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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오랜만에 사촌 동생을 만났다. it관련 벤처사업을 하다가 어느 날 보험 세일즈에 뛰어든 이 친구는 입사 22개월 만에, 2년 연속 사내 최고 실적을 기록했단다. 몇 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동생을 둔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은 아닌 듯. 다양한 계층, 다양한 인간들을 만난다는 이 ‘슈퍼 루키’는 pd라는 직업을 가진 사촌 형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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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같은 사람들은 영업해서 돈 버는 것밖에 없죠. 하지만 형은 방송사 pd잖아요. 관(官)에서 일하는 셈인데, 저희와는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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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돈 많이 버는 사람들과 다르긴 다르다. 방송사 월급쟁이들이야,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는 거, 다 아는 일. 하지만 ‘관에서 일하는 셈’이라는 건 새로운 시각이었다. 공무원도 아니고 그 흔한 공영방송도 아니고, 민영방송에서 일하는 월급쟁이일 뿐인데 무슨 놈의 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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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름대로는 ‘관(官)적인’, 또는 ‘관(官)스러운’ 것을 누구보다도 경계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pd 일을 하게 된 것도 그것이 ‘관’과는 가장 거리가 먼, 창의적이며 자유스런 일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기대와 현실이 정확히 일치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1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내가 사실은 ‘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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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아닌 사촌동생까지 pd를 ‘관에서 일하는 셈’이라고 미뤄 짐작해버리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언론사 또는 방송사를 ‘제4부(府)’라고도 부른다는, 다소 ‘일반상식’적이고 상당히 말이 안 되는 이유. 둘째, ‘pd입네’ 하고 거들먹거리는(사실 이런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촌 형이 사실은 보기 싫었던 것. 셋째, 다른 직종들보다 공익적 성격이 더 강한 듯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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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아니라면 좋겠지만 내 뜻대로 될 일은 아니고(내가 쌓은 ‘덕’대로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pd들이 만드는 방송이란 것이, 공익적 성격이 강하며, 강해야 하며, 게다가 영향력도 크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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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의 이익만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없으며 특정 집단이나 계급, 계층을 위한 방송이 돼서도 안 된다. 방송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방송법 6조1항) 하며,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 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6조5항)해야 한다.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정의로운 일을 하도록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는 직종이 pd 말고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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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촌 동생이 방송법의 이런 규정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은 공익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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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방송에 대해서 욕을 퍼부어 댈 리가 없지 않은가. 수경사 스님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할 이유, 그리고 살해된 gp 장병 문제를 단칼에 재단해버려서는 안 되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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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나아간다면, 광고주의 입김에 프로그램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공익성에 닿아있으며, 정당과 재벌기업에 방송인들이 ‘스카우트’ 되는 것이 아름답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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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도 없고, 그리 안정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공무원 연금도 없는 pd 여러분. 관(官)에서 일하는 셈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제 사촌동생의 망언을 용서하시길. 그리고 누구보다 공익적이어야 하는 직종이 pd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는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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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로가 되기보다는 책임감만 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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