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를 통해본 방송 독립다큐의 현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금난에 ‘허덕’, 방송사와 저작권 갈등 깊어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지난 주말 38만여명의 관객을 동원, 누적관객이 136만명을 넘어서며 독립 영화로는 최초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워낭소리〉는 개봉 6주차를 맞아 독립 영화로는 불가능한 기록으로 여겨졌던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특히 개봉 초기 20, 30대 독립영화 마니아에 국한돼 있었던 관객은 중년층으로까지 확대돼 200만명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워낭소리〉의 대박 행진에 언론들은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이변에 가까운 새로운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 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원래 방송용으로 기획됐던 〈워낭소리〉는 제작비와 저작권 문제 등으로 ‘가격’이 맞지 않아 여러 차례 방송사로부터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방송 투자 환경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방증이다.

〈워낭소리〉대박행진 뒤에는 20여 년 동안 이어온 독립PD들의 비애가 있었다. 독립PD들은 외주제작 다큐멘터리에 대해 제작비를 낮게 책정하고 독립PD들에게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지상파의 제작관행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볼 시점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제2, 제3의 〈워낭소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방송사들 역시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질 좋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이들은 조언하고 있다. 독립PD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의 어려움과 개선할 점을 짚어보았다.

지난 19일 오후 제2회 한국독립PD상 시상식이 있었던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회의실. 특별상을 수상한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연출자 이충렬 감독은 독립PD로서의 현실과 한계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이 감독은 “송구스럽다. 제가 대통령 만날 때도 떨지 않았는데 이 자리는 떨린다. 본의 아니게 외도했다. 갑작스럽게 로또 복권 맞은 것처럼 됐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워낭소리는 원래 방송용이었다. 결국 방송용이 되지 못한게 독립PD의 현실이었다”며 “방송용이었지만 원치 않게 영화 쪽에서 이런 일이 터지니 황당하다. 이 상은 독립PD로 돌아오라는 페널티, 멍에 같다”고 덧붙였다.

이 PD의 솔직한 수상소감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매년 방송관련 시상식이 있을 때 마다 독립PD들은 무대에서 수상소감 보다는 제작현실을 개탄했다. 방송사 내부 제작 다큐멘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제작비는 물론이고 한 차례의 방송을 이유로 방송사가 저작권을 갖는 구조가 당장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는 방송제작 환경이 척박하다.

▲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

독립다큐멘터리의 경우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방송사들이 대략 적게는 2000만원에서 5000만원의 제작비를 지원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독립PD들은 제작할 때마다 자금난에 허덕인다고 한다. 더군다나 방송사들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방송 이후 제작비를 입금하기 때문에 독립제작사나 개인 주머니에서 먼저 돈이 나간다.

완제품 방송 전에 방송계약을 완료한 경우에도 계약금이나 중도금 형태의 제작비는 전혀 선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독립PD들은 매번 자금난을 겪는다. 독립제작사에 소속돼 있더라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독립제작사들은 대부분 영세해 수천만원의 제작비를 한꺼번에 투자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른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PD 역시 제작비 때문에 몇 차례에 걸쳐 제작사를 바꾸는 고충을 겪다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고가의 HD카메라는 하루 대여비가 20~30만원에 달하고, 여기에 필요한 촬영감독과 음향감독 등이 투여될 경우 하루 제작비는 1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HDV 이른바 6mmHD 카메라의 성능이 높아져 저렴한 비용으로 HD 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돼 그나마 제작비 절감에 효과를 보고 있다.

독립PD들이 겪는 또 다른 고충 중의 하나는 저작권 문제다. 현실에 못 미치는 제작비를 제공해도 방송사가 저작권 일체를 가져가고 있다. 물론 케이스별로 협상 내용에 따라 조건은 달라지지만 이러한 공식이 관행화돼 있다. 심지어 독립PD가 방송통신위원회나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의 공모를 통해 제작비를 지원받아 제작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원본 촬영 테이프의 저작권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방송발전기금을 지원받은 프로그램은 방송을 전제로 제작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독립PD들은 방송을 위해 저작권 일체를 포기하는 일도 있다.

