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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내 나는 대통령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도,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입법할 때도, 집권 여당이나 정부 안에서 이견이 나오는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설득은커녕 대화를 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시늉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가불순세력’이라거나 ‘정권을 흔들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로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낙인찍어 고립시키거나 제거하는 모습이 대통령이 보여준 전부였다.

대화와 설득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를 가다듬거나 입장이 다른 이들과 토론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말에서 일관된 국정철학이나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발견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본적인 논리구조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대통령을 무식하다고 비꼬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자기가 하는 말의 핵심이 뭔지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화법을 지칭하는 ‘근혜어’, ‘수첩공주’, 혹은 닭에 빗댄 ‘닭근혜’라는 별명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무식과 무지를 조롱하는 별명들이다.

사실 나는 이런 별명들이 마뜩치 않다. 이런 별명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편들에게 잠시나마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박근혜 정부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오히려 가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뜩치 않은 더 중요한 이유는, 박근혜의 무식함과 무지야말로 조롱거리가 아니라 그가 가진 힘의 원천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는 배움과 무지에 대한 시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이 시들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배움과 무지가 각각 누구의 무기인지 알 수 있다. 무지는 권력자들의 무기다. 아니 무기라기보다는 권력자들의 당연한 속성이다. 그들은 “백만장자”이거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은 부모가 있거나,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안내자들이 있다.(이상 ‘당신들은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정연한 말을 하지 못하는 까닭도 아이큐가 낮거나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다시 말해 명령만 해도 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설득의 기술을 갖출 필요를 있었을까.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의 마지막 두 행에서 브레히트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러나 만일 사정이 달라진다면 /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이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즉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무기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브레히트는 배워야만 하는 이들, 난민 수용소에 있는 남자, 감옥에 갇힌 사나이,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 60이 넘은 사람들에게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라고 힘주어 말한다.(이상 ‘배움을 찬양함’ 중에서)

배움은 어떻게 굶주린 이들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은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시이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 적어도 취사병 한 명 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처럼 “그 많은 사실들”에 “그 많은 의문들”을 던지기 위한 것이다.(이상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에서)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는 행위는 완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유지되어 온 세상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세상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 의문이 불순하게 느껴질 테고, 의문을 던진 사람들이 답을 찾으려 할수록 둘 사이의 갈등은 더욱 거세질 거다. 공부와 배움을 통해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권력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인 동시에 권력자들과 맞서는 이들이 가장 처음으로 가지는 무기다.

배움과 무지에 대한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처음 다닌 회사에서의 노동조합 활동이 떠올랐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회사와 단협을 맺기 위해 교섭을 하는 내내 우리는 회사의 무지와 불성실에 깜짝 놀랐다. 회사가 흑자인지 적자인지 모르는 경영진은, 자신들의 무지와 불성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당당했다. 당시 노조의 교섭위원이었던 나는 회사의 당당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의 원천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거다.

반면 노동조합은 엄청나게 많은 공부와 준비를 했다. 노동법에 대한 공부는 물론, 다른 사업장의 단협을 구해 분석하며 우리 실정에 맞게 고쳤다. 회사가 취할 거 같은 다양한 입장들을 추측해보고 그에 대한 대응을 연습했다. 당시에는 불성실하고 무지한 회사에 비해 우리만 애를 쓴 것만 같아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또한 우리의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거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배움이야말로 우리의 무기를 갈고 닦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설득하고 협상하기 위해,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품을 수 있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대답하겠다. 당신도 백만장자가 아니라면, 배워야 할 것이다.

이용석: 병역거부자. 출판사 다닐 때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현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회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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