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압력에 ‘무풍지대’ EBS… 사장도 방통위가 선임
상태바
교육부 압력에 ‘무풍지대’ EBS… 사장도 방통위가 선임
[교육방송이 흔들린다 ①] 뉴라이트 교과서 주도 인물 사장 하마평…교육 중립성 훼손 우려 커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5.11.12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BS 사장 후보 공모 마감 전부터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에 대한 ‘내정설’이 도는 등 벌써부터 ‘EBS 국정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특히나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 고시한 상황에서 학교교육은 물론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EBS에 친(親)정부적・보수 성향의 사장이 선임되면 뉴라이트 역사관이 반영된 방송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신용섭 EBS 사장 후임을 선임하기 위한 후보자 공모를 지난 5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방통위가 공모를 시작하자마자 유력 후보자라며 두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바로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류석춘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교수다. 두 인물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언론・시민단체에서는 “교육방송마저 역사전쟁, 이념전쟁터로 만들 작정인가”라며 사장 공모를 즉각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 “교육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오는데 사장이라고…”]

▲ 공영방송 EBS의 지배구조. ⓒ언론노조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EBS가 가진 지배구조에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9조(임원) 제2항에 따르면 EBS 사장은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통위 위원장이 방통위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정부기구, 그것도 여야 3 대 2, 즉 ‘여대야소’로 정부·여당 측 추천이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구에서 공영방송사 사장을 임명한다는 것은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제청하는 다른 공영방송사에 비해 정부의 입김이 더욱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뜻이기도 하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방통위는 ‘EBS 국정화’의 거수기 노릇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미 EBS를 관리・감독하는 EBS이사회의 구성 역시 친정부·보수 성향의 인물이 대다수라는 점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차기 사장 역시 비슷한 인물이 올 것이라는 데 무게를 더하고 있다.

동료 이사를 폭행해 사퇴했음에도 ‘셀프 지원’으로 연임에 성공한 안양옥 이사, 야당 대변인을 “미친 여자”라고 해 ‘영구출연제한’을 받은 후 ‘이사’ 직함으로 EBS에 입성한 조형곤 이사까지 모두 이사 임명 전부터 ‘부적격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조 이사의 경우 뉴라이트 성향의 21C미래교육연합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남수 이사장은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 중인 지난 2013년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해임 요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우편향 및 친일미화, 밀실 수정 논란을 받은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시민사회 및 학계, 정치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수정명령 등 교학사 교과서 검정승인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하마평에 오른 두 명의 인물 가운데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뉴라이트 교과서인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이며, 류석춘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교수는 과거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등 모두 ‘뉴라이트’ 인사들이다. EBS 사장에 두 차례나 공모를 한바 있는 이명희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제2, 제3의 이명희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 인물에 대한 내정설의 이면에는 정부가 지난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고시한 상황에서 이념 편향적인 인사가 EBS 사장으로 올 경우 이름만 공영방송일뿐 EBS 역시 ‘국영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BS 지배구조 외에도 재원구조 측면에서도 EBS는 정부의 영향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현재 EBS의 재원구조는 공적재원과 상업적재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공적재원은 수신료(2010년 기준, 6.5%), 방통위의 방송발전기금(9%), 교육부의 특별교부금(12.5%) 등으로 이뤄져 있다. 결국 EBS의 지배구조는 물론 재원구조까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 2014년 9월 2일 SBS <8뉴스> 화면캡처. 사진 위는 EBS <필수 한국사> 교재 초판본, 사진 아래는 출판본. ⓒ화면캡처

‘EBS 국영화’를 우려하는 것은 단지 사장 선임과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법률상에 명시된 ‘EBS’라는 방송사가 가진 설립목적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1조(목적)에는 “이 법은 한국교육방송공사를 설립하여 교육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함으로써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국민의 평생교육과 민주적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EBS는 공영방송사로서 정치적 중립성과 방송의 공정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아・어린이부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교교육 보완, 성인들의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수능 강의, 다큐멘터리 등 전반적으로 방송을 통해 왜곡된 역사 교육을 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전규찬 한국종합예술원 영상원 교수(방송영상과)는 지난 11일 ‘역사교과서, 방송 국정화 절대 안돼!’ 촛불문화제에서 공영방송 사장으로 친정부・뉴라이트 성향의 인물이 임명될 경우 “집에 매일 틀어져 있는 TV에서 연예, 오락,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국정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거짓을 달콤하게 포장해 시청자의 무의식에 집어넣게 될 것”이라며 “재미에 흘려 듣다보면 긴가민가하게 되고 자꾸 듣다보면 ‘정말 그런가’ 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지난 4일 열린 <PD저널> 주최 긴급 좌담에서 “국정화 문제는 역사 인식 문제만이 아니라 결국 전체 국민의 인식을 지배하겠다는 데 목적이 있고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이라며 “공영방송에서 생산된 콘텐츠가 최소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에서 벗어나는 걸 용인하지 못하거나, 뉴라이트적 인식을 생산할 수 있는 제작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다.

실제로 EBS에서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전부터 전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SBS 단독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8월 7일 EBS 수능교재기획부에 전자메일을 보내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필수과목이 되는 한국사 EBS 교재인 <필수 한국사>와 관련해 수정 지시를 내렸고, EBS는 교재 출판 보름 전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의 요구에 따라 초판본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남수 당시 장관이 물러나고 황우여 현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에 발생한 일이다.

교육부와 신용섭 EBS 사장은 “난이도를 조정한 것”이라고 수정 지시를 부인했지만 <필수 한국사> 초판본과 출판본 상에서 달라진 부분을 보면 친일・독재 정권 미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다.

교육부의 요구로 수정된 내용은 △박정희 중심의 정치 군인이 정권 장악: 반공을 국시로 제기, 국회 해산(초판본)→헌정 중단, 국가 재건 최고 회의 구성(수정본) △박정희 정권이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을 구실로 유신 헌법을 공포했다고 기술한 내용 삭제 △독립운동가 여운형 관련 문제, 좌익 쪽 인사가 한 문제를 차지하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으로 인해 다른 문제로 대체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 받은 조봉암 관련 문제를 더 중요한 사람에 관한 문제로 바꾸라는 지시에 이승만 관련 문제로 변경 △노동운동가 전태일 동상 사진 삭제 요청에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사진으로 대체 등이다.

▲ 2014년 9월 2일 SBS <8뉴스> 화면캡처. 사진 왼쪽은 EBS <필수 한국사> 교재 초판본, 사진 오른쪽은 출판본. ⓒ화면캡처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 같은 정부 개입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EBS의 지배구조가 방통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EBS는 정말 중요한 방송이다. 또 다른 공영방송인 KBS나 MBC처럼 상업성이 높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교육 콘텐츠를 또 평생교육의 의무도 지고 있다. 이런 EBS를 통해 아이들과 일반 시청자에게 편파적이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게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역사는 다양한 해석을 가질 수 있음에도 규격화된 역사관,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친일・독재 인물을 우상화하는 일을 방송을 통해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치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사장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단체에서 추천한 인물들 중에서 사장을 선임하는 방안을 만드는 등 공정한 사장 선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방통위로부터 EBS가 독립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