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없는 공정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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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지난 20일 CBS 주말뉴스쇼에 출연한 '공정감각'의 저자 나임윤경 교수.
지난 20일 CBS 주말뉴스쇼에 출연한 '공정감각'의 저자 나임윤경 교수.

[PD저널=박재철 CBS PD]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썰리는’(삭제되는) 글들이 묶여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공정감각>. 우리는 안다. ‘공정’ 만한 정치적 수사가 없다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청중의 마음속에 ‘공명’보다는 ‘공허’를 깃들게 하는 말, ‘공정’.사용 빈도가 높을수록 “큰 옷 속에 감춰진 우리 사회의 허약한 신체”만이 드러날 뿐이다.

신간 <공정감각>의 마중물은 한 대학생의 고소 사건이었다. 지난해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 요구로 교내 집회를 연다. 이에 대해 수업권 침해 이유를 들어 재학생이 경찰에 고소를 한다. 이후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이 더해져 법적 소송에까지 이른다.

초기, 언론의 보도 뉘앙스는 해프닝 쪽에 가까웠다. 짐작컨대, 한 명문대생의 과민한 반응과 과도한 대응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달랐다. 문제 제기에 대한 옹호와 지지가 예상을 웃돌았다. 전국 대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남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 타임>에는 고소자를 응원하고 공감하는 한편, 청소노동자를 향해서는 거친 비하와 날것의 혐오를 퍼붓는 내용이 상당수였다. 

나임윤경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청년세대의 이 불가해한 분노를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오고자 <사회문제와 공정>이란 수업을 개설한다. 해당 이슈의 강한 휘발성 때문인지, 사전 유출된 그의 강의계획서마저 도마 위에 새겨지는 칼자국마냥 전방위적으로 난타당한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에브리 타임>에 자신들의 생각을 올렸다. 하지만 이 인터넷 커뮤니티는 정치적 편향성을 내세워 그 글들을 삭제한다. “글의 내용이 정치적인가? 아니면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자의적으로 붙여 삭제한 것이 정치적인가?” 묵언은 자주, 묵인으로 오해된다. 오랜 자문 끝에 교수와 학생들은 의기투합해 책 출간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출판 배경이다.
 
<공정감각>은 우리 사회 공정 담론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나임윤경 교수를 프로그램에 초대해 관련 질문을 이어봤다.

나임윤경 교수가 펴낸 '공정감각'
나임윤경 교수가 펴낸 '공정감각'

-책 제목이 <공정감각>이다. 공정과 감각은 어떻게 연결되나?

"가끔 어머니하고 코미디 프로를 보면, 저는 깔깔 웃는데 엄마는 물으세요. ‘저게 뭐가 웃기니?’ 근데 그게 왜 웃긴지 설명하다 보면 유머의 의도랄까, 본질 이런 게 사라지고 말죠. 유머로 서로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는 건 바로 ‘유머 감각’ 때문인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에 대해 왜 공정해야 되나? 따지고 이유를 묻지 않는,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감각, 그런 감각을 사회 대다수 구성원이 가지고 있을 때 그 사회가 공정한 거죠. 우리가 공정에 대해서 어떤 논리나 명분보다는 감각처럼 직관적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제목입니다." 

-소송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분노보다는 그 분노가 향하는 지점이 잘못됐다는 시각인데. 

"호텔에 투숙했는데 옆방이 시끄럽다고 가정해보면, 우리는 어디에 불만을 토로하지요? 직접 노크를 하고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하나요? 아니죠.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하죠. 호텔 숙박료에는 고객의 쾌적하고 안락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비용도 포함이 된 거니까. 학생들의 수업권, 매우 중요하죠. 근데 만약 그 중요한 수업권이 침해됐다면, 그 요구사항은 누구에게 전달되어야 할까요? 학교 총장이나 해당 관련 부서 쪽에 전달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자기의 권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라고 보는 거죠." 

-그렇다면 왜 학교로 향해야 할 분노가 청소노동자에게로 갔다고 보는지?

"요즘은 과외 아르바이트도 시급으로 준다고 해요. 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보상하겠다는 일견 합리적인 계산에서 나온 행위죠. 근데 월급과 시급은 뭐가 다를까요? 월급 안에는 과외 시간에 늦으면 택시를 탈 수도 있는 교통비, 수업을 미리 준비하는 시간에 사 먹을 수 있는 간식비, 아이들과 간혹 이런저런 고민 상담에 따른 비용도 넓은 의미에서 포함된 개념입니다. 

