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독립성 못 지키는 공영방송 이사회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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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시민단체, ‘공영방송 이사회 활동 평가 토론회 열어…이사회 감시 필요성도 제기

정부와 정치권에서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을 추천하고 선임하는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 하에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권력으로부터의 개입을 막는데 힘을 써야 할 공영방송 이사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혀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와 언론단체가 함께 구성한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와 언론노조, 그리고 한국PD연합회와 방송기자연합회 등 현업 언론인단체들은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국화홀에서 ‘공영방송 이사회 활동 평가와 과제 토론회’를 열고 공영방송 이사회가 역할과 공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해왔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국화홀에서 ‘공영방송 이사회 활동 평가와 과제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남철우 언론노조 KBS본부 정책실장(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KBS이사회에 대한 평가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정배 언론노조 EBS지부 위원장, 조성래 언론노조 사무처장, 남철우 언론노조 KBS본부 정책실장, 김혜성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 ⓒ언론노조

이번 토론회는 오는 7월과 8월 KBS와 방문진, EBS 이사회가 재구성되고, 하반기 KBS와 EBS 사장 선임이 이뤄질 예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공영방송 KBS이사회와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EBS이사회의 이사들 모두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최고의결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역할과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남철우 언론노조 KBS본부 정책실장은 “대통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완결적 위치에 있긴 하지만 실제 KBS를 지배하는 경영에 관한 의사 결정만을 놓고 본다면 KBS이사회의 위상과 역할은 절대적”이라며 “사실상 경영의 일선에 있는 사장을 비롯한 집행기관은 본인들의 경영행위에 책임이 따른다. 이에 비해 비상임인 KBS이사들은 방송법, 방송법시행령, KBS정관이 규정한 권한과 역할만 내세워도 KBS상왕(上王)에 다름 아닌 존재들”이라고 지적했다.

▲ 공영방송 KBS의 지배구조. ⓒ언론노조

KBS이사회의 설치와 운영은 방송법 제46조에 명시돼 있다. 이사회는 KBS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11인으로 구성되며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의 임기는 3년이고, 이사장을 포함해 모두 비상임이사다. 현재 KBS이사회는 여당 추천 이사 7인, 야당 추천 이사 4인으로 구성돼 있다.

KBS이사회는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은 물론 방송의 공적책임에 관한 사항을 비롯해 방송의 기본 운영 계획, 예산・자금 계획, 사장・감사의 임명제청 및 부사장 임명 동의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KBS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남 정책실장은 “KBS이사회의 제1책무는 KBS를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수신료를 납부해 주는 국민들의 공공성을 위해 경영의 최고의결기관으로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라며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KBS이사회는 끊이지 않는 정치권력과 자본의 공세에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켜내려는 어떤 시도나 조치들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공영방송 MBC의 지배구조. ⓒ언론노조

이 같은 사정은 또 다른 공영방송인 MBC와 EBS도 마찬가지다. MBC 주식의 70%를 소유한 방문진은 MBC 사장 선임 등 MBC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이사장을 포함한 총 9인의 이사로 구성되며, 현재 여당 추천 이사 6명과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이뤄져 있다.

김혜성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은 KBS이사회와 마찬가지로 방문진 내 여대야소 구조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홍보국장은 “현재 공정성과 신뢰도 면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MBC의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바로 방문진 이사들”이라며 “하지만 이들은 MBC가 잘못되어도 아무런 손해를 입지도 않고,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MBC의 주인 행세만 하고 있는 가짜들’이라는 비판이 거세다”라고 지적했다.

김 홍보국장은 그 예로 지난 2012년 9월 27일 야당 이사 3명이 170일 MBC파업의 책임 등을 묻기 위해 제출한 김재철 당시 MBC사장 해임안을 여당 이사 6명에 의해 표결조차 가지 못한 일을 들었다. 이어 그해 11월 8일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상정됐으나 찬성 3표, 기권 1표, 반대 5표로 부결되기도 했다. 이사회 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이사들의 결정이 곧 방문진의 결정이 되는 구조 때문이다.

