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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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② 여성·장애인·성소수자 혐오방송을 말하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들 말한다. 세상이, 사회가,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자유와 평등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미디어. 그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계관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수자를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에는 여전한 차별과 편견,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미디어는 곧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은 정말로 “참 좋아졌”을까?

여기, 미디어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소개한다.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여자를 메인으로!

▲ 지난 29일 오후 페페페 회원이 CJ E&M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D저널

지난 달 29일 오전 ‘공영방송 KBS는 여성혐오자 집합소입니까?’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든 한 남성이 KBS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 남성은 페페페 회원 코르기에르고숨 씨. 옹달샘의 방송출연을 반대하는 페페페의 1인 시위는 이 날 JTBC와 CJ E&M 앞에서도 오후까지 진행됐다.

페페페는 반여성혐오 연대체로 차유진, 신희주, 유체 씨를 중심으로 결성돼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코르기에르고숨 씨처럼 수시로 서포트해주는 회원들이 많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불특정 다수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단체’가 아닌 ‘연대체’다.

페페페는 지난 4월 옹달샘의 방송출연을 계기로 결성됐다. 혐오발언 논란을 일으킨 옹달샘이 KBS <나를 돌아봐>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신희주 씨가 1인 시위를 하기로 결심했고 여기에 차유진 씨와 유체 씨가 합류했다. 여성혐오 이슈에 뜻을 같이한 이들은 ‘행동하는 임시 연대체’ 페페페를 조직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페페페의 옹달샘 퇴출운동에 대해 ‘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페페페의 진짜 목표는 단순히 옹달샘을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다. 신희주 씨는 “옹달샘 퇴출은 선례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혐오를 지속적으로 표출하면서 말로만 사과하는 행태에 일침을 가하려는 것이다. 유체 씨는 “실제로 옹달샘을 광고 모델로 쓰거나 출연프로그램을 협찬하는 회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일부 회사가 광고를 중단했듯, 페페페의 활동으로 방송인들이 말을 하기 전 적어도 한 번쯤 생각하고 의식하게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과 반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이 옹달샘을 계속 출연시키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코르기에르고숨 씨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될 정책결정권자들 안에 여성혐오와 차별이 더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사 내 경영진, 심의기구 뿐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조차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체 씨는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결정권자로 있는 것이 문제”라며 “여성혐오를 일삼는 자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무리가 너무 공고하고 크다”고 말했다.

방송사의 의식 부재와 ‘게으름’도 지적됐다. 당장의 논란만 무마하고 이제껏 하던 대로 하겠다는 태도는 언론사 뿐 아니라 PD를 비롯한 미디어 종사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신희주 씨는 “여성의 외모와 신체적 자기 결정권을 비하하고 혐오하고, 소수자를 차별하는 ‘올드한’ 콘텐츠를 아직도 만들고 있다”며 “대중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 역시 방송콘텐츠의 역할이자 의무인데 그런 부분은 방기한 채 아무런 발전도 업데이트도 없다”고 비판했다. 유체 씨는 “흑인 분장과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발언 등으로 웃음을 주려는 저급한 개그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며 “인권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방송된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신희주 씨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 모든 ‘혐오’에는 인식 부족과 무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혐오’라는 개념에 대한 무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 부족, 인권 감수성 부재 등이 이유라는 것이다. 신 씨는 “여성혐오적, 비하적인 발언들이 고착화되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며 “문제는 이런 미디어의 차별적 시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취재하는 매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 일간지에서 페페페를 ‘시위녀’라고 지칭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웃픈’ 사례다.

페페페는 옹달샘 뿐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의 양상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페페페는 이 모든 활동을 정리해 고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앞으로의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터뷰 이후 페페페는 “부산 여자가 드세서 가정폭력을 유발한다”고 발언한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지난 3일 양성평등법에 대한 질문서를 보내고,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6일에는 우원식 의원실을 통해 질문서에 대한 서면 답변서를 받았다. 이에 대해 페페페는 “그간 페페페가 해오던 활동의 작은 성과”라면서도 “서면답변서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황 후보자는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명확히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여성은 국민과 유권자의 반이고, 여성주의도 오롯한 하나의 정치 운동인 것을 다시 한 번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단순히 옹달샘을 비난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주체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에요. 이것은 일상의 운동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겁니다.”(유체 씨)

‘악의 없는’ 표현의 악한 결과

▲ 420장애인권리찾기대행진 추진연대 회원들이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 개정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조현수 정책국장은 최근 일어난 일련의 ‘혐오 사태’들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 인권 감수성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개인의 ‘취향’인 양 쏟아낸 옹달샘 멤버들의 도 넘은 발언, 문제제기의 핵심을 비켜간 각종 음모론과 옹호론이 그러했다.

특히 혐오성 발언과 표현들이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확대 재생산 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혐오가 농담으로 둔갑하고, 이에 대한 비판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옹호하는 사회적 현상을 보여준 대표적 예”라고 꼬집었다.

조 국장은 미디어에 ‘악의 없이’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차별적 표현에 문제를 제기했다. 악한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악의 없는 차별이 문제제기를 어렵게 하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자의 다름을 희화화하고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은 존중의 결핍과 차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악한의도 없이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서 그 행동이 용인되거나 묵과되면 차별과 혐오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라고 말했다.

조 국장은 미디어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성’이라는 허구에 따라 누군가를 착취하고 차별하는 정서는 소수자 혐오를 묵인하는 미디어를 소비함으로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아주 작은 장면에서도 차별과 혐오를 읽어내는 태도가 중요하며, 나의 행위(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변해야 할 미디어가 오히려 편견과 혐오를 고착화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조 국장은 “왜곡된 차별적인 인식이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디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라며 “나아가 장애 문제에 있어서 동정어린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장애인이자 호주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스텔라 영이 “나는 (당신들에게) 감동을 주는 소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발언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장애인을 감동의 소재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

조 국장은 미디어가 가십적인 주제나 표면적인 현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맥락, 소수자가 처해있는 차별의 현실 등에 주목하길 요구했다. 또한 “소수자의 문제를 우리 사회 모순이 집약된 결정체이자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관점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혐오’는 ‘의견’이 될 수 없다

▲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 4월 23일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JTBC <선암여고 탐정단> 동성키스장면 중징계 반대 동성키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날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은 기자회견을 갖고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한 징계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뉴스1

“이번 징계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자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조치였습니다. 실망스럽고 분노할 만한 일이었죠.”

지난 4월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 중징계를 내렸다. 여고생 간의 키스신을 방송했다는 이유였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나라 활동가는 이번 징계에 대해 “심의위원들의 소수자 혐오가 드러난 결과”라고 비판했다.

나라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혐오’를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적 합의’, ‘여론’ 등을 핑계로 성소수자 인권을 부정하거나 유예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소수자 혐오를 방관하는 태도의 기저에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다. 나라 활동가는 “방송사나 심의기구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국가기구나 공공기관은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들 눈치는 보지만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무시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비정상’, ‘변태’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성소수자들은 일상적으로 그 존재를 부정 당한다. 성소수자의 미디어 노출이 극히 예외적인 것도 미디어가 사회를 반영한 결과다. 나라 활동가는 “성소수자는 차별적인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얼굴을 가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며 “이런 현실에서 성소수자들을 왜곡된 이미지와 연결 짓는 편협한 고정관념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소수자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나라 활동가는 “민주주의와 다양성 보장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데 있어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입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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