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리스트에 오른 'DMZ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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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DMZ 평화의 길 대장정.
DMZ 평화의 길을 도보로 이동하고 있는 자유평화대장정 6기의 모습. 

[PD저널=박재철 CBS PD] 겨울과 DMZ. 두 낱말이 얼음마냥 한 덩어리로 붙어있으면 한파에 폭설이 더해진 느낌이다. 정치 군사적 금단구역에, 혹한의 바리케이트까지 둘러쳐진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일까, 겨울철 DMZ의 스산함은 배가된다. 우리나라 휴전전 지역은 유독 추위가 일찍 찾아오고, 매서움 또한 무섭다. 동서를 가르는 철책선의 길이는 248Km.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면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를 조금 넘는다.

정부는 작년 9월부터 DMZ 인근 둘레 524㎞의 길을 재개방했다. ‘DMZ 평화의 길’이다. 인천 강화군에서 강원 고성군까지 접경 지역의 10개 시·군을 횡단하는 코스다. 각각의 노선은 희망자의 신청을 받아 허용된다.(바로가기▷)

올해는 특히 정전 70주년을 맞아, ‘DMZ 자유 평화 대장정’이란 이름으로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걷기 행사를 10여 차례 개최했다. 누적 인원 500여 명이 6박 7일, 혹은 12박 13일 동안 이 일정에 참가했다.

행사를 다녀온 박영규(26), 류효림(24) 두 인턴기자를 스튜디오에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어떤 장소는 사건의 여운을 타임캡슐처럼 간직하고 있다. 우리에게 DMZ는 그런 곳이다. 

“하루에 6~7시간씩 걸었어요. 평균 13㎞ 정도를 매일 걸었던 것 같아요. 신체적으로 이렇게 오래 걸었던 경험이 없어, 힘들 때가 많았어요. 코스 중에 민간인 통제구역이 많아, 군인들의 감시하에 걸을 때도 꽤 있었고, 영화 <고지전>의 배경인 철원의 백마고지 전적비에 갔을 때는 전쟁 시 얼마나 총알을 쏘았던지 총구가 녹고 휜 소총도 직접 보았습니다. 집에서 북한 관련 뉴스를 들을 때는 BGM처럼 둔감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실감 되더군요” (류효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길이잖아요. 이곳 평화의 길은 아무래도 전쟁과 상흔이 자연스레 떠올려질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다른 곳이 아닌 이곳을 걷는다는 건, 특별히 여기가 품고 있는 이야기,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 같아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걷다 보면 사색에 잠기게 되는데, 삶과 죽음의 무게, ‘왜’, ‘무엇을 위해’, 인간은 서로 싸워야 하나? 그런 답 없는 질문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던 것 같아요” (박영규)

CBS 조태임의 주말뉴스에 출연한 CBS 인턴기자들.
지난 2일 CBS 주말뉴스에 출연해 DMZ 대장정에 오른 경험담을 들려준 CBS 인턴기자들.

두 인턴기자를 통해 체험담을 들었을 때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계속되는 비극적 외신과 함께, 북의 정찰위성 발사,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등의 소식으로 남북한 관계가 경색될 대로 경색될 즈음이었다.

장소성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것으로 되살려 놓는다. 전쟁을 온몸으로 통과했던 윗세대는 그 짙은 그늘의 자락은 쉬이 거두지 못한다. 이제는 후세대가 그곳, 그 길을 걸으며 ‘공감의 영토’에 한발씩 발걸음을 들인다. 박영규 인턴기자의 말처럼, 그곳이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DMZ를 ‘발명’한 것은 인간이지만, DMZ를 ‘발견’한 것은 생태계였다. 전쟁의 상징에서 이제는, 자연의 보고(寶庫)가 된 DMZ. 그곳의 진짜 주인들은 인간과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노라 두 인턴기자는 말한다.
 
“길에서 산양을 두 번이나 봤어요. 어찌나 눈망울이 맑은지. 그때마다 일행은 길을 멈췄어요. 처음에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길을 인솔해주는 분이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곳의 진짜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야생동물들이라고. 우리는 길손일 뿐이라고. 그들의 통로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류효림)

“양구의 두타연이 너무나 좋았어요. 우리나라 최북단, 금강산 아래 생태 탐방로인데요. 정말 아름다운 연못입니다. 함께 걸었던 분이 말씀하세요. 여기가 개방되면 지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어려울 거라고. 민간인 통제구역이라서 역설적으로 이런 모습을 지키고 있는 거라고.”

두 인턴기자는 6박 7일간, 낮에는 걷고 밤에는 기사를 썼다.(바로가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주답야필’(晝踏夜筆)의 현장 취재 경험이 이후 기자 생활에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내년, 워킹 리스트(Walking List) 목록에 DMZ가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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