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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폭력 원인보다는 현상에 치중
자극적 영상 되풀이… 피해·가해자 이분법 접근
어른흉내 원인 심층분석 없이 “어찌 이럴 수가…”

|contsmark0|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사는 강기철(가명·15세)군은 지난해 봄 하교길에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를 알 수 없는 형들에게 1만원을 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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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은 “빌려달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삥을 뜯’긴 것이다. 그 뒤 이들은 수시로 기철의 학교에 찾아와 돈을 빌려갔고 하교길에는 기철을 기다렸다 동대문으로 끌고가 돈도 주지 않으면서 “담배와 옷을 사오라”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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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년 동안 참다 학교와 경찰에 알렸으나 경찰은 귀찮다는 듯 “학교와 이름을 모르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한명만 잡아오면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남겼다. 이른바 일진회 형들에게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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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막힌 사실은 기철 역시 일진회 맴버라는 것. 기철은 “내가 우리학년 짱인데 다른 학교 형들에게 삥을 뜯긴다는 게 쪽팔려 말을 하지 않다가 점점 심해져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철에게 최근 일진회 관련 언론보도를 어떻게 보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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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문과 방송에서 학원폭력에 갑자기 관심을 쏟는지 모르겠어요. 방송은 짜증나요. 이미 다 아는 사실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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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무감각해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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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 9일 경찰청에서 실시한 학원폭력 실태 워크숍, 14일 경찰청이 내놓은 ‘학원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치안대책’ 등 학원폭력 근절을 위해 교육부와 경찰청이 손잡으면서 최근 언론의 관심은 ‘독도’와 ‘일진회’에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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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반올림>에서 봤던 중학생 옥림이와 욱이의 사랑얘기 정도가 ‘요즘 애들’ 얘기의 전부라고 여겼던 어른들은, 학교에 일진회가 만연해 있고 그들이 모여 단합대회를 하고 공개적인 성행위를 하며 논다는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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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은 17일 일진회의 자진신고를 유도하거나 일진회를 검거한 경찰을 1계급 특진시키는 등 일진회 실태 폭로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고 보도하면서 후속기사를 생산해 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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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원폭력은 70~80년대 학교 풍경을 그린 영화 <품행제로>와 <말죽거리 잔혹사>가 21세기 들어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으로 이어지듯 학교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의 ‘짱’이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소외되거나 무시받는 층이었다면 지금의 ‘짱’들은 외모와 주먹, 성적 등을 두루 갖춘 인물로 학생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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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은 ‘일진회’에 관해서도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었다. 자신이 일진에 속해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이 정당하지 못한 폭력을 당할 때는 여느 피해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자신이 소속된 일진에서의 폭력은 “그냥 마음에 안 드는 애들이랑 싸우는 거나 버릇없는 애들을 혼내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언론에 비치는 그런 일진은 아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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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이처럼 폭력에 무감각해져 버렸을까?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는 왜 어른들의 그것과 차이가 없을까?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고발’에만 바쁘고 경찰청과 교육부 발표를 따라가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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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나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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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지난 9일 이후 방송의 메인뉴스를 분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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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까지 주요 방송사들은 경찰청과 교육부가 발표한 일진회 실태들을 보도하는 데 주력했다. kbs <뉴스9>는 ‘막가는 일진회’(9일), ‘경찰, 학교폭력 일진회 해체나서’(10일), ‘학교폭력 공황장애’, ‘폭력서클 2개뿐?’(11일), mbc <뉴스데스크>는 ‘갈데까지 갔다’(9일), ‘일진회 해체’(10일), ‘관심이 필요해요’(11일), sbs <8시뉴스>는 ‘성인 조폭 빰친다’(9일), ‘일진회 충격증언 잇따라’(10일), ‘맞고도 쉬쉬’(11일) 등의 꼭지에서 일진회 문제를 다뤘다. 일간지 보도 내용과 별다른 차별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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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부터는 kbs <뉴스9>는 ‘학교폭력과의 전쟁’, sbs <8시뉴스>는 ‘폭력없는 사회’로 일진회 관련 기획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으나 이전 보도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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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과의 전쟁’이란 연재기사는 ‘피해 학생의 절규’, ‘중학교가 가장 심각’(14일), 학교가기 무서워요(15일), 막가는 일진 놀이(16일), 폭력 대물림 초등생까지(17일), 폭력의 온상 인터넷(18일), 은폐가 더 큰 폭력 키워(21일) 등으로, 신문에서 대부분 보도된 내용이었으며 워크숍에서 정세영 교사가 발표한 내용과도 대동소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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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폭력 없는 사회’편도 ‘일상화된 폭력’ 등 3건(14일)으로 시작해 관련보도들이 이어졌지만 kbs와 별 차이 없었다. 17일 ‘학교폭력 가해학생 자진신고 잇따라’ 꼭지에서 자진신고 한 가해자 학생의 아버지가 “매일 교내에서 마주치면 계속 (가입하라고) 강요를 하는 거야. 가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잘못할 때마다 오히려 맞고…”라는 인터뷰에서 일진회도 일종의 피해자임을 강조한 면은 차별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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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프로그램에선 mbc가 학원폭력에 관해 가장 많은 기획물을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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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아침>과 <생방송 화제집중>은 10일부터 각각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와 ‘학교폭력 위기에서 희망으로’ 편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학원폭력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현 상황을 다각도로 보도했고 스쿨폴리스 문제 등 정부가 내놓은 대안들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했다. <생방송 화제집중>에서 정세영 교사를 초대해 그동안 ‘나쁜아이들’로만 취급했던 일진회 아이들의 다른 면을 차분하게 부각시킨 점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재연’ 등의 형식을 통해 자극적인 화면이 강조되거나 학원폭력의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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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송된 sbs<그것이 알고싶다> ‘짱이 되고 싶은 아이들, 일진’편과 ebs<생방송 토론까페>(18일) ‘폭력 대 폭력, 일진회 논란’편도 누리꾼들의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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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통제대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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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언론이 놓치고 있는 지점은 무엇일까? ‘학교폭력 신고기간’이나 ‘스쿨폴리스’ 등은 단기 처방일 뿐이다. 일진회 문화는 어른들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한 조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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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청소년문화공동체 나하나 간사는 “청소년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나눠 접근하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학교폭력에 관한한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것들 언제든지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게 문제다. 현재 청소년들은 기댈 곳이 없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털어놓을 대상이 없으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자신들끼리 뭉치게 된다”며 “지역사회의 청소년단체들과의 연계로 아이들이 학교 안과 밖에서 기댈 곳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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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1차적인 신뢰관계를 맺어야 할 교사를 학생들이 불신하고 있는 점도 안타까운 점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학교대사전’에서 ‘네’는 ‘학교 선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 그들과 대화하게 되면 결국은 이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담임’은 ‘월급 조금 더 받고 40명의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 까닭에 괜히 종례를 길게 끌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라고 정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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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문지 월간 중등 우리교육 김종구 팀장은 “언론이 학교라는 공간과 교육, 청소년의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스쿨폴리스’ 문제도 ‘학교의 개방화’ 논의와 연결된 문제다. 또 90년대 이후 청소년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나 언론은 ‘청소년론’에 대한 고민이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산업화되면서 청소년을 소비자로 취급하는 정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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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의 교육운동가 김진경 씨는 “언론이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게 문제다. 일진회 문제를 일반적인 사건과 똑같은 기준으로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억압된 감정은 표출되기 마련이고 이것이 일진회의 형태로 드러난 것뿐이다”고 말했다. 황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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