노동자로 치면 복지에 가까운 건데, 이게 효율적이지 않다고 본 거죠. 시급을 주는 사람 입장에선 '공부 말고 딴짓을 왜 해? 과외 자리는 없고 할 사람 많다. 싫으면 안 하면 될 거 아니냐?'라고 반문해요. 기업과 정부에만 경쟁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있는 게 아니죠. 이젠 민간이나 개인 차원에도 그 신념이 넓게 펴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이 정도까지 온 거예요. 대학생들마저 점점 이 구조를 못 보는 구조맹(構造盲)이 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해요. '그렇게 월급이 적으면 데모할 게 아니라 다른 일 하면 되지 않나? 누가 청소 일하라고 등 떠밀었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자조 섞인 옛말이 있다. 우리 사회는 억울함의 탈출구를 개인의 출세에서 찾았다. 억울함을 유발하는 구조는 여전히 남아 다른 누군가에게 또다시 그 억울함이 재현된다. 그래서인지 그들에 대한 차등적 대우가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짙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봤듯이, 어마어마한 돈을 내걸고 서로가 서로를 열심히 죽게 만들죠. 최후의 ‘한 사람’이 다 차지하는 시스템 안에 사람들은 바로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자발적으로 경쟁에 뛰어드나요? 근데 그 룰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팔장을 끼고 살육 경쟁을 즐기잖아요.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존하지 못했다고 여기게 하면서. <오징어 게임>은 이제 TV 속에서만 있는 세계는 아니지 싶어요."

-이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 “능력에 따른 대우의 차등화가 정당하다”는 소위 능력주의다. 이 문제는 ‘3루에서 태어났는데 3루타를 쳤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말로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화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죠. 청년세대의 반발 명분이 ‘공정하지 않다’는 거였죠. 열심히 준비해서 공채로 들어온 입장에서는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특혜를 받은 것처럼 여겼던 겁니다.

근데 생각해보죠. ‘능력’을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죠. 일터에서 배운 다양한 상황 대처와 업무 숙련도, 조직에 헌신하는 태도에서 오는 평가도 능력일 수 있죠. 시험성적이나 채용방식 혹은 출신 학교나 자격증 소유 등의 능력보다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인천공항의 지위는 비정규직 군의 저임금 구조에 나온 결과라는 인식이 있다면 이 이슈는 당시, 충분히 토론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더구나 그때는 고 김용균씨 사망과 구의역 김군 사건 등으로 청년세대 양극화도 노골화했던 시기였으니 말이죠. 청년을 표심으로만 보고 물러설 게 아니라 그때 정부가 좀 더 설명을 했어야 한다고 봐요. 공정에 대한 좋은 학습의 기회였는데 그걸 놓쳐 아쉽습니다."

-‘공정감각’이 다른 이의 처지를 상상하고 살피는 ‘공존감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뭐라고 진단하나? 

"학생들하고 가끔 회식을 해요. 회식비는 대개 교수가 반을 내고 학생들이 나머지 반을 나눠서 냅니다. 근데 사실 식사량은 학생들이 더 많죠. 그런 이유를 들어 교수도 그냥 1인분을 내는 게 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어떤 사람은 1루에서, 어떤 사람은 3루에서, 또 어떤 사람은 야구장 밖에서 태어날 수 있어요. 1루에 태어난 사람과 3루에 태어난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기회를 부여받는 게 과연 옳으냐, 공정한 거냐? 이런 질문, 우리 모두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해요." 

2022년 7월,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사무실에 '열심히 일해온 노동자를 공격해서 살림살이 얼마나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글이 붙어 있는 모습.©뉴시스
2022년 7월,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사무실에 '열심히 일해온 노동자를 공격해서 살림살이 얼마나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글이 붙어 있는 모습.©뉴시스

“공정과 상식”,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캐치 프레이즈였다. 전 정권의 불공정과 몰상식을 일소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정부였다. 취임 후 2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은 어떻게 구현되고 있나.

구체적이고 첨예한 사회 갈등의 현장에서 공정은, 그리고 상식은 담론장에 계속해 소환될 것이다. 그때마다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이 개념은 점차 그 육체성을 갖춰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질문들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의 공정 기준은 승패자 모두에게 자발적인 수긍을 이끌어 낼 만큼 정의로울까? 능력에 따른 차등 배분은 경쟁 사회에서 불가피한가, 그 상한선 논의는 무의미한가? 우리 사회는 ‘능력’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나? <공정감각>은 공정이라는 커다란 공란을 채워줄 질문의 퍼즐 조각들을 많이 품고 있는 신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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