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지 못한 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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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 못한 자의 비애
[방송따져보기]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 승인 2010.11.17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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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개편을 통해 MBC다운 몇 가지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새롭게 여러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그 중 하나, 〈후 플러스〉를 폐지하고 그 시간에 〈여우의 집사〉라는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영, 조여정, 민효린, 손담비, 최은경, 이청아 등 여성연예인 6명이 류시원, 박휘순, 노홍철, 하석진, 노민우, 이홍기, 세븐 중 원하는 집사를 선택해서 화려한 집에서 그들의 시중을 받는 초호화 리얼 판타지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은 없는 ‘집사’와 ‘하인’이라는 봉건시대의 계층을 다시 부활시켜 시청자, 특히 여성시청자에게 달콤한 판타지를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러나 첫 회부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판타지보다는 불편함과 슬픈 마음이 더 컸다. 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루는 콘셉트 때문이다.

〈여우의 집사〉의 한 축을 이루는 ‘집사’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이다. 이들의 룰을 살펴보면 언제나 아가씨에게 ‘YES’만 해야 하고 경어를 써야 하며, 언제 어디서든 이들이 모시는 ‘아가씨’를 보필해야 한다. 또한 집사보다 더 낮은 계층인 ‘하인’은 설거지, 식사 준비를 비롯해 집사의 시중까지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여정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집사인 하석진이 먹기 싫어하는 버섯을 몸에 좋다며 억지로 먹게 하고 심지어 하기 싫어하는 요가까지 억지로 시킨다. 그리고 세븐은 현영과 민효린이 키우는 강아지가 카펫 위에서 볼일을 본 것을 치우고 현영의 요구로 한 번도 해 본일 없는 강아지 목욕까지 시킨다.

 

▲ MBC〈여우의 집사〉

 

이러한 콘셉트는 케이블 방송의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과 닮았다. 이 프로그램 역시 남성이 돈 많은 여성과 함께 동거하면서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 이는 바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에게의 절대 복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이 프로그램은 권력과 자본 앞에서 인권은 사라짐을 판타지로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권력은 바로 ‘외모’와 ‘나이’이다. 잘생기고 패션 감각이 남다른 세븐은 현영과 민효린에게 선택되었고, 또 다른 잘생긴 노민우와 하석진은 손담비와 최은경 그리고 조여정에게 각각 선택되었다. 남성들이 대체로 외모로 선택이 되었다면 여성들은 자신이 선택한 집사에게서 외모뿐만 아니라 나이로도 차별 받았다. 즉 노민우는 손담비와 최은경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상대적으로 최은경보다 어리고 예쁜 손담비에게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세븐은 현영보다 어리고 예쁜 민효린에게는 근사한 옷을 코디해주고 현영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골라주어 그녀가 창피를 당하도록 하였다.

이 처럼 이 프로그램은 어떤 식으로든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철저한 이분법적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가지지 못한 자에게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면에서 아주 잔인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이 프로그램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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