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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시절 집에서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 재미있는 소설이 연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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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조선시대를 다룬 소설이었고, 옛 말투가 뒤섞여 민초들의 생활상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데 반해, 조소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비극적 사랑은 어찌 그리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김주영의 ‘객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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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의 장모이기도 한 박경리 소설가의 대하소설 ‘토지’는 70년대 대학 선배들의 근현대사 공부를 위한 필독서였다. 방학을 이용해 토지를 읽었다는 선배들의 무용담도 술자리에서는 종종 안주가 되었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 토지를 읽고나면 그 다음은 막 출간되기 시작했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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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오히려 ‘무기의 그늘’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로 친숙한 황석영은 70년대 여기저기 지방을 돌면서 ‘장길산’ 연재를 겨우겨우 해냈다고 한다. 심지어 시골 우체국에서 신문사에 전보를 치기도 하고, 전화로 불러줬다는 일화도 있다. 나의 입사 초기만 해도 팩스로 원고를 주고받던 때였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공중전화도 흔치 않던 당시에 방송 일을 했다면…’ 하고 모골이 송연했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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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공부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에 많던 내가 꾸준히 즐긴 일이 영화 보기와 소설 읽기였다.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왜 지금, 이곳을 이야기하지 않고 잘 나가던 시절에 과거로, 역사로 들어갔나 하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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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주영도, 황석영도, 박경리도 작가 초기에는 곧잘 사회 풍자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재주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름을 얻고 나면서부터는 왜, 왜 과거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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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날을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풀고 싶은 한이 있기도 했겠지만,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을 거치는 시기에 시대와 맞서며 괜한 시비에 휘말리는 것보다 ‘너희들은 죽어도 모르는 이야기를 시치미 뚝 떼고 한 번 해보자’는 심정, 작가적 오기 아니었을까. 아니 안 그랬을 리가 없다. 작가들의 입을 막던 그 시기에 자유인인 그들은 옛 사람들의 입과 몸짓으로 당시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은 거친 손들을 뿌리쳤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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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발끝도 안 보이던 오늘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지나 온 길들도 보이고, 훤히 미래가 내다보이는 경험을 했으리라. 물론 바로 되받아 싸우던 사람들은 오히려 당시에 기나긴 고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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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가 시끄럽다. 교과서 문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언제 우리끼리 싸웠냐는 듯이 일본을 향해서는 한 목소리다. 요즘 말로 생뚱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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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극우들이 바라던 바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군대의 법조문화, 영토 분쟁이 일어났을 때 무력 침공할 수 있는 조항의 삽입 등 헌법 개정을 하고 싶은 것이 그들 극우의 진실이다. 진실을 가르치는 것이 자학사관 아니냐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여기나 일본이나 똑같다. 우리 교사들이 베트남전쟁을 가르치면 아직도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도, 학부모들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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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정당화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드러나기를 불편해 한다. 물론 자기가 뭘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발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어느 소설가는 이 시대를 빗댄 대하소설을 이미 집필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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