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덕 ‘바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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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미덕 ‘바라카’
[경계에서] 이성규 독립PD
  • 이성규 독립PD
  • 승인 2010.01.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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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설명이 전혀 없는 영상. 단 한 줄의 자막과 단 한 마디의 내레이션조차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미국의 론 프릭크 감독이 촬영하고 연출한 아이맥스 영화 <바라카>(1992년 제작)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우연히 유료(1000원) 다운로드를 통해 본 4.4GB 블루레이 영상이다. 영화는 끝나고 나서도 나로 하여금 숨 고르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바라카(Baraka)’는 이슬람교의 아랍어로 ‘신의 은총’ 또는 ‘삶의 본질’이라는 의미라 한다. <바라카>는 인간의 다양성과 환경으로부터의 영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탄자니아, 중국, 브라질, 일본, 네팔, 미국 그리고 유럽 등 6대륙 24개국을 촬영한 96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 <바라카> (론 프릭크 감독, 1992년작)
론 프릭크 감독의 다큐멘터리 <바라카>는 총체적 자연의 경이로움과 인간집합체의 모습, 개체구조의 다양한 조화를 영상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대자연과 인간 삶의 형태를 굳이 특정개체그룹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영상과 음악의 완벽한 조화만으로 누구에게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창조하고자 노력하였다. 다큐멘터리 <바라카>는 비언어적 표현과 비물질적 정신의 세계를 완벽에 가깝게 담아내고 있다.

히말라야의 설산과 온천욕을 하는 일본 원숭이로 시작되는 영상 그리고 네팔의 파탄과 파쉬파트나트로 이어지는 영상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내게 익숙했다.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시작되기에, 언제쯤 본 내용이 시작될지를 기다렸다. 설마 이미지로만 96분을 채우리라곤 상상 조차 못했다. 뭐라고 할까? 마치 고문 받는 것 같은 느낌. 허나 그것은 잠시였다. 숨 막힐 듯 전개되는 유려한 영상과 그 영상들 사이에 드러난 내러티브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내 눈과 귀는 모니터와 스피커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악함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끔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바라카>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재미는 당연히 없을뿐더러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없다. 심지어 주인공도 대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라카>엔 오로지 영상과 음악만이 있을 뿐이다.

영상은 지나칠 정도로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이다. 거기에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영상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시간차 촬영을 통해 더욱 더 부각된다. 그 안에서 영상은 서로 충돌한다. 동물과 인간, 성과 속,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토템까지 말이다. 심지어 원시사회에서부터 현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의미조차 대립시킨 채 교차되며 영상은 반복된다. 이런 알 수 없는 영상은 관습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상과 충돌하고 그것을 계속 지켜봐야하는 관객은 고문과 다름없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큐멘터리 <바라카>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 이성규 독립PD
“당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당신이 꿈꾸는 세계는 어떤가요? 당신은 당신의 삶이 윤리적이라고 여기나요?”

론 프릭크 감독은 <바라카>를 통해 자연, 역사, 인간의 정신 그리고 무한의 세계(신의 세계)로 뛰어들어 재발견의 여행 안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각각 다른 세계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상과 음악은 콘텍스트(Context, 상호 소통을 통해 완성돼가는 지식과 정보)로 관객과 의사소통을 할 뿐 결론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몽적이고 설명적인 다큐멘터리 영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바라카>는 침묵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해석은 바로 영화를 보는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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