김 홍보국장은 “여당 추천 6, 야당 추천 3이 고착화된 구도에서는 아무리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고자 하더라도 여당 이사들이 똘똘 뭉쳐 반대하면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야당 추천 이사들은 극도의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MBC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중립 지대로서 출발한 방문진이 오히려 정파적 이해를 막무가내로 관철시키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방송문화진흥회법 제1조는 “방송문화진흥회를 설립하여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여대야소의 정파적인 이사회 구조에서는 이 같은 법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김 홍보국장은 “지금 이대로라면 방문진은 그럴 능력(공적 책임 실현 등)이 전혀 없는 불필요한 기구에 불과하다”며 “정치권에 철저히 귀속된 방문진 이사 선임 방식부터 시작해서 방문진 이사회의 의사 결정 방식까지 불합리한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홍보국장은 “누군가의 ‘대리자’로서 MBC에서 주인 행세만 하고자 하는 이사들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가짜 주인’들에게 휘둘리는 사이 MBC는 점점 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공영방송 EBS의 지배구조. ⓒ언론노조

EBS이사회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13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제1항에서는 “공사는 교육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공사의 업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의결하기 위하여 이사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법에 따라 EBS이사회는 방통위가 임명하는 비상임이사 9명으로 구성되며, 여기에는 교육부장관이 추천하는 사람 1명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교육 관련 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 1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EBS이사회는 KBS이사회와 방문진보다 여대야소 성향이 강하다. 여당 추천 이사 9명, 야당 추천 이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여대야소 이사회 구조도 문제지만 EBS는 이사뿐 아니라 사장 임명 및 해임 권한도 방통위에 속해 있다. 이를 두고 EBS 내부에서는 EBS가 독립법인인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방통위가 사실상 EBS 거버넌스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BS 이사 선정 기준 역시 KBS이사회와 방문진에 비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KBS이사회와 방문진이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인적 구성을 갖추는 것에 비해 EBS는 어떠한 추천도 없이 방통위 임명이라는 일방적 임명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정배 언론노조 EBS지부 위원장은 “교육방송으로서 지녀야 할 특수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을 담보할 실질적인 자격요건이 미비하다”며 “EBS 지배구조가 정부에 종속되다보니 정부의 눈치를 보고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적 기능도 못하고 잘못된 정부 정책이라도 산하기관처럼 움직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고, 결국 피해는 시청자가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 한국방송학회 회원 1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이처럼 최고의결기구인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치적 편향성과 방송의 공정성 보장이라는 책무 역시 제대로 못하고 있는 점에서 이사 임명 방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방송학회 소속 학자와 언론 전문가 12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공영방송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응답자 71.3%가 공정성을 꼽았으며, 그 다음으로 재정안정화(14.8%), 경영효율화(9%), 기타(4.9%)를 선택했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방통위가 공영방송 사장이나 이사를 추천·임명하는 현재의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데 91.8%가 동의했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동의 74.6%, 약간 동의 17.2%, 보통 3.3%, 약간 동의 1.6%, 전혀 동의 않는다 3.3% 순이다.

특히 오는 7월과 8월 KBS와 방문진, EBS 이사들의 임기가 종료되고 새로운 이사 선임을 앞두고 있는데다 새로 선임되는 이사들은 하반기 KBS와 EBS 사장 선임에 관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다.

이에 지난 24일 언론노조와 언론학회, 시민사회단체가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를 발족하고 각 분야에서 선임한 8인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공영방송의 독립에 대한 이해와 비전 △공영방송 경영에 대한 분석과 판단 능력 △최고 의결기구 구성원으로서의 추진 능력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경력 △공적 가치에 대한 신념과 공적책무 실천 경력 등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29인(KBS·EBS이사회, 방문진)의 이사 후보를 결정할 계획이다.

토론에 참석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최악의 사람을 걸러낸다 하더라도 새롭게 이사가 된 사람을 어떻게 잘 감시하고 잘 활동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제도를 만들고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며 이사 선임 방식의 개선과 함께 평소 이사회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감시체제가 제대로 안 되면 이사회 분위기 안에서 대충 조용히 살아가거나 막말이나 이상한 소리를 해도 화제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사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이사회 내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국민에게 알려나가는 작업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은 이사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여대야소의 기울어진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과 방송 경영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사무국장은 “(이사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 누구냐를 보고 추천하는 게 중요하다”며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그런 이사가) 어떻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전문성을 명확하게 갖고 있고, 책무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노 사무국장은 이사회를 지원하는 이사회 사무국의 독립적 운영은 물론 제한적이고 소극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이사회 회의의 적극적인 공개 역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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