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하기 좋은 나라는 정의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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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MBC 'PD수첩-99%의 비밀, 재판 없는 처벌 압수수색'

지난 9일 방송된 MBC 'PD수첩-99%의 비밀, 재판없는 처벌 압수수색'편.
지난 9일 방송된 MBC 'PD수첩-99%의 비밀, 재판없는 처벌 압수수색'편.

[PD저널=박종은 MBC PD] 세 평 남짓한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제작진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쾨쾨한 냄새였다. 냄새 너머로 눈에 들어온 건 컴퓨터 한 대와 각종 피규어들이었다. 방에는 제대로 된 침대도, 장롱 하나 놓을 공간이 없었다. ‘대통령 협박 미수’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심권욱(가명) 씨의 첫인상이었다. 

심권욱(가명) 씨는 10·26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좇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압수수색을 당했다. ‘총살 의지’, ‘해악의 고지’, ‘반사회적 검색어’ 등 압수수색 영장에서 그를 묘사하는 단어들은 험악했다. 하지만 압수수색의 이유가 되었던 댓글은 구체적인 살해 협박도 예고도 아닌 그저 카툰 이미지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좇겠다는 말에 대한 패러디에 불과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는 평범했다. 그는 그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소위 ‘키보드 워리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평범할수록 TV 너머로 보던 압수수색 뉴스가 비로소 피부로 와닿았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정치인도 아닌 그가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기획 당시 압수수색이라는 아이템이 일반인들에게 멀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심권욱(가명) 씨는 무기력하게 강제수사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VIP(대통령)과 관련한 압수수색은 심권욱(가명) 씨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발생했다. 대통령실 경호처의 실탄 분실과 관련해 포털 압수수색을 시행해 수많은 사람들의 검색기록을 열람했고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7개 언론사 13명의 기자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범위는 사무실, 자택을 따지지 않았고 주거의 안정이라는 기본권은 지켜지지 않았다. 무분별한 압수수색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해 검찰(청구)과 법원(발부)을 거치도록 했지만 대통령을 위한 수사에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작하는 동안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해서가 아니었다. 취재할수록 수사기관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압수수색 영장 내용은 허술했으며 혐의를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압수수색 영장은 판사님용 소설’이라는 현직 검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9%였고, 개인이 압수수색에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때문에 함께 일하는 제작진들에게 언제든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압수수색 당하는 꿈을 꿀 정도였다.

지난 9일 방송된 MBC 'PD수첩-99%의 비밀, 재판없는 처벌 압수수색'편.
지난 9일 방송된 MBC 'PD수첩-99%의 비밀, 재판없는 처벌 압수수색'편.

‘걸릴 게 없으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 한 수사관은 압수수색에 대해 너무나도 쉽고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수사관의 말처럼 가볍지 않았다. 법원에서 유무죄를 다투기 전, 압수수색 대상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건설노조, 4대강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양곡법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등 정부의 정책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낸 이들 모두 압수수색을 당했다.

문제는 이들 모두 압수수색 영장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는 것이었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내용은 검찰이 책임지지 않은 단순 의혹에 불과함에도 기사를 통해 사실처럼 보도되었고 압수수색 대상자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검찰도 언론도 그들의 고통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형사법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99명의 범죄자를 잡는 것보다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 원칙은 현재 압수수색 영장 제도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과거 1997년, 우리 사회는 수사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속영장 실질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수사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구속영장 실질 심사 제도 도입 후 구속영장 발부율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인권 상황은 개선되었다. 이러한 과거 경험에도 검찰은 여전히 수사의 효율성을 핑계로 압수수색 영장 실질 심사 제도에 반대한다. 

방송이 나가고 심권욱(가명) 씨에게 문자가 왔다. ‘수사를 당하고 있는 몸이라 메시지를 보내는 것조차 다른 분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는 그의 말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언제 어떻게 또 압수수색이 들어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사회는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사가 어려워질지언정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나쁜 놈들을 잡는 것에 매몰되어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걱정할 정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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