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했던 2023년 언론계, 돋보인 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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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예산 검증 나선 독립언론...현실의 민낯 드러낸 시사 프로그램

뉴스타파의 검찰 특수활동비 추적 보도 화면 갈무리.
뉴스타파의 검찰 특수활동비 추적 보도 화면 갈무리.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언론에게는 무력한 연말이다. 정치권은 대통령과 여당 대표(비대위원장)이 모두 ‘검사 출신’으로 채워진 초유의 연말을 맞이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으로 규정했는데, 많은 언론이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김건희 씨에 대해 ‘혐의가 없다’거나 과거 특검에도 있었던 ‘야당 추천권’ ‘수사 브리핑’을 ‘독소조항’으로 꼽으며 한동훈 위원장을 거들고 있다. 

27일 사망한 배우 故 이선균 씨의 경우는 정반대다. 경찰이 3개월 간 고강도 수사와 마약 정밀검사까지 이어갔으나 음성 반응이 나왔다. 그러자 사생활을 포함한 수사 내용, 입증되지 않은 마약 투약 가능성이 익명이나 경찰발, 심지어 극우 유튜버발로 흘러나왔고 언론은 고인이 사망하는 날까지 일방적 진술을 선정적으로 받아썼다. 수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언론은 무력하게 누웠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김만배 인터뷰 인용보도’ 심의 민원 제기에 최소 15명의 가족, 지인들을 동원했다는 초유의 ‘민원 사주 의혹’에도 따끔한 비판 보도를 찾기 어렵다. 방통심의위는 ‘제2의 허위 녹취록 사태’라며 ‘인용보도’ 자제를 경고한 바 있다.

보도가 집중된 대형 이슈만 보면 무력하지만, 지난 한 해 언론계를 통틀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시선과 새로운 사실을 발굴한 기사들이 많다. 중앙 언론이 잘 받아주지 않았으나 이슈의 파급력 자체만으로 ‘전국구’가 된 사례도 있다. 바로 뉴스타파, 경남도민일보, 뉴스하다, 충청리뷰, 뉴스민, 부산MBC 등 지역언론 및 독립언론들이 세금도둑잡아라·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함께하는시민행동 등 3개 시민단체와 함께 한 ‘검찰 예산 검증 보도’다. 

최초로 검찰의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 내역 정보 공개 청구를 성사시킨 이들은 법원 명령과 달리 먹칠로 대부분의 정보를 가린 채 증빙 자료를 제출한 검찰의 방해에도 끈질긴 분석과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수사’라는 명목으로 커피를 사먹고, 공기청정기를 대여하고, 고깃집 ‘소맥’ 회식을 하고, 규정을 어긴 게 드러날까 ‘쪼개기 결제’를 하고, 총장 몫 특수활동비는 연말에 모두 현금화하여 ‘저수지’를 만들어놓은 채 국회에는 다 집행했다고 허위보고를 하고, 수사와 무관한 부서에도 ‘수고비’를 지급한 검찰의 불투명한 예산 낭비 천태만상을 널리 알렸다. 이 보도는 송건호 언론상, 리영희상,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상 등 굵직한 연말 올해의 보도상을 휩쓸었다. 

이만큼 대형 이슈가 아니어도 소중한 보도들이 있다. 지난 12월 21일, YTN은 조태열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2020년 사법농단 재판 증언을 단독 보도했다(YTN <[단독] "강제동원 판결, 최대한 연기"...조태열 후보자 증언 논란>). 재판에서 조태열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이 청와대와의 거래 끝에 지연시킨 것으로 알려진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강제동원 판결의 조기 선고를 막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대법원 재항고심 판결이 조기에 나오면 한일 관계에 미칠 외교적 파장이 클 수 있다”는 발언을 반복했고 '대법원 최종 판결 확정 시점을 최대한 연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거나 '대법관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쓴 자신의 메모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거로 보는 게 '일반적'”, “전후배상 문제는 한일청구권 협정 같은 '일괄처리 협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라는 주장도 했다. ‘사법농단’이 아니라 외교부 등 정가에 널리 공감대를 이룬 인식으로 재판이 지연됐다는 취지다. 그러한 정부의 인식이 그대로 사법부 판결에 반영됐다는 사실 자체가 사법부 독립성을 위배한 ‘농단’이라는 상식과 거리가 멀다.

YTN은 강제동원 2차 소송까지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아냈으나 정부가 그 판결을 ‘제3자 변제’로 무력화한 상황에서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오른 인물을 검증하는 데에 꼭 필요한 사실을 ‘발굴’했다. 이런 검증 보도가 그리 주목받지도 못하는 ‘단독’이 된다는 현실이 아쉽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 10월 23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내놓은 단독 보도.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 10월 23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내놓은 단독 보도.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아 소중한 ‘특종’이 된 사례가 많다. 특히 10·29 참사 1주기를 맞이해 수사 기록 1만2천여 쪽, 161건의 수사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MBC 보도가 돋보인다.

MBC는 10월 23일부터 이어진 보도를 통해 △ 참사 전 11건의 압사 신고를 받고 출동하지도 않았으나 ‘안내 종결’로 허위 기록한 정황 △ 경찰 무전방으로 10번이나 압사 비명이 들리는데도 지휘부가 압사 위험을 듣지 못했다고 허위 진술한 정황 △ 참사 4시간 전부터 계속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온통 대통령실 집회 대응에만 몰두하여 기회를 날린 경찰의 참사 당일 행적 △참사 전 회의에서 인파 사고 위험성을 스스로 말하고도 참사 후에는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책임 등을 드러냈다.

MBC 보도는 경향신문, KBS 등 타 매체의 수사 기록 후속보도로 이어져 △ 대통령실 앞 집회 대응으로 인해 기동대 배치를 하지 않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책임 △ 경찰 특수본 수사 기록에 지휘부 책임이 기재되어 있음에도 김광호 청장 등 윗선 수사에 소극적인 검찰 수사의 문제도 드러났다. 10·29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까지 나선 유가족과 시민들의 호소 앞에, 언론이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 극소수의 사례다.
 
PD저널리즘도 제 역할을 했다. 4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부산일보가 처음으로 알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전국 이슈로 띄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바꾸는 데 크게 일조했다. MBC <PD수첩> 팀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를 통해 JMS 정명석과 그 일당을 단죄하는 데 앞장섰다. 말 그대로 언론이 세상을 바꾼 사례들이다. 

KBS <추적 60분> '숙련공의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편처럼 현실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도 가치가 충분하다. KBS <추적60분>은 조선업 호황 속 열악한 처우, 낮은 임금, 재하청 구조 방치로 숙련공이 사라진 산업 현장의 근본적 문제점을 짚었다. 외국인 인력도 대체할 수 없는 숙련공 문제를 드러내어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노동 정책 및 이주민 정책이 지닌 허점까지 파고들 수 있었다. 

어쩌면 군부독재 이후 가장 혹독한 시기에 처한 언론, 특히 방송계는 내년에 과연 세상을 바꾸고 현실의 이면을 드러낼 수 있을까? 전망은 어둡다. 강압적인 민영화 바람과 서슬 퍼런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칼바람 속에, 생존마저 위태롭다. 이는 또 모든 언론의 문제로 돌아간다. 권력의 언론 탄압에 우리 언론은 내년에도 무력하거나 부역할 것인지, 이 질문 하나에 명암이 갈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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