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축소 보도한 언론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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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의사실 공표’ ‘정당법’ 앞세워 소극적 태도
‘헬기 이송 특혜’ ‘지역 의료 외면’ 프레임 부각한 보도 쏟아져

부산 일정 중 흉기 피습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해 입장을 말하며 목을 만지고 있다. ©뉴시스
부산 일정 중 흉기 피습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해 입장을 말하며 목을 만지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다른 거물급 정치인이었다면 달랐을까? 경찰은 이재명 대표 피습 발생 8일만인 10일, 사건을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보수정당 당원으로 5년 간 활동했고 작년 3월에야 민주당에 가입해 이 대표 일정을 파악했다는 사실, 이번 범행에 앞서 미리 작성한 ‘변명문’에서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적개심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경찰은 일관적으로 범행 배경, 당적, 공범 여부에 선을 긋거나 비공개로 일관했다.

10일 일부 공개한 변명문에서 ‘판사가 종북이라 이재명 대표 재판이 지연된다’ ‘이재명 대표 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안 된다’ ‘이재명 대표는 처벌받아야 한다’ 등 더 뚜렷한 ‘국민의힘 관점’의 ‘정치적 동기’가 확인됐지만 결론은 ‘공범 없는 단독범행’이다.

다른 사건에서는 수사 내용이 수시로 흘러나오는데 유독 이번 사건에서만 ‘피의사실 공표’와 ‘정당법’을 앞세워 소극적이다.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마저 말하기를 꺼린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서두른 경찰의 결론은 ‘주관적 정치신념에 경도된 개인의 범행’이다. 

언론도 이에 발맞췄다. <위험수위 넘은 ‘은둔형 정치 훌리건’>(조선일보, 1월 4일)는 사건 이틀만에 ‘극단적 유튜브를 보는 은둔형 정치훌리건의 범행’ ‘최근 민주당으로 성향을 바꾼 인물의 일탈’로 사건을 정리하려 했다. 보도량에서도 빨리 수습하려는 모양새가 드러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이재명 피습’을 언급한 기사는 1월 2일 하루에 2890건이나 나왔지만 국민의힘 계열 정당 활동, 태극기 집회 활동이 알려진 1월 4일, 변명문 내용이 일부 나온 1월 5일을 기점으로 대폭 감소하여 1월 9일엔 하루 313건까지 떨어졌다. 의전 순위 8위 제1야당 대표를 향한 습격 치고는 언론은 지나치게 조용하다. 그나마도 ‘변명문’ 등 사건의 진상과 관련이 있는 키워드보다 ‘민주당 탈당’ ‘헬기 특혜’ 등 정치적 목적이 있는 키워드의 언급량이 훨씬 많았다. 

중앙일보 1월 3일자 5면 기사.
중앙일보 1월 3일자 5면 기사.

‘정치 테러’의 피해자를 두고 음모론과 정치 공세를 야기한 것은 비단 극단적 유튜버들만이 아니다. <중앙일보>가 지난 2일 단독 보도한 <이웃들 "이재명 습격범, 민주당원이라더라…조용한 성격">은 사건 당일 곧바로 범인이 ‘민주당원’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김씨를 15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인근 부동산 대표 A씨’의 “(김씨가) 민주당 당원인 것은 알았지만 한 번도 정치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라는 말만을 근거로 작성된 기사다.

이 기사는 ‘민주당 내분에 따른 테러’ 등 음모론의 불쏘시개가 됐다. 다음날인 3일부터 타 매체의 추가 취재로 다른 이웃, 가족들 증언까지 종합할 때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최소 5년 간 몸담으며 태극기 집회에도 참가했다는 정황이 뚜렷해지고 1월 5일에는 '지난 정부 때 부동산 폭망, 대북 굴욕 외교 등으로 경제가 쑥대밭이 됐다'라는 내용의 ‘변명문’ 내용 일부가 보도되자 ‘민주당원’ 음모론 보도는 사라졌다. 

그러자 ‘민주당원 음모론’의 시작이었던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당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테러는 뒷전, 이재명 습격범 당적만 캔다…최악의 진영 정치>(중앙일보, 1월 5일)는 “‘정치 고(高)관여층’이 범인 당적이나 총선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에서 한국 정치의 수준이 드러난다는 지적”을 전했다. ‘자작극 음모론의 확신’을 심어줬던 ‘민주당원’ 보도를 ‘특종’했던 매체가 할 말은 아니다. 

일부 의사들이 주도한 ‘헬기 이송 특혜’ ‘지역 의료 외면’ 프레임 역시 언론의 공이 크다. 일부 의사들이 사건 다음날인 3일부터 헬기를 통한 서울 이송을 문제 삼으며 ‘특혜’와 ‘지역의료 활성화 거짓말’을 앞세우자 곧바로 <“지방의료 살린다더니 헬기타고 서울행”…이재명 응급이송에 의료계 ‘씁쓸’>(서울경제, 1월 3일)과 같은 보도가 쏟아졌다.

