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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한 달, 어느 PD의 고백 ①] “야, 파업을 왜 하는 거야?”

유관모 KBS 드라마 PDl승인2017.10.01 00: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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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유관모 KBS 드라마 PD] “야, 파업을 왜 하는 거야?”

이번 추석, KBS·MBC 직원들이 친척과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될 질문이 아닐까요?

“관모야, 왜 파업해? 근데 정권 바뀌니 사장 바꾸려고 하는 너네들도 다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묻는 큰고모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TV를 켜시며 “정권이 바뀌었으니 노조를 동원해 정부가 방송 장악하려고 하는 거지. 한두 번 봐? 뭘 물어봐?”하며 맞장구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쉽게 상상이 되네요. 그리고 이들의 말을 듣고 동공이 흔들리며, 우물쭈물하는 저의 입술이 보입니다.

저는 추석연휴 동안 만나게 될 친인척들에게 KBS·MBC 파업의 이유를 잘 설명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는 맥주 한 캔을 따서 소파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TV를 켰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7 1회 보기를 선택하고 있더군요. 이미 한 번 다 봤지만, 광팬인 저는 그날 7회(마지막 회)까지 몰아보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 존 스노우가 말한 멋진 대사에서 제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The Great War is here!”

“(여러분은 모르고 있겠지만) 대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양대 공영방송의 파업 의도를 속임수로 의심하는 고모에게 저는 존 스노우처럼 “우리는 지금 대전쟁 중에 있다!”고 송편을 토하며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존의 이어지는 대사로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이(투쟁)은 (당신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한 게 아니라 (당신과 내가) 생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투쟁)은 (당신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한 게 아니라 (당신과 내가) 생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사진은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4일 KBS 본관 계단에서 총파업 출정식. 뉴시스

<왕좌의 게임>을 모르시는 분들과 시즌7을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스포일을 하지 않는 선에서 어렵겠지만 저 대사의 맥락을 잠시 설명해야겠군요. 드라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극 중 주요 인물들은 철의 왕좌(최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전쟁 중입니다. 그런데 존 스노우는 다른 인물들이 보지 못한 백귀(왕국을 공격하려는 좀비 같은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들의 공격이 머지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들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왕권을 위한 전쟁을 서로 할 때가 아니라, 순수한 생존을 위한 대전쟁을 함께 싸워야 할 때라고요. 하지만 적들은 백귀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경쟁자인 존의 말을 속임수로 의심하죠.

거실 반대편에서 고모는 동태전을 토하며 물으시겠죠. “대전쟁? 무슨 뜬구름 같은 소리야!”

“고모! 이미 세월호 보도의 정부 개입, 국정원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과거 정권들의 방송장악 의혹들이 하나하나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걸 뉴스로 보면서도 왜 KBS와 MBC가 파업 중이냐고 묻는 거예요? 고모는 백귀를 봤잖아! 지금 이 파업은 고모는 믿지 않겠지만 정치이념보다 훨씬 중요한 우리 생존의 문제예요.” “뭐?” “공정하고 독립된 공영방송은 미세먼지가 관리되는 깨끗한 공기,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각종 재해·재난구호 대비가 된 정부와 같은 거라고.”

“뭔 소리야?”

“정부가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있어서 국민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공영방송이 보도를 안 하면 국민은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공영방송은 우리 생존의 문제예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문재인도 블랙리스트 못 만들게 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고모는 잠시 조용해졌다가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백귀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래서 파업한다고 그게 되냐?”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고모는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말합니다. “왜 이렇게 볼 게 없어. 시끄럽기만 해. 꺼! (우렁찬 포효와 함께 기지개를 켜며) 커피나 마시자.” 전 커피를 타러 갑니다.

믹스커피를 타서 고모 앞에 가져다 놓으며 저는 흘리듯 말합니다. “나도 거짓말하고, 고모도 거짓말 하고, 약속 안 지키잖아.” “내가 언제 거짓말했어?” “우리나라 기업인, 국회의원, 대통령까지 다 거짓말 밥 먹듯이 했지. 게다가 KBS 9시 뉴스도 거짓말했으니 말 다 했지. 그래서 나라가 망한 거 아냐?” “그러게. 아 맛있게 잘 탔네.” 전 사과를 깎으며 말합니다. “그래서 파업하는 거야. 거짓말 안 하려고 이제. 그래서 사람들이 KBS에서 하는 말을 믿을 수 있게. 그래야 내가 거기서 당당하게 드라마도 만들지, 안 그래?” 고모는 못 들은 척 말합니다. “야, 쓸 데 없는 얘기 하지 말고 7번 틀어봐! 지금 드라마 할 시간이야.”

 

유관모 KBS 드라마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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