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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과 조갑제

|contsmark0|9년전 mbc에 <라디오칼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sbs에 <라디오칼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마도 방송시간(오전 11시대에 20여분간)이나 진행포맷(3인 정도의 ‘저명인사’가 월·화, 수·목, 금·토 등 요일별 논객으로 출연해 주요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의 유사성으로 보아 mbc의 그것이 원조고 sbs의 그것은 리메이크 인 듯하다.난데없이 왠 원조 시비냐고? 그게 아니다. 필자는 지난 9년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고 성숙해졌는지를 따져 보고 싶어 이 프로그램을 화두로 삼고 있을 따름이다.9년전 mbc <라디오칼럼>의 연출자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문제가 되는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 보다 건강한 방송, 민주화된 방송을 소망하며”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칼럼니스트’로는 소설가 최일남 선생, 언론인 정경희 선생 등이 참여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 전파를 탔다. 특히 최일남 선생은 전교조, 분단과 통일, 빈부격차 등을 소재로 많이 다루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 때엔 아슬아슬한 적이 많았다고 연출자는 회고하고 있다. 어떤 날은 방송이 나간 후 출연자 최일남 선생과 연출자를 싸잡아 ‘빨갱이’라고 욕하는 전화가 빗발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그런데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탄압받던 전교조는 이제 합법화를 눈앞에 두고 있고, 다소간 우여곡절이 없진 않지만 ‘햇볕론’의 볕뉘라도 쬔 덕택인지 통일소가 떼로 올라가고 금강산도 지척에 있다. 무엇보다 9년전 <라디오칼럼> 당시 ‘과격한’ 내용이 사내외에서 문제가 돼 도중하차할 뻔한 적도 있는 최일남 선생은 지금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로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다.이런 것들을 보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풍파곡절은 있으나 길게 보아 민주화와 진보의 길을 가고 있다는 아스라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찌 이 믿음의 근거가 도시 어중되고 위태롭다. 우리 근대사의 무수한 좌절과 아픔을 생각할 때 과연 이렇게 순진한 전망을 해도 좋은 것일까.아니나 다를까. 아서라 말아라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오늘, 그같은 낙관적 인식이 얼마나 근거없고 천박한 것인지를 여지없이 깨닫게 된다. 이토록 치열한 현실파악을 하게 해준 무대는 sbs <라디오칼럼>이며, 그 주역은 이 프로그램에 작년 10월부터 출연하고 있다는 월간 조선의 조갑제 국장이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지난 10월 22일의 일이다.이날 조국장은 최근 월간조선이 몰고 있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에 대한 이른바 사상검증을 소재로 약 23분여 동안 월간 조선에서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융단폭격’을 가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식이다.“…이 논문의 저자는 6·25 남침을 북한 지도부가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성격규정하고 있습니다…북한 지도부의 시각을 인용하면서 동시에 그 해석에 동조하고 있는 표현법입니다…라는 말이 대한민국의 국민 입에서 나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여기서 그러면 이 논문들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마지막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는 고려대 교수 최장집씹니다. 그는 현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중이며 제2건국운동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 조갑제 국장의 발언 내용이 옳은 것인지 또는 월간 조선이 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이 온당한 것인지의 여부는 작금 각계에서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정작 본란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이날의 sbs <라디오칼럼>이 적절했던가 하는 것이다.이와 연관될 만한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우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조 공정성의 원칙이다. “방송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방송이 사회적인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관련된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을 균형있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방송은 다양한 의견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다루어 사회의 다원화에 기여해야 하며(제8조)”, “방송은 자유민주주의를 신장하여야 하고(제10조)”, “개인 또는 단체의 명예를 손상하여서는 아니 된다(제33조)”는 등의 조항이 이날의 <라디오칼럼>과 함께 떠오르는 것들이다.물론 이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일개 출연자인 조갑제 국장에게보다 편성권자인 sbs측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립되는 사안의 한 당사자에게 마이크를 넘기고도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하도록 방송심의규정 준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그리고 사후에라도 <라디오칼럼>과 동일한 청취자에 도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최장집 교수 측에 반론권을 부여하지 않은 것들이다.그렇다면 조국장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조국장으로서는 방송심의규정에도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누렸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공정성 의무는 편성권자에 있다니 뒷치닥거리(?)는 sbs의 몫이겠다. 그런 것인가. 하지만 월간조선과 조선일보로서도 부족해 공공의 자산인 방송에 때마침 출연하는 것을 기화로 대립되는 사안의 한 당사자를 난타한다? 어쩐지 당대의 논객이라는 그답지 않은 노릇이다.최일남과 조갑제. 이들은 우연히도 9년의 시차를 두고 방송사는 다르지만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과연 이들의 무엇이 서로 같고 다른가. 그리고 그 9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문득 착잡해진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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