카 함정 취재>도 갑갑한 마음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김건희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 리스크를 정밀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은 크게 타격 입을 수 있다. 몰카 보도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부터 내야 마땅하다”고 비판하면서도 “더 큰 쟁점은 ‘함정 취재’ 논란”“유사 언론의 폭주는 우리가 어렵게 구축한 민주주의 룰을 깨트리는 국가적 이슈”라고 언성을 높였다.

“‘서울의소리’는 기획자이자 설계자 역할”을 했고 “관찰 수준을 넘어 카메라와 선물을 준비하고 몰카 드라마를 연출”했기 때문에 “함정 아니면 없었을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함정’으로 ‘만들어 낸 사실’이므로 ‘명품 선물 수수’이라는 사실울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이 사안과 전혀 무관한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윤석열 검사가 대장동 사건을 무마했다’는 가짜 대화록” 등 윤석열 대통령 관련 다른 의혹 제기 보도들까지 ‘유사언론의 가짜뉴스 폭주’로 취급했다. 명품 선물 수수 논란은 물론, 이참에 다른 의혹까지 ‘서울의소리 함정취재’ 논란으로 다 덮어버리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가 돋보인다.  

이렇게 잿밥에 마음이 가있는 보도들이 ‘함정취재’를 제대로 다뤘다고 볼 수 없다. 물론 ‘함정취재’ 논란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의 진행자인 김종배 평론가는 취재하기 전에 비위행위가 이미 발생한 사건을 취재할 때나 ‘공익적 목적의 함정취재’가 허용된다면서, “김건희 여사 건은 이미 있었던 일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만드는 방법”이라 비판했다.

이에 보도를 한 장인수 기자와 최재영 목사는 이미 사전에 명품이 아닌 저가의 선물의 경우 답이 없던 김건희 씨 측이 명품 선물을 예고하고 나서야 면담을 허락했고, 이미 고가의 선물을 받은 전력이 있었으며, ‘대통령 부인의 인사청탁 정황’ 등 몰래 촬영이 아니면 취재가 불가한 의혹을 목격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취재라고 맞서고 있다. ‘함정으로 만든 상황’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비위’에 ‘접근’했다는 취지다. 

과거 사례와의 비교 분석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돈 받고 기사를 써주는 ‘광고’를 기사처럼 내보내는 언론의 폐단을 고발하기 위해 기자들이 직접 ‘가짜 광고주’가 되어 ‘기사형 광고’의 당사자가 된 뉴스타파의 ‘체리방송 협찬금 보도’, 한겨레21의 ‘기사형 광고’ 보도 등 과거 ‘함정취재’의 경우 ‘공익성’이라는 우선순위에 따라 칭송을 받은 사례들이다. 

‘공익성’과 ‘취재윤리’ 사이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함정취재’의 쟁점은 ‘함정취재’를 앞세우는 보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함정취재’가 문제라면 ‘JTBC 긴급심의’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도 거짓’ 등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함정취재’라도 제대로 다뤄야 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