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복수 드라마는 왜 흥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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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의 엔터Enter 6] 

MBC '밤에 피는 꽃'
MBC '밤에 피는 꽃'

[PD저널=원성윤 스포츠서울 기자] “지엄한 국법(國法)이 힘없는 백성을 구할 수 없다면 내가 그들을 구하면 되지 않습니까.”

 MBC <밤에 피는 꽃>에서 수절 과부인 조여화(이하늬)는 밤이 되면 정의를 실현하는 다크 히어로로 변신한다. 유교사회 속 정절을 강요당하던 조선시대에 밤에는 검은 복면을 쓰고 백성을 구휼(救恤)한다. 

여화는 고리채와 어린이 인신매매를 일삼는 상단의 두목 강필직(조재윤) 배후에 여화의 시아버지이자 좌의정인 석지성(김상중)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복수가 시작된다. 결국 석지성은 역모죄로 천민으로 강등된다. 지방으로 귀양을 가는 것으로 죗값을 치른다. <밤에 피는 꽃>은 MBC 역대 금토극 가운데 시청률 1위(18.4%)를 차지했다. ‘이준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옷소매 붉은 끝동>(2022, 17.4%)을 눌렀다.
 
사적 복수 서사는 늘 흥미롭다. <더 글로리>(2022)에서 박연진(임지연)의 학교폭력은 실화를 기반으로 김은숙 작가 특유의 감칠맛 나는 대사가 얹히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진이 최후에 교도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날씨를 소개하는 장면에선 처연함과 통쾌함의 감정이 교차한다. <비질란테>, <마스크걸>, <국민사형투표> 같은 드라마가 계속 이어진 것도 이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사법부가 판결을 제대로 못해 이런 드라마가 나오게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법부가 3심 제도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재심을 통해 뒤집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비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사법 정의를 정권과 연계짓는 건 무리수다. 시대적 반영이라는 것도 무조건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있어 왔기 때문이다. 

SBS '모범택시2'에서 화려한 부캐 플레이를 선보인 이제훈 배우.
SBS '모범택시2'

SBS <모범택시>에서 기사 김도기(이재훈)가 보여준 사적 복수도 시즌1에서 시즌2로 넘어가며 사법적 판단을 구한다. 개인 감옥에 가두거나 고문하는 건 괴물을 잡으려다 스스로 괴물이 되는 모습이기에 썩 유쾌하지만 않다. <모범택시>가 반향을 일으킨 것은 수사기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새로운 빌런’이 나타나는 곳에 집중했기 떄문이다. 새우젓갈 공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람들, 불법촬영물 웹하드로 막대한 부를 쌓은 박양진(백현진)과 같은 현실적 소재를 에피소드별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여기에 <그것이 알고싶다>와 같은 고발성 다큐적 서사로 시청자 공분과 공감을 샀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영화는 영화다. 이야기 매력은 허구에서 시작된다. ‘복수’는 공적이지 않고 ‘사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밀하고, 읽고 보는 이에게 대리 복수감을 선사한다.   

이제 20년도 더 지난 영화 <올드보이>(2003)는 나올 당시 찬사는 커녕 “역겹다”는 평이 넘쳤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오대수(최민식)가 15년간 감금된다는 것만 빼고 스토리를 모조리 다 갈아엎었다. 다만 ‘사적복수’ 키워드는 거두지 않았다. 오대수는 자신의 말로 이우진(유지태) 누이를 죽게 만든 검투사 가위로 혀를 자르며 죄를 용서받고자 했다. 그럼에도 우진이 놓은 덫에 대수가 딸 미도(강혜정)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내용과 수위에 난감해 하던 최민식을 보고 박 감독은 이런 말을 던진다. “햄릿은? 오이디푸스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햄릿>은 등장인물 전원이 사망하는 복수 비극이다. 햄릿은 삼촌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복수극을 꾸민다. 삼촌이 왕인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증오해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아들이 어머니에 과도한 애착을 느끼며 아버지와의 대립을 경험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용이하다. 영화 <올드보이>가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30위에 든 것은 ‘사적 복수’라는 소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와 그를 쫓는 형사 이야기를 그린다. 선악이 모호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현대적 서사의 특징이 드러난다. ‘죽어 마땅한 자’들을 죽이게 되는 이탕(최우식)의 능력을 보며 우리는 ‘복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허구적 서사가 주는 매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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