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KBS 대담 ‘약속대련’ 완성해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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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신년 대담, '명품 수수 파문' 사사로운 문제로 프레임 덧칠
‘솔직한 대통령의 대담’ 미리 흘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 보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신년 대담 사전 녹화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신년 대담 사전 녹화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취임 100일을 제외하고는 기자회견도 없이, 대대적으로 약속했던 출근길 약식회견마저 취임 반 년도 되지 않아 접어버린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대담을 내놨다.

KBS에서 ‘메인 앵커’를 꿰찬 박장범 앵커는 대통령 대담을 진행하면서 김건희 씨 명품 수수 파문을 ‘조그마한 파우치를 방문자가 놓고 간 사건’, ‘부부싸움 거리’ 정도로 축소해 질문했고, 대통령의 여당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를 두고 당무개입과 ‘김건희 리스크’를 묻어둔 채 ‘한동훈 위원장을 평가해달라’ 질문했으며,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비판세력을 향한 ‘공산 전체주의’ 공안정국‧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 뒤집기를 강행한 대통령을 ‘너무 조심하는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일본의 전쟁범죄와 불법적 식민지배를 향한 왜곡과 부정 문제를 ‘한국 국민의 감정적 문제’로 격하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궁합을 묻기도 했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좌파 대통령’으로 규정하더니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칭했다. 이념적으로도 사실에 대한 편협한 규정 측면에서도 대통령의 퇴로를 전제한 질문들 덕에 대통령은 당무개입 논란과 김건희 씨 명품 수수 파문, 고물가 및 은행 금리 인하 압박 등 경제 정책, 한미일 동맹에 ‘올인’한 적대적 대북 안보정책에 있어 사과와 반성 없이 그간의 강경한 입장만 재확인했다.  

이는 대담 일정이 알려진 순간부터 예견된 일이다. 다수 언론이 ‘약속대련’이라 우려했고 대통령은 ‘명품 수수 파문은 정치공작이지만 국민이 불편해할 수 있는 문제’라며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메시지를 맞추는 한편, ‘김건희 씨가 매정하지 못해 발생한 사사로운 문제’라는 신박한 프레임을 덧칠했다. 

뻔했던 대통령의 대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대담이 2월 4일 촬영되고 7일 공개될 때까지 언론의 행보다. 정부-여당의 ‘약속대련’을 완성한 건 이번에도 언론이다. 1월 23일 서천특화시장 대형 화재 피해자들을 들러리 세운 ‘화해 퍼포먼스’로 완성된 ‘한동훈 사퇴 요구’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윤석열-한동훈 약속대련설’의 시작은 쿠키뉴스에 대통령의 한 위원장에 대한 불신과 격노를 전한 “대통령실과 밀접한 여권 관계자”였다. 

지난 4일 채널A가 단독 보도한 리포트.
지난 4일 채널A가 단독 보도한 리포트.

이제 공교롭지도 않은 ‘용핵관’ ‘용대관’ 등 ‘윤핵관’의 후속 ‘익명 인사’들은 이번 대통령의 KBS 대담에서도 활약했다. ‘약속대련’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려다 약속대련 의심을 더 키웠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대담이 촬영됐다는 2월 4일, 채널A는 <‘참모 예상 질문’ 거절… “내 생각 그대로”>라는 단독보도로 대통령이 “참모진으로부터 예상 질문과 답변 등을 보고 받았지만, 참고하지 않겠다며 거절의 뜻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고, “참모들에게 "어떤 질문이든 마다하지 않고 다 받겠다"며 "참모들이 준비해준 답이 아닌,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실제 녹화한 대담에서는 김 여사 문제 등 현안들에 대한 질의응답이 가감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솔직한 태도’에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갈등 문제 등 최근 대통령실을 둘러싼 민감한 현안 질문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속내를 밝힌 뒤 비판이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감내하겠다는 취지”라고 미사여구도 달아줬다. 언뜻봐도 이상한 문장들로 구성된 기사다. 기자가 대담 촬영 현장을 직접 봤다면 ‘대통령이 예상 질문을 참고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거나, ‘대통령이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강조했다’는 걸 “파악됐다”고 전할 이유가 없다. 그냥 보고 들은대로 전하면 된다. 단순한 사실들에 “파악됐다” “확인됐다” “알려졌다”와 같이 어색한 피동형 문장을 남발한 건 기자가 보고 들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 기사는 출처도 없이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기자가 대담 촬영 현장을 보고, 대통령의 발언을 들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출처는 딱 한 번 등장한다.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현안에 대해 질문과 답이 있었고 사전 질문지 등 준비 자료는 없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을 기사 말미에 인용했다. 아마 ‘확인’되고 ‘파악’되고 ‘알려진’ 대통령의 ‘솔직 대담’는 모두 이 ‘대통령실 관계자’가 흘려준 ‘오더’였을 가능성이 높다. 4일 녹화 시점까지 대통령실이 언론에 공식 공지를 보낸 적이 없고 4일 첫 공지에서도 얼마나 대담을 했고 정확히 언제 방영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등 대통령실이 이번 대담에 철저히 비공개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이 기사의 ‘익명 관계자’는 튀어도 너무 튄다.

