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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다큐모임’ 10주 동안의 성과
l승인1997.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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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토론 : 문화방송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는 모임’정리 : 이채훈● 싣는 순서1. 다큐멘터리와 비(非)다큐멘터리의 구분-공중파 tv다큐멘터리2. 다큐멘터리는 다양하다-독립다큐멘터리의 세계3.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제작환경의 변화2. 다큐멘터리는 다양하다 - 독립 다큐멘터리의 세계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프로듀서들도 사람인지라 자기 주변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동굴의 우상’에 빠지기 쉽다. 한 방송사에 속한 프로듀서들은 자기가 몸담아 온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가장 믿을만한 척도로 삼기 쉬우며, 이를 자기방어의 논리로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만일 픽션에 가까운 휴먼스토리, ‘논픽션’을 표방한 테마에세이, 그리고 몇 편의 자연다큐멘터리를 가리켜 다큐멘터리의 전부라거나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본령이라고 여긴다면 이는 중증의 ‘동굴의 우상’이라 할만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시각이 곧 변화와 발전을 거부하는 논리로 발전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공중파tv를 너머 독립다큐멘터리로 눈을 돌리면 이러한 ‘동굴의 우상’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독립프로덕션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고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여건이 열악한 우리 나라의 경우, 다큐멘터리의 발전을 공중파tv가 주도해 왔으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곧 공중파tv다큐멘터리의 역사라고 주장할 만하다. 그러나 이른바 ‘독립다큐멘터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뜻밖에 ‘다큐멘터리의 본령은 독립다큐멘터리이며, tv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다큐멘터리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 또한 일종의 ‘동굴의 우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제작된 독립다큐멘터리들은 아직은 tv다큐멘터리에 비해 대체로 촬영, 편집, 구성 등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한국의 열악한 현실 때문일 뿐, 세계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다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990년 이후 아카데미영화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들은 모두 독립다큐멘터리로(1990년 ‘american dream’, 1991년 ‘in the shadow of the star’, 1992년 ‘panama deception’, 1993년 ‘the children of stanton elementary school’, 1994년 ‘maya lin, strong clear vision’…), 한결같이 ‘비판정신’을 생명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선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드라마와는 달리 다큐멘터리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며, 많은 다큐멘터리들은 내용 뿐 아니라 대중과 결합하는 방식에서도 비판적 생각을 지니고자 노력해 온 게 사실이다. 예컨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정치폭로와 패로디, 인종문제의 고발, 활동가에 대한 묘사, 심지어 게이·레즈비언 문제 등이 독립다큐멘터리의 주된 소재가 되어 왔으며 주제만큼이나 다양한 배급·유통 방식을 개발해 온 것이다.‘독립다큐멘터리’에서 ‘독립’이란 물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 이는 자유로운 비판 정신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열악한 제작조건을 극복해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를 낳는다(하긴, 권력과 자본의 ‘보호’속에 있어도 제작조건이 여유로운 건 아니지만). 미국의 경우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독립’(independent)이란 말이 나왔는데, 이는 유니버셜, 폭스, 워너, 콜럼비아, 파라마운트 등 미국의 극장수익의 90%를 차지하는 헐리우드 메이저를 제외한 나머지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가장 넓은 의미의 독립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립다큐는 나아가 주류 상업영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성격을 지니게 되며, 그 전제조건으로 무엇보다도 작가(혹은 감독)의 창의성이 견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독립 다큐는 변혁을 위한 조직운동으로서의 미디어 운동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고, 이게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독립다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87년부터 노동현장에서 제작·보급되어온 ‘노동자뉴스’, 동남아 매춘과 종군위안부 문제를 추적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상계동 철거민의 삶과 투쟁을 그린 ‘상계동 올림픽’ 등을 꼽을 수 있다.미국의 독립다큐는 소수 작가들이 이끌던 70년대, 비디오 기술의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들어서는 비판적 사회의식을 견지하면서 독자적인 생산과 배급의 하부구조를 이뤄내고, 심지어 적지 않은 흥행작을 내기도 한다. 최근의 미국 독립다큐에서 가장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람이 두 명의 여자 감독이라는 점은 흥미롭다.1977년, 탄광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harlan county’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바바라 코플은 1990년 ‘american dream’으로 또 한번 아카데미상을 손에 쥐었다. 스팸 햄 공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3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뒤 공장을 멕시코로 옮기려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사태를 그린 ‘american dream’은 당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고발장이자 미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었지만, 경영자의 입장도 균형 있게 반영했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도 반론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큐멘터리의 비판적 역사인식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작품은 또 한 명의 여자 감독 바바라 트렌트가 만든 ‘panama deception’이다. 