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하고도 수상한 '듄: 파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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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치의 엔터테인먼트 체험 제공하는 수작의 탄생

'듄: 파트2' 스틸컷.
'듄: 파트2' 스틸컷.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눈여겨 볼 영화가 등장했다. '보아야 한다'는 표현은 호들갑 같아서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홍보해 줄 뜻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관람 혹은 목격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 시대 영화 산업이 제공하는 최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체험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 드니 빌뇌브가 연출하고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영화, <듄: 파트2>에 대한 이야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듄: 파트2>는 기이한 수작이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에 대해 쓰려고 펜을 잡았다. 

먼저 이 영화는 두말할 것 없는 수작이다. 잘 만들었다. 그런데 '수작'이라 표현한 이유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그저 드니 빌뇌브가 열심히 찍었고,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드니 빌뇌브라는 독특한 감독과, '듄'이라는 명작 사이의 절묘한 만남에 기반한다. 

드니 빌뇌브는 우리 시대 주요 감독 중 하나지만, 연출력이 매우 탁월한 편은 아니다. 오히려 호불호를 타는 축에 속한다. 다만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나 <컨택트>(2017),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그을린 사랑>(2011) 등 그의 대표작에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장엄한 영상미를 통해 스펙터클을 이끌어낸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드니 빌뇌브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의 서사가 충돌하고 얽어지는 과정에 자주 관심을 둔다. SF 세계관에 기반한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컨택트>는 이종 간의 접촉을 그리고,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그을린 사랑>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충돌을 풀어낸다. 그러니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은 드니 빌뇌브의 주요한 테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테마와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드니 빌뇌브의 작품에는 부침이 있다. 때로는 정말 괜찮고 때로는 좀 아쉽다. 그 주된 이유는 시나리오다. 그의 작품은 여러 세계관을 다룰 정도로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설정이 탄탄하고 디테일이 촘촘해야 명작이 된다. 물론 모든 영화가 시나리오에 좌우된다. 그런데 드니 빌뇌브의 경우 그 정도가 더 크다. 그의 연출력은 시나리오의 서사가 탄탄하고 설정과 디테일이 단단해야 빛을 발한다. 좋았던 사례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이고, 조금 아쉬웠던 사례가 <컨택트>다.

그런 드니 빌뇌브가 '듄'과 만난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는 SF 대하소설 시리즈. 그에게 필요한 요소들이 가득 채워졌다. 그러니 처음부터 <듄> 시리즈는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여기에 할리우드 자본과 동시대 최고의 배우들이 만나니, 이건 '영화'라기보다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최전선에 가깝다. 외계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드니 빌뇌브가 마음껏 그려내는 영상들은 아름답다. 많이들 언급하는 540도 촬영 외에도, 망망대해 같은 사막을 건너는 폴(티모시 샬라메)의 이미지는 마치 회화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수작이 탄생했다.

'듄: 파트2'
'듄: 파트2'

자, 이쯤에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이 작품이 '기이한' 수작이라고 했다. 그 부분을 말할 차례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듄: 파트2>에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드니 빌뇌브는 이 작품을 연출하며 메시아를 경계하는 원작자의 의중을 반영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듄: 파트2>에는 초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려, 정치와 종교가 얽혔을 때의 위험성이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에서 그러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본 것은 그 반대에 가깝다. 영화는 스스로 창조한 메시아에 매혹되어 있다. 예를 들어, 폴이 '리산 알 가입'으로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나는 초인의 위태로운 등장이 아니라, 공포와 경이가 뒤섞인 절정의 스펙터클을 보았다. 폴과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가 정적들을 하나둘 무찌르는 장면들. 그 순간을 압도하는 것은 승전의 쾌감이다.

초인에 대한 경계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은 챠니(젠데이아)이다. 하지만 폴의 결단에 반대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저 "믿지 않는다", "미신이다"라고만 반복하기 때문에 그저 믿음이 부족한 신도로 보일 뿐이다. 차라리 그녀가 연인으로서의 드러내는 불안감이 좀 더 설득력 있다. 이것은 연출력의 문제로 보인다. 아니, 애초에 드니 빌뇌브에게 '리산 알 가입'을 경계할 마음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메시아를 믿는 쪽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 함정에 기꺼이 걸어들어가는 이 영화의 태도는 기이하다. 

<듄: 파트2>를 두고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황홀한 SF가 도착했다는 것만은 여지없이 인정할 만하다. 서걱거리는 사막의 황량함과, 푸른 생명수의 이질적인 아름다움은 쉽게 잊기 어렵다. 황홀하고도 수상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듄: 파트2>는 우리를 '듄'에 데려다 놓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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