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의 눈]영상과 실재, 조제 치무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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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 성 KBS 스페셜팀 PD

|contsmark0|자그마한 키에 착해 보이는 얼굴, 한 손엔 비닐 쇼핑백을 조심스레 들고 그가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횡단보도 저편에 선 저 남자가, 지금 우리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저 사람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인물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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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를 본 순간 적잖은 실망감마저 일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라면. 그래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으리라. 우리가 만나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가? 과거 악명 높은 남아공 특수부대의 일원이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용병스캔들의 연루자로 불과 얼마 전까지 1년 간 옥살이를 한 인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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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라면 그는 훨씬 덩치도 크고 얼굴엔 표정 하나 없는, 아주 무서운, 그러니까 카메라에 담는다면 그냥 자막 없이도 “나는 인간살인병기”라고 읽히는, 그런 인물이어야 했다. 가까이 다가가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건넸다. 지금 돌아보면 커다란 눈망울에 처연한 슬픔이 읽히는 30대 중반의 흑인, 그의 이름이 조제 치무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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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무피를 만난 건 작년 9월 남아공 출장에서였다. 수도 프리토리아의 외곽, 그가 임시로 머무르고 있는 친척집에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으련만, 그만큼 세상에 깊게 패이고 깎이고 주름진 인생을 산 사람도 흔치 않을 터였다. 냉전 당시 앙골라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남아공이 만든 특수부대 멤버였던 그가, 냉전이 끝나고, 더구나 이후 자신의 부대를 만든 백인정권이 무너지고 난 후 겪어야 했을 인생유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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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는 충분히 담았다. 그는 지금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냉전의 종식과 뒤집힌 세상의 혼란과 비극은 우리에게도 낯 설은 풍경이 아니니까, 나는 치무피의 마음을, 그 마음속에 숨죽이며 되뇌어 온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가 친형같이 정겹게 느껴졌고 그 역시 시종일관 부드럽고 따뜻하게 우릴 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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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취재를 마치며 돌아오던 길에 카메라 맨 선배가 말을 건넸다. 조명을 잘 못 쳤는지 치무피가 좀 무섭게 나올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네”, 농담으로 한차례 받고는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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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전 마침내 편집에 들어가서였다. 취재 이후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긴 치무피를 찬찬히 다시 볼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만난 치무피가 아니었다. 분노와 원망이 배인 날카로운 음성, 깊게 그늘진 눈망울,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무서운 인상의 한 사나이가 화면을 압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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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치무피의 두 얼굴을 만든 것일까? 직접 만나고 부딪히며 형성된 내 오감의 경험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어떤 한 인간의 ‘진짜’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 경우 카메라는 상황과 분위기에 녹아들어 왜곡되는 개인의 주관적인 어떤 ‘기억’과는 달리 사태의 진실을 담는 객관적인 관찰자로 기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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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치무피는 부드럽고 따뜻한 언젠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인물이다. ‘부드러운 치무피’와 ‘무서운 치무피’,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치무피일까? 나는 그 부드러움 속의 슬픔과 아픔, 그것이 중첩된 무서움을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냥 처음 만났을 때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치무피를 최대한 길게 붙였을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전달됐을지, 내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방송이 나가고 나면 이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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