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동제작, 힘들어도 ‘공동체’의 기쁨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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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PD의 나는?!] 아시사 6개국 공동제작 어린이 드라마 ‘너도 동생이 있니?'

국제공동제작이라는 생소한 영역에 처음 뛰어든 것은 2004년이었다. 얼떨결에 맡아서 처음 진행해 본 아시아 어린이 드라마 국제공동제작은 정말 힘들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내가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 한 동료가 말했다 “그럼 하지 마, 힘들면 안 하면 되잖아?”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힘들면 안 하면 된다! 그러나 나의 유전자는 그 말에 그냥 저항한다. 왜냐하면 국제공동제작에는 힘든 것 이상으로 나를 격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공동제작이 언급될 때 많은 경우 ‘규모의 경제’를 말하곤 한다. 콘텐츠 제작은 거대자금을 바탕으로 한 블록버스터급의 제작, 아니면 일인 미디어 제작자가 재치를 발휘하여 저렴하게 ‘유튜브’ 등에서 공유하는 방향, 이렇게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상업적 목적의 작품은 제작자들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 마련이다. 물론 더욱 현혹적이고 화려한 미장센, 유명세의 정상에서 날아다니는 배우들이 거론되기 일쑤이다.

우수한 콘텐츠를 여러 나라가 공동제작하면 물론 경제적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공영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국제공동제작의 금전적인 매력보다, 국가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중요하게 여긴다. 각 나라와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그 과정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가 매우 크다.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외교 활동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나와 함께한 ‘외인구단’팀의 <Baby on the way, 너도 동생이 있니? > 라는 아시아 6개국 공동제작에 대해 제작 PD로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는 우수 어린이 콘텐츠 개발에 대한 개인적인 희망과 아시아 공동체를 견고히 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KCA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방송협정협력이행사업 제작지원이 없었다면 그저 꿈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 EBS 아시아 6개국 공동제작 <너도 동생이 있니?> ⓒEBS

“Baby on the way, 너도 동생이 있니?” 아시아 6개국 공동제작 - 그게 뭐죠?

10년이 지나 이번에 기획 제작을 맡은 <Baby on the way, 너도 동생이 있니?>는 아이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오히려 누구나 공감하는 ‘끈끈한’ 정서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7세~9세의 어린이! 늘 어른의 시선으로 풀어냈던 출산과 육아의 이슈를 어린이의 시각에서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아이디어의 출발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가족이라는 거창한 메시지를 한방에 아우를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소재, 그것은 바로 ‘동생’이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집단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옆에 있는 동생에 대한 사랑과 질투 양가의 감정을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을 온전히 ‘어린이’의 시각에서 담고자 하였다.

예전에 처음으로 공동제작을 시작할 때는 ‘했다’라는 의미에 만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공동제작 경험 10년이 지난 지금은 의미 못지않게 결과물도 중요하다. 홍수처럼 넘치는 콘텐츠 속에서 매력이 있으려면 재미는 당연, 재미를 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했다. 그에 대한 돌파구는 어린이를 위한 고품격 콘텐츠! 주인공의 감정선을 영상미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도 다큐멘터리를 ‘계몽’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일부 국가에 고품격 어린이 다큐멘터리, ‘비주얼 스토리텔링’이라는 콘셉트를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 아시아 6개국 전체 제작진이 함께 모인 워크솝 진행이었다. 장장 3박 4일 꼬빡 제작 논의에 열정을 쏟은 워크샵을 마친 후, 비로소 어린이를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확신이 들었다.

#미얀마에서 몽골까지 그들의 가족이 되어

이번 작업은 촬영만을 각 나라에서 진행하며, 편집을 비롯한 음악, 색 보정, 애니메이션 등 모든 후반 작업은 한국에서 진행했다. 각 프로그램의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한국에서 주도해야 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촬영 기간 동안 그들의 나라로 날아가,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콘셉트를 다시 주지시키며, 총감독을 해야 하는 일이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 결’을 맞추기 위해 각 국가의 이야기를 한 결의 시선으로 맞추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몽골에서는 게르(몽골집)에 5일간 묵으며 밤 12시까지 촬영 분을 보며 가편집을 했다. 지쳐서 그림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앉아있었는데도 이상한 에너지가 솟는 건 뭐였을까?

몽골에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재미있는 의식이 있다. 가족 친척들 모두 아기를 보러 온 첫날에 한집에 모여서 조그만 쪽지에 이름을 적는다. 아이에게 어울릴 좋은 이름을 각자 적어서 그릇에 담고 그 위를 겨 같은 곡식으로 덮는다. 아빠가 그릇을 살살 흔들면 밑에 깔려있던 이름표 중에 하나가 올라오고 그걸 집어서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가족 참여 행사이다.

그런데 촬영장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이방인인 나에게 갑자기 이름을 하나 적으라고 한다. 그냥 얼떨결에 하늘의 뜻으로 태어난 귀한 아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그것도 한글로, 성은! 그런데 이게 웬일! 아이의 이름으로 내가 써낸 이름이 당첨된 것이다. 졸지에 나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대모가 되었다. 실은 할머니뻘이지만...

미얀마로 마지막 제작 출장을 갈 때는 한 달간 지속된 감기몸살이 함께 했다. 거기에다가 계속된 폭우로 차량 통행금지! 폭우 속을 달리는 오토바이 뒤에 앉아있다는 것은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교통수단이 생긴 것에 감지덕지! 설상가상, 미얀마 촬영 팀이 찍었다고 보여주는 그림은, 실망 그 자체였다. 촬영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프로듀서의 역할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복지수 세계1위인 부탄에서 나는 과히 행복하지 않았다. 기껏 교육시켜놓은 젊은 PD가 방송국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선임 카메라 부장이 PD로 활약하기로 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 이렇게 6개국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에 맞서고 해결해 나가야 했다.

#끝없는 편집- 아시아 6개국 모인 한 달 간의 합숙 편집

6개국 촬영이 다 끝나고 11월 한 달 간 편집 집중 작업이 시작되었다. 정말 인내심을 요하는 기간이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편집을 한다는 것은 두 배는 더 고된 작업이었다. 각국의 제작 PD가 교대로 한국에 들어와서 편집하고 떠나는 논스톱 일정이었다. 과히 ‘외인부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가끔씩은 씩씩하게 또 가끔씩은 엄청난 신경전을 해가며 한 달을 버텼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정말 폭발 직전 화산처럼 방의 기운이 올라가 있을 때 서로에게 용기를 넣어주는 구성원은 이러한 장기 집중 작업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반년을 매여 있다 보니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과 되돌아보며 다시 한 번 편집해보고 싶은 마음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는 것이 우리 제작자들의 끊임없는 애증의 표현 아닐까? (아니면 숙명?)

6개국의 아이들이 동생을 맞이하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알게 모르게 성장하듯이, 프로듀서인 나도 < Baby on the way, 너도 동생이 있니? >를 제작하면서 인내와 배려를 배우며 또 한 뼘 성장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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