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아니, 아니…풍문이 아닌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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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을(乙)님들, 저 마음에 안 들죠?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는 부와 혈통의 세습이 중요한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성을 대표한다. 이들의 속물성은 말과 행동, 때때로 앞과 뒤의 말의 불일치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 마디로 ‘가식’의 말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정호는 이제 막 일류대 법대에 합격한 아들(한인상·이준) 앞에서 “오직 일류대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라며 학력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다가도 로스쿨이 아닌 마지막 사법고시 합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로스쿨 합격자들과는 다른 스펙으로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온 법조가 명문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압박이다. 또 혼전임신으로 자신의 손자를 낳은 서봄(고아성)에겐 진정한 며느리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으로 사법고시 패스를 내세운다. 그 정도의 스펙은 쌓아야 ‘덜’ 부끄럽기 때문이다.

최연희도 다르지 않다. 아들의 사법고시 패스를 위해 점쟁이를 불러 집안 구석구석 부적을 붙이고도 유명 역술인을 소개해 달라는 친구의 말에 “법리를 다루는 집안에서 어떻게 미신을 믿느냐”며 잡아떼지만, 어느 날 부적을 바꿔 붙이다 서봄에게 걸리고선 증조할머니 시절부터 자손을 위해 내려오는 “가풍”이라고 우왕좌왕 둘러댄다.

그런데 이런 모습, 우리는 정말 풍문으로만 들었을까. 아니, 현실은 오히려 더욱 블랙코미디다. 말과 행동이, 앞뒤의 말이 불일치하는 듯 느껴지는 갑들의 세계를 그동안 얼마나 많이 봤던가. 기억을 돕기 위해 <PD저널>이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풍문이 아닌 현실의 세상 속 그들의 얘기들을 복기한다.

 

▲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 2014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부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눈물을 떨구고 있다. ⓒ뉴스1

■ 옳은 말 하고선, 왜 그랬어요?

지난해 12월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은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서비스 방법을 문제 삼으며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과 함께 폭력을 행사하며 이들을 하기시키기 위해 이륙 직전의 비행기를 되돌리는 이른바 ‘램프리턴’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보안법을 위반하는 이런 갑(甲)질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결국 그동안 대한항공 내에서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 온 오너 일가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조 사장을 더욱 코너로 몰아넣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바로 그가 2013년 4월 이른바 ‘라면 상무’를 구구절절 옳은 말로 비판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라면상무’ 사건은 대기업의 한 임원이 라면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대한항공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조 부사장은 회사 인트라넷에 “폭행사건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겪었을 당혹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깝다”며 “기내 폭행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계몽 효과를 봤다”고 글을 남겼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의 모순을 스스로 폭로하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참고: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형으로 1심 재판부는 항공보안법 제42조의 항로변경이 공로(空路)뿐 아니라 이륙 전 지상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조 전 부사장이 지상에서 출발한 항공기의 방향을 되돌리게 한 행위는 항로변경에 해당한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조 전 부사장 측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2013년 3월 23일 TV조선에서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누드’검색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TV조선 화면캡쳐

■ 국회에서 ‘누드’ 감상? 의원님은 ‘공무’ 중

2013년 3월 22일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 중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누드 사진을 보는 장면이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당시 심 의원은 문제의 장면을 처음 보도한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누군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줘 뭔가 하고 봤더니 그게 나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에 의해 심 의원이 직접 자신의 스마트폰에 ‘누드’라고 검색한 장면이 포착됐다.

이후 침묵하던 심 의원은 4월 11일 해명자료를 통해 “카톡을 하던 중 누군가 보낸 주소창을 클릭했더니 한 누드 사진 사이트로 연결됐고 5초 만에 사이트를 빠져나왔다”며 기자에게 했던 자신의 해명은 거짓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누드 사이트가 어떻게 성인인증 없이 무제한 살포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 검색해 보니 구글에서 성인인증 등의 제약 없이 접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실효성 있는 규제와 법안의 필요성을 느껴 실태 파악을 위해 ‘누드사진’ 키워드를 검색해 1분 동안 웹문서 목록만 훑어 봤다”고 심 의원은 말했다. 그리고 이 같은 해명과 함께 ‘스마트폰 청소년 유해콘텐츠 차단 의무화 법안’도 함께 내놓았다.

