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올해도 방발기금 안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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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광고매출의 0.5% 징수…언론단체 “방통위, 규제기관 아닌 종편 졸개 노릇”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올해도 방송통신발전기금(이하 방발기금) 내지 않을 전망이다. 2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이 야권 추천 상임위원 2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해가 아닌 내년부터 종편에 방발기금을 징수하겠다는 뜻을 밀어붙인 결과다. 이에 따라 종편 4사는 내년부터 방송광고매출의 0.5%를 납부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2011년 출범 이래 종편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방발기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올해 종편의 방발기금 유예의 이유로 방통위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권 추천 상임위원들이 내세운 것은 그동안과 마찬가지로 종편이 “신생매체”라는 부분이다.

그러나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과 언론계 안팎에선 ‘종편 육성론’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지상파 채널과 가까운 번호대의 황금채널, 의무편성 등의 특혜를 누리며 “5·18 북한군 개입설”, “DJ(김대중 전 대통령) 간첩설” 등 막말·왜곡·편파방송을 이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엔 불법협찬·광고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종편이 과연 육성이 필요한 대상인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방통위는 지난 2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방발기금 분담금 면제 대상을 소규모 사업자와 광고매출 50억 이하 및 직전년도 당기순손익 적자 사업자 등으로 한정한 바 있다. 종편은 방발기금 면제 기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방발기금 분담금 면제 기준을 설정하고도 방통위가 종편의 눈치를 보며 징수 유예를 내년으로 미루는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4월 29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野 상임위원들 퇴장해도 ‘與 위원들끼리’ 합의 강행한 위원장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방방기금 분담금 징수 및 부과와 관련한 고시 개정안을 보고했다. 종편·보도채널의 방발기금 징수율을 0.5%로 하되 시행 시기를 올해, 2016년, 2018년 중에서 하나로 결정하는 방안들이었다. 여권 추천의 최성준 위원장과 이기주 상임위원은 징수율을 0.5%로 하고 2016년부터 징수하는 안을 지지했으며, 또 다른 여권 추천 위원인 허원제 상임위원은 징수율을 0.5%로 하고 2018년부터 징수하는 안을 지지했다. 반면 야권 추천의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올해부터 1%를 징수하자고 주장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지난 2일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방발기금 징수 면제 기준을 분명히 했던 것을 언급했다. 고 상임위원은 “앞서 거대 통신 기업인 IPTV 사업자들이 10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신생 매체라는 이유로) 방발기금을 면제해 주는 게 타당하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한 만큼, 면제 대상이 아닌 종편에 대해서도 올해부터 방발기금을 징수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김재홍 상임위원도 “종편은 신생 언론사가 아닌 오랜 시간 막강한 영향력을 쌓아온 거대 신문사들이 운영하는 미디어그룹일 뿐 아니라, 정부(방통위)로부터 의무편성 등의 특혜까지 누려왔다”며 “자본잠식 상태의 OBS가 엄청난 적자 상황에서도 방발기금을 내는데 급성장하고 있는 종편에만 면제를 주는 건 (또 하나의) 특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지난 6월 30일 공표한 2014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에 따르면 종편 4사의 방송매출은 프로그램 제공·판매 매출과 협찬 매출 등의 상승에 힘입어 전년 대비 955억원(31.5%) 증가한 4016억원을 기록했다. 또 지난 3월 방통위가 발표한 2014년도 방송채널 시청점유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편 4사의 시청점유율은 11.81%로 SBS와 지역민방을 합한 11.29%보다 높았다. 이는 MBC 본사와 19개 지역사를 합한 시청점유율(11.97%)과도 거의 차이가 없는 결과다.

그러나 허원제 부위원장은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위성방송 사업자, IPTV 사업자 등은 최소 6년 이상 방발기금을 면제 또는 유예 받았는데(최초 면제 3년+3년 추가 유예), 종편에 대해 (벌써) 징수를 할 경우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깰 수 있다”며 2018년부터 0.5% 징수율을 적용하자고 말했다.