미국의 파나마 침공 배후에 있는 진정한 의도를 파헤친 이 작품은 1992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바바라 트렌트는 이 작품을 만든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1989년 크리스마스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부시가 2만 6천여 명의 군인을 파나마에 파견한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노리에가 한사람을 체포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군인을 파견하고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첫째, 미국 군대의 수준이 형편없거나(웃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을 거라고.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을 만들 결심을 했다. 첫째, 미디어가 나라를 망치고 있으며, 정부가 부정직하게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직한 미디어가 없다면 민주주의가 없다는 것이 내 확신이다. 둘째, 2만 6천이라는 많은 병력이 아파치 헬기 등 온갖 첨단무기와 함께 투입된다면 틀림없이 많은 민간인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국민들이 낸 세금이 학살에 쓰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신념이 아닌가.바바라 트렌트는 이를 위해 직접 모금, 기부 등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고 상황에 따라 eng, 8mm, 16mm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를 16mm 필름으로 모두 변환하여 16mm 전용극장에서 개봉, 극장을 정치토론장으로 변화시켰다.독립다큐와 공중파tv다큐를 놓고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를 가리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모든 다큐멘터리가 비판정신을 앞세울 필요도 없고, 모든 다큐 프로듀서들이 꼭 독립 다큐에서 자양분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다만, 다큐멘터리의 세계에는 이런 것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자기 중심적인 사고, 즉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좀더 나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지 않겠는가.
|contsmark1|3.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제작환경의 변화가장 손쉽게 눈에 띄는 변화는 흔히 6mm 카메라로 불리는 신형 카메라의 등장이다. 엄밀히 말해 6.35mm디지털 테이프를 사용하는 sony vx1000모델인 이 카메라는 화질과 음질에서 방송용 베타캄에 비해 별로 뒤질 게 없다. 방송용과 마찬가지로 세개의 칩을 사용하고 있고(3ccd), 음질은 오히려 베타캄을 능가한다. 게다가 컴퓨터로 제어할 수 있고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 약점이라면 다른 비디오를 복사하는 게 불가능하고, 수동으로 줌을 조절할 수 없으며, 6.35mm 테이프에 맞는 편집기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휴대가 간편하고 기동성이 탁월한 6mm 카메라는 이미 q채널의 ‘아웅산 수지의 버마’에서 활용되어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eng카메라와 거창한 부대장비를 갖고는 버마에 입국조차 불가능했을 상황에서 ‘관광용’으로 쉽게 휴대할 수 있는 6mm가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6mm는 이밖에도 촬영 시 출연자의 스트레스를 덜어줄 수 있기 때문에 연예프로그램이나 음악프로그램, 심층 인터뷰 프로그램 등에서 활용할 만하며, 촬영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찍는 게 더 효율적인 경우, 심지어 장시간 연속촬영에 필요한 체력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q채널은 이러한 점에 착안, 프로듀서가 기획·촬영·편집을 전담하는 1인 제작시스템을 이미 도입, 인력구조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빠르면 올해 안에 노트북 형태의 6mm편집기가 나올게 예상되고 머지 않은 장래에 테이프조차 쓰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와 비선형 편집시스템이 도입될 전망이므로 이러한 인력구조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변화가 바람직한지를 따지는 건 이 글의 범위 밖이다. 그러나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어떤 형태로든 현재의 공중파tv다큐멘터리의 제작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이러한 전반적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생산과 유통과정에 먼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누구나 쉽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있다. 촬영·편집 및 방송장비가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인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다큐멘터리가 역사상 유례없이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별도로 인터넷을 활용한 독립다큐멘터리의 유통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이와 관련, 미디어 민주화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생산해내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흡수해 낼 탄력성, 즉 대중의 접근권(public access)을 tv가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접근권이란 “지금까지 항상 미디어의 수동적인 소비자로 머물러 왔던 대중이 창조적 주체로 변화함으로써 스스로 영상매체를 만들어서 의사를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미디어에 대한 인식을 비판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대중의 접근권을 수용하는 건 미국처럼 주로 catv의 몫으로 갈 수도 있지만 미디어 민주화의 큰 흐름에서 공중파tv가 맡아야 할 몫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다양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개발에서 기획 단계·사후 모니터에의 참여 보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디어 민주화에서 방송사 내의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주의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궁극적으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공중파tv 다큐멘터리와 독립다큐멘터리의 차이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나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공중파tv가 다큐멘터리의 규범을 결정하고,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일방적으로 유통시키는 관행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문화방송의 다큐모임은 tv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좀더 밀착된 내용으로 곧 2차 세미나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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