2014년 10월 8일엔 같은 당의 권성동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도중 자신의 휴대폰으로 비키니를 입은 외국 여성의 사진을 보다가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논란이 일자 권 의원은 “스마트폰으로 환노위 관련 기사를 검색하던 중 잘못 눌러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들 의원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정치인들의 휴대폰 속 내용들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심재철 누드’, ‘권성동 비키니’ 등은 빠짐없이 연관 키워드처럼 묶여 보도되고 있다.

■ 지킬하이드, 바로 접니다?…회장님의 두 얼굴

2013년 9월 27일 아웃도어 브랜드인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이 김포공항 탑승구에서 탐승 수속 중 항공사 협력업체 직원을 신문지 등으로 폭행한 사실이 사흘 뒤인 9월 30일 알려졌다. 공항에 늦게 도착해 탑승이 어려워지자 강 회장은 무리하게 탑승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탑승권 확인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을 때렸다.

논란이 일자 강 회장은 공식 사과 성명을 내고 “당시 현장에서 당사자에게 사과를 했고, 약 1시간 후 재차 당사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어찌 되었건, 본인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힌 후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사회를 위해 더욱 봉사할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반성의 뜻과 함께 사회에 대한 봉사를 강조하던 강 회장은 ‘신문지 폭행’ 사건 하루 전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회복지법인과 장학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폭행 전후에 등장한 사회공헌과 봉사에 대한 다짐,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도한 언론들은 “회장님의 두 얼굴”이라는 표현으로 평가를 갈음했다.

 

▲ 7선의 정몽준 의원이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대항마로 최종 확정됐다. 정몽준 의원이 2014년 5월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4 전국동시지방선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서울시장 후보 수락 연설을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노컷뉴스

■ 70원의, 아들의 덫

2008년 6월 27일 당권 경쟁을 위한 후보토론에 나선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경쟁자였던 공성진 후보로부터 “버스 기본요금은 아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정 의원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라며 “카드로 타면 한 번 탈 때 한 70원 하나?”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그 후, 그는 갖가지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버스 기본요금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됐고, 뭘 해도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막내아들은 지난해 4월 아버지가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에 “미개한 국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아버지가 국민 앞에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곱이곱이 70원의 덫과 아들이 안티라는 얘기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정몽준 전 의원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속 한정호의 아내 최연희의 말일 지도 모른다. “여보, 워딩에 신경 써요.” “저 애들, 혼돈의 시기예요. 명료한 세계관을 심어주세요.”

 

▲ <경향신문> 3월 18일 14면

■ “밥 빼”와 “종북” 사이

지난 3월 12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개봉을 앞둔 영화 <장수상회>의 예고편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감상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은 아니었다. 홍 지사가 영화 예고편을 감상한 그곳은 무상급식 폐지에 따른 경남도 교육청의 예산 수정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경남도의회의 본회의장이었다.

<시사IN>에 의해 포착된 이 장면이 특히 논란을 부른 건, 바로 전날 홍 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이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폐지를 주장하며 이렇게 썼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여론은 들끓었고, 사람들은 되물었다. “도의회가 영화 보러 가는 곳인가.”

하지만 홍 지사는 묵묵부답이고 경남도는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데 항의하는 학부모들에 대해 “종북 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이 도를 상대로 정치투쟁을 하려는 일체 행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번의 새누리당 정권 이후 ‘종북’은 한국 사회의 모든 다양한 여론을 잠식하고 빨아들이는 키워드가 됐다. <풍문으로 들었소> 속 한정호의 “이니셔티브를 선점하고 전선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야!”라는 말은 그의 얄팍한 속내 때문에 번번이 전선을 없애기는커녕 본색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할까.

 

▲ 3월 23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유준상)이 아들 한인상(이준)과 며느리 서봄(고아성)에게 마키아벨리의 ‘자본론’을 강독하며 대중의 우매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SBS 화면캡쳐

어떤 이들의 갑질은 그들의 갑질이 가능하도록 하는 충실한 을(乙)에 의해 완성된다. 그래서 갑질을 하는 갑들과, 갑에 달라붙어 갑들의 갑질을 당연하게 만드는 을들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건 이런 반박과 질문일지도 모른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강독하던 한정호의 “우매한 대중”이라는 전제에 며느리와 아들인 서봄과 한인상이 이렇게 반박하고 되물었던 것처럼.

“우매한 대중이라는 것 자체가 틀린 전제 아닌가요?” “(대중이 우매하다는 건) 대중을 무시하거나 대중에 대해 무지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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