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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PD의 고백 ④] MBC와 YTN의 선·후배들에게

[어느 PD의 고백 ④] 강윤기 KBS PD의 고백 강윤기 KBS PDl승인2016.12.06 1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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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여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들이 마치 환상처럼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분노하고 있고 수백만의 촛불은 주말마다 광화문을 뒤덮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촛불집회 현장에 나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러겠지요. 저는 분노한 촛불을 보며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설레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끄럽고 또 서글펐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의 항의와 조롱을 받고 심지어 쫓겨나기까지 하는 KBS와 MBC의 취재진, 그 광경 역시 저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PD저널에서 촛불정국 속에서 느꼈던 소회를 글로 써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고 고민했습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라를 이렇게 만든 언론이 반성한답시고 ‘자기변명’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주제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딱 하나 있더군요.

촛불집회를 나갈 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언론에 대해서 비판합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그 주범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이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제가 속한 KBS에게는 그 어떤 변명거리도 주어질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비판을 들을 때마다 MBC 선후배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MBC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통틀어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쉽사리 지워질 수 없는 그만큼의 고통을 아직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 2012년 3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전국언론노조가 주최한 방송3사 KBS·MBC·YTN 공동파업 '파업스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낙하산 사장 퇴출, 징계철회, 공정방송 쟁취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2012년, 이명박 정권이 끝나갈 무렵 KBS와 MBC는 연대파업을 벌였습니다. 우리 주장의 핵심은 김인규, 김재철로 대표되는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거였죠. 하지만 KBS의 투쟁은 MBC의 그것만큼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노조는 분열되어 있었고 심지어 다수 노조도 아닌 언론노조 KBS 본부의 역량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KBS는 홀로 회군했습니다. 파업 종료를 의논하기 위한 자리에서 한 후배가 “MBC만 남겨두고 우리만 현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비겁하다.”고 소리 높였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어른거립니다. 이후로도 한동안 MBC의 파업은 계속됐고 무려 170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역사에 기록될만한 언론사 최장기 파업이었습니다. 2008년 이후, 노조가 분열되고 낙하산 사장들의 전횡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KBS를 대신해 전면에 나서 싸움을 벌였던 언론인들이 바로 MBC의 선후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졌습니다. 열정과 기개는 있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낙하산 사장들을 몰아내지 못했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이겼더라면 어땠을까요. 언론장악의 실체가 밝혀지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2016년의 현실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말입니다.

패배의 대가는 처절했습니다. 최승호 선배를 비롯한 수많은 MBC의 동료들이 부당하게 해고되고 징계를 받고 또 현업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물론 KBS에서도 부당한 징계와 인사들이 횡행했고 정권에 대한 충성도 경쟁적으로 펼쳐졌습니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존재감마저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KBS에는 길환영 사장을 몰아냈을 만큼의 기회와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들을 속절없이 놓쳤고 자기검열의 테두리 속에서 안주하며 그저 좋은 시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지쳤다’는 변명만 속삭였습니다.

▲ 2012년 1월30일 MBC 총파업 출정식. 이 날부터 MBC는 공정방송 MBC의 정상화를 위한 김재철 사장 퇴진 총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YTN도 있습니다. 지난 2008년 낙하산 사장을 꽂아 회사를 장악하려 했던 정권에 맞서 노종면 선배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이 처절하게 싸웠지만 아직도 3명의 기자들이 복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와 YTN 동료들의 싸움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자괴감이라도 움켜잡고 반성의 몸부림을 치는 지금 우리의 모습마저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KBS가 제 역할을 못 한 것에 대한 비난은 아무리 들어도 모자라겠죠.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MBC와 YTN의 희생, 투쟁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싸워야할 시기가 왔고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한 줌의 희망이라도 가지고 싸우고 있는 KBS의 힘은 바로 MBC와 YTN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강윤기 KBS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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