사흘만 기다리면 공개될 대통령의 대담을 굳이 익명 관계자를 빌어 보고 들은 것도 없이 ‘파악됐다’는 기이한 문장을 반복하면서 미리 구체적 내용을 흘리는 이유는 이젠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하다. ‘김건희 리스크’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윤 대통령의 ‘변화’나 ‘가감없이 질문에 답하는 윤 대통령의 소통 노력’을 보여주려는 ‘홍보’ 대행을 넘어, 여론과 정치권 반응을 떠보기 위한 목적이 유력하다. 

‘윤석열-한동훈 갈등’ 국면에서도 똑같았다. 1월 21일, 윤 대통령의 ‘지지 철회’를 미리 흘린 ‘대통령실과 밀접한 여권관계자’ 발 기사로 사태가 발발하자 곧바로 한동훈 위원장이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며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을 인정했고, 이에 시민들 반응은 물론 보수언론까지 일제히 윤 대통령을 비판하자 불과 3일만에 ‘화해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모든 게 ‘오해’라는 ‘친윤’ 이철규 의원의 반응이나 김건희 리스크에 무조건 ‘이미 말했다’고 일관하는 한동훈 위원장, 대통령실과 ‘친윤’의 압박으로 결국 불출마에 이른 김경율 비대위원까지, 조급한 수습 국면에서 대통령실과 여당 모두 혼란과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이 ‘약속대련’을 완성시켜 준 것은 지난 1월 22일자 <문화일보> 사설 <金여사 해법 뻔한데 韓 흔드는 尹대통령, 민심 모르나>와 같은 일성으로 ‘윤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한동훈 체제의 국민의힘’을 띄운 언론이었다. 

이번 KBS 대담도 마찬가지다. 실제 ‘약속대련’ 여부는 촬영 현장을 보지도 않고 보도한 채널A 보도처럼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익명 관계자발로 ‘솔직한 대통령의 대담’을 미리 흘리고 7일 공개 이후 이에 화답하는 수많은 보도들로 ‘약속대련’은 완성됐다. 대담 직후 김건희 씨의 명품 수수가 신고 의무가 있는 공직자 가족의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거나, 대통령기록물법상 ‘선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혹의 본질’을 상기시킨 보도는 찾기 어렵다. <조선일보>  사설 <내용·형식 미흡 尹 대담, ‘앞으로 조심’ 약속이라도 지켜야> 등 일부 보수매체는 ‘사과도 없었고 형식도 미흡하다’며 윤 대통령을 비판했으나 ‘종북인사로 인한 사건’이라는 인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신문 2월 8일자 사설
서울신문 2월 8일자 사설

<서울신문> 사설 <윤 대통령 대담… 金 논란 접고 내일 놓고 싸워라>의 경우 김건희 씨 명품 수수 파문을 처음부터 “김건희 여사에게 가해진 친야 매체의 몰래카메라 공작”으로 전제한 채 대통령이 설명을 했으니 “수사당국은 대공 용의에 착안해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 종용했다. 대통령이 그나마라도 밝힌 ‘매정하지 못했던’ 문제점마저 숨겼고, 대통령이 ‘만들어도 비위를 막지 못한다’고 못박은 ‘제2부속실’은 뜬금없이 “더 늦출 일이 아니다”라고 촉구했다. 애써 대담을 못본 척하고 ‘용공사건’을 만들어 시선을 돌려준 것이다. ‘대한늬우스’ 시절이 떠오른다. 

이미지 쇄신과 분위기 전환을 원하는 권력에 발맞춰 드라마를 완성시켜주는 언론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은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어느 쪽이든 이미 공론장 역할과 시민적 신뢰에서는 한참 멀어졌다. 독자를 잃은 언론은 기형적 방식으로 연명하고 있고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방식 등으로 악순환을 반복한다. 이게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미디어 환경의 변화 이후 생존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언론은 오랫동안 관성화되어 어뷰징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정치 보도’의 환상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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