▲ 〈워낭소리〉 포스터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 제작 후 지상파방송 자체를 포기하는 독립PD들도 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 독립PD협회 이름으로 출품한 다큐멘터리 〈신의 아이들〉(연출 이승준)은 방송을 추진했지만 저작권 협상이 잘 풀리지 않아 방송 자체를 포기했다. 이승준 PD는 “상식선에서 저작권 문제를 접근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현실이 그렇지 않다”며 “최근 외국에서도 이 작품에 대해 반응이 있어 해외 판매 등 다양한 창구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발전기금으로 제작된 〈디지털의 검은재앙, 폐기물 속의 아이들〉(연출 윤대희·정진식)은 독립PD대상 시사다큐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저작권 문제로 협상에 난항을 겪다가 지상파에 방송을 내보내지 못하고 결국 케이블 다큐멘터리 채널인 Q채널로 전파를 탔다.

물론 방송사들도 할 말은 있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지불하는데 저작권을 갖지 못하는게 말이 되냐. 우리는 땅 파서 돈 버냐. 이런 식의 하소연을 쏟아낸다.

그러나 독립PD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원천 아이템 제공자가 누군지에 따라 저작권을 공유하고 배분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영기 독립PD협회장은 “기획을 낸 독립PD에 대해 저작권을 일부라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과거와 같이 OEM 즉 하청식으로 독립PD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윈-윈 할 수 있는 제작시스템을 만들어 서로 상호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인터뷰]

익명을 요구한 한 독립PD는 “내 머리에서 나오고 내 가슴이 뜨거워서 만들었지만, 방송사가 저작권을 가져가면서 독립PD들의 작품들은 먼지 쌓인 곳에 단 한 번의 방송만 나가고 재가공이나 재방송 없이 처박혀 있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일부의 저작권이 연출자에게 있다면 이런 식으로 방치해놓고 있진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독립PD들은 최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대박으로 다채널 시대 ‘윈도우’가 다양화되면서 지상파에 ‘올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분위기다. 질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지상파가 아닌 다른 창구로의 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40대 중반의 이른바 독립PD 1세대들은 다양한 창구 확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출품 이외에 단 한 번도 지상파 전파를 타지 않은 〈신의 아이들〉은 유럽지역 배급사쪽에서 배급 체결 의사를 보이고 있고, Q채널로만 방송된 〈디지털의 검은재앙, 폐기물 속의 아이들〉도 지역방송을 통해 프로그램을 납품하고 유럽 쪽 수출을 검토 중이다. 또 올해 말 개봉을 목표로 120분물로 재편집해 영화 상영도 준비 중이다.

이승준 독립PD는 “아직까지 금액면에서 크지는 않지만 지난해부터 유통 창구 다각화를 계획하고 있다”며 “바로 이런 움직임 때문이라도 독립PD들이 저작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인간의 땅
2006년 KBS가 ‘20억원 프로젝트’ 기획공모에서 선정한 <인간의 땅> (연출 강경란 외) 5부작은 올해 KBS를 통해 방송된다. 총 제작비 약 9억여원이 들어간 <인간의 땅>은 전쟁과 재해, 굶주림과 무지, 전염병과 범죄 등 혹독한 환경에서 투쟁하며 살아가는 아시아인의 인간의 생존 및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작품이다. 제작진은 지난 2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 아르메니아 등 5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힘든 환경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시아인의 현재와 미래를 그릴 예정이다.

■ 디지털의 검은재앙, 폐기물 속의 아이들

▲ 디지털의 검은 재앙, 폐기물속의 아이들
방송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된 〈디지털의 검은재앙, 폐기물 속의 아이들〉(연출 윤대희·정진식)은 지난 12월 중순 Q채널을 통해 방송됐다. 〈디지털…〉은 선진국들이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매일 약 500톤 분량의 디지털 폐기물이 반입되는 아프리카 가나 현지를 취재해 전자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고발한 작품이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10살 전후의 아이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 구리를 채취하기 위해 전자제품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독성물질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신의 아이들

▲ 신의 아이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 독립PD협회 이름으로 출품한 다큐멘터리 〈신의 아이들〉(연출 이승준)은 네팔의 화장터에서 현지인들과 오랜 시간 함께 살며 죽음이란 화두 앞에서 초연해지는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매일 누군가를 하늘로 올려보내는 불의 의식이 진행되는 힌두교 최대의 성지 네팔 파슈파티나트의 바그마티 강변 화장터엔 죽음의 의식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이 작품은 죽음을 흘려보내고 생을 꿈꾸는 바그마티 강변 화장터에 공존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