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타오르고 조용히 흔들렸을 당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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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타오르고 조용히 흔들렸을 당신들에게
[chat&책] 최윤필 ‘가만한 당신’을 읽고
  • 이용석 독서가
  • 승인 2016.09.26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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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다. 아무런 위협적인 행동도 하지 않은 초로의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이 알려지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던 많은 유명인사들이 훗날 자기 말을 배반하고 보수 정치인이 되거나, 혹은 여전히 진보진영에 남아 보수정부와 싸우면서도 독선과 아집에 빠져 정작 자기가 몸담은 집단의 독재자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사회운동을 경력 삼아 영웅놀이에 빠져있는 그들과 다르게 백남기 농민은 빛나지 않는 자리에서 꾸준한 모습으로 세상의 부당함과 차별,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거대한 국가권력에 맞서 묵묵히 싸워왔으니 그가 살아온 삶에 사람들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는 몇몇 뛰어난 영웅들의 능력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양심에 따라 묵묵한 저항을 이어온 사람들이 일궈낸 진보의 총합이라는 것을, 백남기 님의 삶을 접하며 또 한 번 아로새긴다.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빈다.

<가만한 당신>은 서른다섯 명의 외신 부고 기사를 모은 책이다. 기사라고 하지만, 딱딱한 사실 관계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먼저 서른다섯 명을 뽑은 기준부터가 책의 부제처럼 “뜨겁게 우리를 흔”든다. 특별하면서도 대단할 것 없는 이들, 저자 최윤필에 따르면 “차별과 억압과 무지와 위선에 맞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가치와 권리를 쟁취하고자 우리 대신 우리보다 앞서 싸워준 이들”이다. 그러면서도 “떠난 자리에 잔물결도 일지 않을 것 같은” 우리에게 유명하지 않은 이들이다. 이들을 보면 자연스레 백남기 님이 떠오른다.

▲ 최윤필 ‘가만한 당신’ ⓒ마음산책

서른다섯 명은 위의 두 가지 기준을 제외하면 딱히 모두가 겹쳐지는 영역은 없다. 그들이 맞선 세상의 차별과 위선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제국주의와 맞섰고, 어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했고, 다른 이는 육체의 한계에 도전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 나라에서는 제법 존경받을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여기서나 저기서나 유명하지도 않고 아직까진 그의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거 같은 사람도 있다.

부고 기사인 만큼 저자는 시종일관 담담한 필치로 서른다섯 명의 죽음을 전하지만, 그 담담함 때문인지 뜨거운 여운이 아주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이런 책은 한달음에 읽을 수 없다. 감정과 느낌을 곱씹으며 한 명씩 한 명씩 읽어내려 갔다. 사실은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라 서른다섯 명의 삶에 대한 책이다. 크게 알아주는 이 없거나 누군가에게 존경받지 못할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온 이들의 삶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권력과 맞서는 일,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일은 종종 개인의 희생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시대가 가파를수록” 개인이 책임져야하는 희생의 크기는 커진다. 전쟁이나 혁명의 시기라면 희생의 대가가 목숨이 되는 일도 흔할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고 생각할 거 같진 않다. 희생이라는 것은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을 보고 누군가는 경제적 희생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나는 내 삶이 희생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서른다섯 명도 자신을 희생했다고 여기지는 않아 보인다.

스스로 희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삶의 길이 만만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들의 삶을 지탱한 것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유명해지기를 바라거나, 명예를 좇았다면 오히려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차라리 희생이라고 여겼다면 그 숭고함에 대한 갈망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 진보나 대의 같은 것들은 그들 삶에서 중요한 목표였을 순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한 개인의 삶을 설명하기는 너무 빈약하다. 무엇보다 활동가로서 사는 나 자신이 그러한 대의에 전적으로 기대어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안 좋은 곳으로 변하는 것만 같다. 우리들의 사회운동은 늘 지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물론 잘 지는 것이 중요하고, 지는 싸움들이 쌓여서 조금씩 세상이 진보해간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마저 흔해빠진 정신승리는 아닌지 자신이 없을 때도 있다. 지금 세상은 참 어려운데,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만 같은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저 서른다섯 명에게 묻고 싶다. 백남기 농민께 묻고 싶다. 당신들의 삶을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지. 분명 많은 순간 흔들렸을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그런 오기나 양심 같은 것들이 흔들리는 몸을 붙잡아줬던 건지, 아니면 믿기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니 휴머니즘이니 그런 거대한 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는지. 우리의 노력과 별개로 앞으로의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나 희망이 없는 시대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용석: 병역거부자. 출판사 다닐 때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현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회운동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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