<서울경제> 보도의 경우 단순히 받아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지방의료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국회의원 본인들이 치료받을 때는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라며 프레임 형성에 적극 기여했다.

4일,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위급 상황이 맞았고 가족과 부산대병원 의료진의 동의로 절차에 따라 이뤄진 전원임을 발표한 서울대병원의 공식 브리핑이 있었으나 <[단독] 부산대 외상센터장 “李대표 이송, 바람직 안해...반대 있었지만 가족뜻 존중>(조선일보 1월 4일) 등의 보도는 유감 표명을 한 적도 없는 부산대병원 의사들을 연이어 인용하며 이간질에 나섰다. 서울대병원 발표와 달리 부산대병원이 먼저 전원 요청을 하지 않았고 부산대병원이 동의하기는 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이송을 반대했다는 식이다. 

급기야 <서울지역 교수도 “이재명 자상, 응급실서 봉합해도 충분”>(문화일보 1월 5일) 등 ‘익명 의사’들까지 동원해 서울대병원이 직접 구체적으로 설명할 정도로 공개되어 있는 부상 수준마저 ‘응급실에서도 봉합 가능할 정도로 경미한 부상’이라 왜곡한 사례까지 등장했다. 8일에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병원 업무방해라며 이 대표를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일보>는 9일 ‘부산대 패싱 논란’이라는 간편한 이름도 붙여줬다. 

조선일보 1월 5일자 5면 기사.
조선일보 1월 5일자 5면 기사.

이런 보도들에 따르면 앞으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시민들은 연고에 따른 간병 편의나 생활권의 문제, 수술 후 치료 등을 이유로 전원을 요청할 때 본인이 위급한 정도와 지역 의료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의료진이 요청을 한다고 해도 되도록 헬기는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지역의료 활성화는 지역에서 당장 생명이 경각에 달했는데도 의료기관이나 의료 인력이 없어 생명을 잃는 상황을 막아야 하고 적어도 필수 진료과목 의료 자원은 지역에도 충분히 확보하자는 취지이지 위급한 상황에서 가족과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권을 모두 막고 무조건 지역에서 수술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건의 본질을 어지럽게 헝클어트린 이런 보도의 목적은 분명하다. 테러를 당한 이재명 대표에게 뭔가 책임이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주로 여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보도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의 인권침해가 발생하곤 했는데 제1야당 대표가 피습을 당한 상황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장경태도 “공모 밝혀야”…‘이재명 피습 음모론’ 키우는 민주당>(문화일보, 1월 5일)의 경우 ‘살인미수’와 같은 강력범죄에 있어 당연히 필요한 ‘공범 여부 수사’를 요청한 목소리마저 ‘음모론’으로 치부하더니 “이 대표가 지역 현장을 따라다니는 유튜버와 지지자를 막지 못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강성 팬덤’ 용인이 경호 공백을 초래했다는 지적”까지 내놓았다. 아예 대놓고 이재명 대표가 자초한 피습이라 주장하는 지경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재명 대표, 강성지지층 되돌아보고 ‘통합’ 물꼬 터야>(매일경제, 1월 8일)는 “이 대표 측에 별다른 경각심을 주지 못했던 강성 지지층은 민주당 내 다른 의원들, 특히 비명계 의원들에게는 늘 불안한 존재였다”, “이 대표가 당무에 복귀한 뒤 자신의 강성 지지층 문제를 되돌아보며 ‘통합’의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며 애먼 ‘강성지지자들’을 테러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민주당 끔찍했다, 영원히 만나지 말자"…'탈당 인증' 릴레이>(한국경제, 1월 9일) 등 ‘이재명 대표 피습 중에도 민주당 탈당은 이어졌다’는 식의 보도도 쏟아졌다. 복잡한 ‘프레임’과 ‘음모론’을 논하기 전에, 언론이 최소한의 인간성은 지키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언론이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렸다’며 단념하기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자극성과 폭력성으로 조회수를 노리는 ‘정치 상업화’는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이나 그 ‘상업성’이 권력을 가진 집단을 위해서만 집중적으로 작동한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다. 객관성을 가장한 상업성을 넘어 상업성을 가장한 정치 권력처럼 움직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피습 보도를 주도한 ‘주류 언론’들은, 과연 그러한 의심과 질문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이번 테러가 정말 ‘단독 범행’이라고 한다고 해도 제1야당 대표가 정치 테러를 당햔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언론이 그런 사건을 축소하고 피해자 책임으로 몰아가려 한 주역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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