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타자(他者)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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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미션 임파서블? 파서블!] 안병진 경인방송 PD

인천에는 공단이 많다. 그 공단 근처에 살던 10년 전의 일이다. 요즘처럼 무덥던 어느 여름의 일요일. 동네 대형마트에 갔는데, 그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화려한 상품 진열대 사이를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나 생소하고 비현실적이었는데, 마치 커다란 그림자 무리가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간혹 거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본 적은 있지만, 마트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그들을 이렇게 만나고 보니, 연민과 왠지 모를 불안이 동시에 마음속에 일었다. 일하지 않는 시간, 그들은 무얼 할까.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에 관한 라디오 다큐를 만들었다.

‘스톱크랙다운’이란 이주민 록밴드를 따라다니며 한국에서 이들의 삶을 엿보았다. 그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연애하고, 결혼도 하며 애를 낳고, 지지고 볶고 다투기도 했다. 취미로 음악을 하며 이주민들의 삶을 우리말로 노래하고 집회에도 참여했다. 록음악이라 사운드는 크고 시끄러웠지만, 그들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광주문화재단 무지개다리사업 ‘이주민라디오’

이 프로를 시작으로 나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난민, 속칭 혼혈아 등 우리 사회 타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에 관한 프로그램을 몇 편 만들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어느 미등록 노동자는 추방되었고, 어떤 이는 난민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으며 다문화가정을 꾸렸던 부부는 이혼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건, 이들의 이야기와 사정에 여전히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들뿐이었다.

‘눈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귀는 익숙한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말이 있다. 한 해, 두 해 방송밥을 먹을수록 수긍이 가는 명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라디오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이보다 슬픈 말이 또 없다. 그렇다면 라디오는 계속해서 익숙한 것만 만들어야 한단 말일까? 현장의 다양한 소리와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는 라디오 방송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라디오는 삶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뒹구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리는 물리적 의미로 다채로운 사운드이기도 하고 또 다양성을 뜻하는 생각과 시각의 차이를 의미이기도 하다.

자,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왜 갈수록 라디오를 듣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라디오를 들을까?’, 100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저 위의 명언에 답 또한 있다고 믿는다. 단적으로 말해 라디오에 다양한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안 듣는 이유가 100만 가지라면, 라디오의 위협자, 팟캐스트가 등장한 이유는 한 가지이다. 기존 라디오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시각을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주민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민 수는 2015년 기준 대략 200만 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의 0.4%를 차지한다. 이중 절반은 이주노동자이다. 한편 다문화가정의 비율은 이미 전체 가정의 1%를 넘었고, 아동․청소년 중 다문화가정 자녀의 비율은 3%를 넘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하지만 우리는 방송에서 이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이주민이 등장하는 <비정상회담>(JTBC)이 처음 방송될 때, 나는 이 프로를 보는 것이 불편했다. 우리사회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아시아계 이주민들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왜 강대국과 선진국 출신들만 대표로 나오는 걸까. 이 같은 요구가 있었는지, 요즘에는 가난한 아시아국가 출신 이민자도 출연하지만 그나마 잘생기고 잘나야 한다. 이들이 무얼 대변할까?

▲ 8월 21일 열리는 이주민방송(MWTV) 주최 ‘2016 이주민라디오 공개방송-우리 목소리가 들려’ 포스터 ⓒ이주민방송

라디오에서도 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맞춰, EBS 라디오처럼 다문화 프로를 주말에 편성하는 곳이 간혹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들이 주체가 되어 내는 목소리가 아니다. 팟캐스트 다르다. 각 지자체 별로 문화재단에서 무지개다리사업을 통해 이주민에게 라디오 제작을 가르치고 팟캐스트로 방송한다.

오는 8월 21일 명동에서는 이주민방송(MWTV)에서 이주민 팟캐스트 공개방송을 연다. 타이틀이 ‘우리 목소리가 들려’이다. 우리 목소리가 잘 들리냐고 묻는 것인지, 가난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우리도 목소리가 있다고 항변하는 것인지 직접 들어보자.

팟캐스트 교육을 기반으로 소출력 라디오를 개국하는 곳도 있다. 올해 9월 전남 광주에서는 ‘고려인’ 공동체에서 만드는 소출력 ‘고려FM’을 개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사회 타자(他者)로 분류되었던 이들이 조금씩 제 목소리를 찾는 과정으로 보인다.

인간이 만든 전자기기 가운데, 가장 따뜻한 제품이 라디오이다. 라디오는 우리 일상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매체이다. 라디오가 위기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라디오는 친구이자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 새로운 공동체를 꾸준히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라디오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Radio is A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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