반면 최성준 위원장은 “시행령 개정은 방발기금을 명확한 기준에 의해 체계적으로 징수하기 위함”이라며 “개정 시행령 시행 시기(6월 22일)와 방송시장 상황, 종편·보도채널의 적자 상황(2014년 기준 1109억원) 등을 감안해 0.5%의 징수율로 하고 내년부터 적용하는 게 적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최성준 위원장은 지난 2014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종편 방발기금 징수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종편 방발기금 유예 부분을 재검토하고 정리하겠다”고 답했으며, 취임 이후에는 종편에 대한 방발기금 징수를 2015년부터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고삼석 상임위원은 “2014년 5월 23일 방발기금 분담금 징수율을 정하기 위해 열린 전체회의에선 ‘종편·보도채널 분담금 징수율 0% 유지(1안)’와 ‘징수율 1%(2안)’ 등 두 개의 안이 보고됐다”며 “당시 최 위원장은 ‘올해까지는 1안이 적정하다’고 했는데, 이는 금년(2015년)부터는 2안으로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 아니었나”라고 확인했다. 고 상임위원은 또 “당시 방통위 회의 직후 열린 국회 미방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종편 방발기금 면제에 대해 특혜를 지적하자 위원장은 공감하며 ‘내년부터는 일정한 기준을 정해 원칙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며 발언의 이행을 강조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이해하기 나름”이라며 “법률적 사항(방송통신발전기본법 시행령 시행 시점)을 고려해 (내년부터) 2015년 종편의 방송광고 매출에 대한 (방발기금 징수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라며 “국회에서 답변했던 것과 (지금 의견이)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시간 30분 이상 논박이 이어졌고 결국 안건 접수 직전 야권 추천 상임위원 2인은 반발하며 퇴장했다. 최성준 위원장이 “어느 정도 (각자의) 의견과 근거를 설명한 것 같다”며 안건 접수 강행 의지를 밝힌 후 벌어진 상황이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종편의 방발기금은 면제·유예해줄 법적 근거가 없고 2014년도 종편의 사업계획 이행 결과를 보면 막말·편파 방송도 증가한 상황”이라며 “단순히 반대의 입장을 떠나 (방통위) 결정이 잘못됐다는 의미에서 안건을 수용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후 퇴장했다. 김재홍 상임위원도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통한 결정이 아니라 (여대야소 구조 속) 이미 정해진 입장에 따른 결정에 함께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떠났다.

두 상임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최성준 위원장은 남은 3인의 상임위원 중 유일하게 다른 의견이 다른 허원제 부위원장에게 양보를 요구했고, 허 부위원장은 2016년부터 0.5% 징수에 합의했다. 퇴장한 야권 추천 위원들에 대한 설득 과정 없이 바로 여권 추천 위원들끼리만 합의하면서, 결국 ‘합의제’ 위원회로서의 방통위의 존재 이유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이에 따라 종편은 내년부터 광고매출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을 방송발전기금으로 낼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 종편이 열을 올리고 있는 부분은 이미 ‘레드오션’ 시장으로 한계에 도달한 방송광고가 아닌 협찬이다. 실제로 종편의 지난해 광고매출은 126억(5.4%) 감소한 2229억원이었지만 협찬 매출이 크게 늘어난 데 힘입어 전체 매출은 955억원(31.5%) 증가한 4016억원을 기록했다. 종편은 앞으로도 협찬 매출을 올리는 데 집중할 전망이나, MBN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등 종편의 불법 광고·협찬영업 의혹에 대한 방통위의 진상규명 및 제재 의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방통위, 종편 불법협찬 진상규명은 미적…언론노조 “방통위 아닌 ‘종편위원회’”

언론계 안팎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이날 성명에서 “방통위는 위성방송(6년)과 IPTV(5년)가 방발기금을 유예 받았던 만큼 종편도 유예하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주장하나 이는 종편에 특혜를 주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형평성은 본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각 종편의 대주주는 한국 여론을 좌지우지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보수 신문들”이라며 “대주주를 등에 업고 사세를 키우고 있는 종편은 태생부터 약자가 아니라 약자의 탈을 쓴 강자”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종편의 불법 광고·협찬 의혹과 막말·편파 방송 등의 현실을 언급하며 “보통 아이가 4살이 넘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훈육하는데 종편은 올해로 출범 5년차로, 이제는 잘못된 행동에 엄하게 매를 들 때이지만 방통위는 매 대신 당근이나 쥐어주며 종편을 달래려 하고 있다”며 “종편을 바로잡지 못하고 특혜나 얹어줄 거면 (차라리) 방통위가 ‘종편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조선·중앙·동아·매경(방송)이 보호가 필요한 갓난아기라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며 “겨우 걸음마 단계의 사업자가 미디어·광고 시장을 이 지경으로 황페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져 물으며 방통위의 결정을 질타했다.

언론연대는 방통위가 종편 불법 광고·협찬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넉 달이 넘도록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이 또한 종편 눈치 보기, 종편 특혜가 아닐 수 없다”라면서 “결국 방통위가 문제다. 이쯤 되면 방통위가 종편을 보살피는 건지, 아니면 종편이 방통위를 졸개 부리듯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도 “OBS를 비롯해 적자이거나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소규모 방송사들이 지금까지 방발기금을 내온 것은 방발기금이 광고 등 수입에 대한 준조세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종편에 또 다시 방발기금을 면제한다는 건 방통위가 종편 특혜를 목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무너트리는 일”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민언련은 “이미 거대한 매출로 면제 사업자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인 종편에 부당한 특혜를 계속 주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며 정치적 야합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방통위는 이날 논의를 통해 지상파 방송에 대해선 방송광고매출액별 징수구간을 설정하고 징수율 구간별 기본 징수율에 감경요인을 반영해 최종 징수율을 결정했다. KBS와 EBS는 3분의 1 이내에서 감경이 가능하고, 직적년도 적자발생 사업자는 2분의 1 이내에서 추가 감경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KBS·MBC·SBS·EBS 등 중앙 지상파 4사에 대해선 1.54~4.3%로, 지역방송에 대해선 0.65%~2.3%로, 라디오와 지상파 DMB에 대해선 0.15%~2.3%로 징수율을 각각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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