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무감해진 시대, 선함의 가치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필독도서 74] '비바레리뇽 고원'

지난 2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 지상군과 공습으로부터 대피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모습. ©AP/뉴시스
지난 2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 지상군과 공습으로부터 대피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모습. ©AP/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 피를 토하는 쥐 몇 마리가 계단 위에 나뒹굴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면 이미 도시는 거대한 수용소가 되어 있다. 원인도 모른 채, 대책도 없이 서서히 퍼지는 질병 앞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누군가는 신을 찾고, 누군가는 타인을 저주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기약도 없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로서 전쟁을 은유한다. 전쟁이란 끝 모를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방향을 쉽게 잃는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았는지 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의 행위를 쉽게 판단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전쟁이 그날 끝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영화 <밀정>에서 염석진이 변명하면서 내뱉은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는 말은 우리 입에서도 나온다. 심지어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안개가 언제 걷힐지는 몰랐다. 차이가 있다면, 언젠가 안개는 걷히고 땅바닥에 자신의 발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는 점이다.

믿음이 예외를 만든다. 남프랑스 한복판에 있는 비바레리뇽 고원에서는 예외가 일어났다. 까뮈가 잠시 머물렀던 그 곳에서는, 목숨을 걸고 이방인을 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파시즘의 광풍을 피해 도망쳐 온 유대인들, 공산주의자들은 어딘지도 모를 고원이 자신을 반겨줄 것이란 믿음 하나로 몰려들었다. 나치 독일에 협조적인 비시 정권은 때때로 이곳에 경찰들과 군인들을 보냈다. 그 때마다 평범한 주민들은 그들을 벽 뒤에 숨기고, 산으로 피신시켰다.

무엇이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가능하게 했을까? 전쟁과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이 예외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니엘 트로크메라는 인물은 부유한 집안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 불길한 박해의 기운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고원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부모에게, 어떤 삶을 살지 스스로 선택했다는 편지를 보내고, 도망쳐온 아이들을 교육했다. 그 대가로 그는 1943년 체포당하고, 이듬해 폴란드의 한 수용소에서 죽었다. 

매기 팩슨은 다니엘과 고원의 사람들이 모두 미래에 대한 약속 없이도 이방인들을 조건 없이 환대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고원'(책의 원제이기도 하다)에는 무엇인가 평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건 아닐까. <비바레리뇽 고원>은 선함의 뿌리를 찾아 고원으로 향하는 매기 팩슨의 이동 경로로 우리를 이끈다.

1930년대, 프랑스는 도피처였다. 서쪽에서는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한 공화파가 국경을 넘어 도망쳐 왔고, 동쪽에서는 혁명에 실패한 독일의 공산주의자들과 해체된 거대 제국의 유민들이 피아 구분 없이 프랑스로 밀려들어왔다. 집권에 성공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안한 평화는 금세 사라졌다. 1938년엔 오스트리아, 1939년엔 체코와 폴란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다음은 어디일까? 히틀러의 총구는 서쪽으로 향했다. 1940년, 히틀러는 에펠탑 앞에서 웃음 짓고 있었다. 프랑스에 머무는 이방인들은 선택해야 했다. 도망가거나 죽거나. 비시 정권은 머지않아 영토 안에 머무른 이방인들의 목록을 세세하게 적어 내려갈 것이었다. 

인류학자 매기 팩슨이 쓴 '비바레리뇽 고원'
인류학자 매기 팩슨이 쓴 '비바레리뇽 고원'

다니엘이 향한 비바레리뇽 고원은 고립된 곳이었다. 5천 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사는 이곳은 언어, 종교, 정치적인 섬이었다. 주민들은 고립된 공간에 숨어들어온 이들을 재우고, 먹이고, 탈출시켰다. 종교전쟁이 한창일 때엔 위그노를, 프랑스 혁명이 엄중할 때엔 가톨릭 신부를, 때로는 식민지의 아이들과 스페인의 난민을, 그리고 유대인을 고원 속에 숨겼다. 

이방인을 환대하는 일은 어렵다. 웃는 얼굴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들은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니, 사라지는 게 편하지 않을까?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살기를 선택한다. “확실히 홀로코스트 때는 대다수가 그렇게 행동했다.” 다니엘, 앙드레, 그리고 고원의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박해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영웅적인 인물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종교 때문일까?

그녀는 인류학자로서, 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구조적인 힘을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종교는 답이 아니었다. 종교가 '환대'를 보증하진 않는다. “전 세계의 다른 개신교인(예를 들면 당시 독일 인구의 66퍼센트)이 전시에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아주 조금만 제시해도 이 가설은 반증된다.” 고원에 대한 관심이 주로 특정 종교 안에서 맴돌았단 사실은, 이 고원에서 벌어진 환대를 자기 종교의 것으로 귀속시키려는 욕망만을 드러낼 뿐이다.

지역의 역사성과 전통 때문일까? 고립된 공간이라고 해서 환대에 모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해받은 경험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공간이 환대를 예정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여정 끝에 결론 내린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사랑을 품는 것, 앞으로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밀어붙이겠다는 결의만이, 환대와 평화를 자라나게 한다.

대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그녀는 묻는다. '우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소한 목록들의 집합이다. 친구란 뭘까? 이웃이란 뭘까? 어떻게 생겼고, 어떤 피부색을 지니고 있을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종교를 믿으며, 어떤 문화적 관습을 따를까? 구체적인 질문들이 겹쳐지면 경계선이 드러난다. 사냥해야 할 유대인들의 명단을 생각 없이 적어 가던 공무원들과 달리, 다니엘은 망설임 끝에 고원에 있는 이들의 종교 내역을 삭제한다. 이 망설이는 결단이 ‘수용(Accueil)’일 것이다.

오늘날 고원은 여전히 난민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오래된 전통을 훼손시키는 사례들도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전통을 바꿔 이방인을 문 밖으로 내모는 대신 환대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까뮈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서 “상황이 마땅히 흘러가기를 기도하는 것은 일종의 숙달된 체념일 뿐”이라며 “그 체념 뒤에는 겸손이, 그 겸손 뒤에는 굴욕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느 쪽이 더 나은 결론인지 그 답을 내리진 못했다.

평화는 공백이 아니다. 다양한 평범한 사람들이 기약 없는 미래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리라는 희미한 믿음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하고자 결의함으로써 간신히 만들어지는 계기다. 우리를 선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주는 ‘고원’은 없다. 과감히 말하자면,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사소한 행동만이 무언가 달리 될 가능성을 만든다. 인간이 만든 모든 진보가 그러하듯이. 지금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모든 것을 낱낱이 합리성과 경제적 계산으로 분해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행할 수 있는 그 무모한 게으름을 지닌 사람들은 누구인가.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