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감놔라 배놔라’하는 KBS 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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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방송 예정이었던 <KBS 스페셜-대륙에 떨친 항일 투쟁혼 음악가 정율성>이 일부 이사들의 입김에 의해 편성이 보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보도에 따르면 방송을 나흘 앞두고 열린 KBS 이사회 간담회에서 일부 여당 추천 이사들이 “한국전쟁에 북한군으로 참전했고 중국에서 혁명가로 추앙받는 인물을 KBS에서 조명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편성 보류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 일부 이사들은 “친일도 나쁘지만 친북은 더 나쁘다”, “이 다큐를 방송하면 이사를 그만두겠다”며 생떼를 부렸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한동안 국내에서 사라졌던 이름, 정율성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는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한 항일 조선 음악가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공식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중국 혁명 음악의 대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현재 고향인 광주에선 2005년부터 매해 ‘정율성 국제음악제’가 열려 한-중 문화교류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고, 광주MBC 라디오가 2005년 제작한 <천재음악가 정율성>은 제33회 한국방송대상 라디오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역사적 맥락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KBS 이사회가 해당 프로그램의 편성을 막은 것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첫째, 이사회가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간섭을 했다는 점이다. 이사회는 KBS의 공적책임에 관한 사항, 방송의 기본 운영계획, 경영평가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이다. 특정 프로그램의 편성에 관해 가타부타할 수 있는 권한은 그 어디에도 없다.

둘째, 만약 같은 논리라면 최근 KBS에서 방송돼 문제가 된 친일파 백선엽을 다룬 <전쟁과 군인>이나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제1공화국>에 대해선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이 없는 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셋째, 이사회의 아전인수식 행보로 일선 제작현장의 자율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율성 다큐’는 사전에 본부장과 사장에게까지 보고하는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사들에 의해 편성이 보류된 것은 PD들의 제작자율성과 관련하여 좋지 못한 선례로 남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KBS의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현 정부 들어 기용된 일부 뉴라이트 인사들과 그에 발맞춘 경영진의 합작품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KBS의 방송 편성이 정파적 이념에 경도된 인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공영방송의 앞날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KBS 이사들은 프로그램 편성·제작에 대한 간섭을 당장 그만두고 경영에 관한 관리·감독에 신경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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