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스토리 눈' PD 인격 모독적 발언...가능했던 이유는?
상태바
'리얼스토리 눈' PD 인격 모독적 발언...가능했던 이유는?
[현장] 출연자·제작진의 인권도, 촬영 윤리도 지켜지지 않는 시스템 비판..."근본적 해결책 마련해야"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7.09.19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저널=구보라 기자] 최근 장례식장 몰래카메라 촬영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출연자 인권을 무시하고 촬영 윤리를 저버렸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던 MBC <리얼스토리 눈>에 대해 독립PD와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이 <리얼스토리 눈>에 팽배했던 제작진에 대한 인격 모독, 방송 윤리나 출연자의 권익 보호는 신경 쓰지 않는 선정적 아이템 요구, 경쟁 시스템에 대해 폭로했다.

한국독립PD협회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특별대책위원회(방불특위)'와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방송 불공정 관행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제작사특대위)'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리얼스토리 눈>은 방송불공정사례 종합선물세트”라며 "이를 가능케 한 불공정 시스템을 바꿔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리얼스토리 눈> 관계자의 음성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내용도 없으면서 시퀀스를 갈라고 어디다 대고 지랄이야?”

“매우 분명해야지. 강남 아줌마들은 내 관점에 환장을 해”

“꼭 무식한 XX들이 아는 체를 하더라”

“나는 외주사도 우습게 알지 않지만 시청자도 우습게 알지 않아”

“니(제작진) 대가리 나쁘다고 고민해야 되는 이유가 어딨어?”

“XX놈. 야 어디까지가? 인터뷰나 틀어, 이 XX 참고 있는데 이것까지"

"무식한 새끼들의 자위행위라 하지. 마스터베이션 들고 흔드는 거 너 혼자 해. 할매들한테 하지마 니가 볼꺼 아니면"

▲ 방불특위, 제작사 특대위가 공개한 오디오 육성 파일 ⓒ화면캡처 
▲ 19일에 열린 '방송 불공정사례 종합선물세트 -MBC <리얼스토리 눈>을 고발한다!' 기자회견 중 한경수 방불특위 미디어연대분과장이 발표한 기자회견문 자료 화면캡처 

이처럼 <리얼스토리 눈> 관계자의 인격 모독적이고 성희롱적인 발언이 담긴 3분 34초가량의 녹취록이 기자회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녹취록 파일 상영이 끝난 뒤, 자리에 있던 독립PD,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의 표정은 매우 침통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리얼스토리 눈> 고발 내용을 발표하던 한경수 PD(방불특위 미디어연대 분과장,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프로듀서)는 “건너건너 상황을 전해 듣기만 했다. 들을 때도 ‘설마 그 정도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보니, 오죽했으면 제작진들 녹취를 했을까 싶다”며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 비참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사람 몇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시사실에는 남녀 다 있었고, 본사 관계자들도 여러 명 있다. 그런 좁은 시사실이 수십 개가 모여있다. 그래서 옆 방에서 무슨 프로그램 하는지 목소리도 다 들린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런 일들이 매번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에 관한 제작진들의 증언은 SNS상에 범람할 정도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독립PD협회가 <리얼스토리 눈>의 ‘과잉 취재’를 강하게 비판하며 무리한 취재 지시와 책임 전가를 비판하자, MBC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정했다. 하지만 이날 방불특위와 제작사 특대위는 녹취록, 외주제작사에 대한 책임 전가와 경쟁을 유도하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 등으로 전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관련기사: 09.01. "‘리얼스토리 눈’ CP 갑질, 김장겸 MBC의 현실")

<리얼스토리 눈>에서는 이같은 인격 모독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리얼스토리 눈>의 가장 극악한 면은 참여한 제작사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이른바 서바이벌 시스템에 있다”며 “리얼스토리 눈의 생존 경쟁 시스템은 결국 참여 제작사, PD, 작가들 모두를 고사시키는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8개 외주제작사가 경쟁하는 시스템 속에서, <리얼스토리 눈> 관계자는 자신이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프로그램에 대해 방송 보류를 내곤 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방송 보류를 받은 제작사 입장에서는 방송을 내기 위해서 선정적인 방향으로 추가 취재를 하거나, 방송 보류를 받고 제작비를 받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방불특위와 제작사 특대위에 따르면 이같은 시스템 속에서, <리얼스토리 눈>을 제작하는 독립PD, 작가들은 3~4개월 정도만 근무한 채 이 곳을 떠났으며, 방송 1회 만에 떠난 인력 또한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초, 독립PD협회로 무기명 서신을 보내온 MBC의 모 PD 또한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MBC의 모 PD는 “품질이 너무 떨어질 경우 방송사가 방송을 보류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없는 것을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도덕한 방식으로 취재하여 더 재미있게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라며 "불방된 자리는 다른 외주사에게 주어졌다. 열심히 하는 외주사는 더 자주 방송을 할 수 있었다. (생략) 특정 외주사가 이 체제로 인해 더 많은 수익을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구조적으로 불합리하다. 마치 살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로마 원형경기장의 글래디에이터가 되어야 한다. 이기면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지만 지면 죽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주제작사가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시스템 뿐만 아니라 MBC는  ‘프로그램 경쟁력 및 완성도 확보 방안 조항’을 통해 '신규 제작사는 경쟁 방송사가 시청률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요일 중 하루를 배정받아 방송을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한경수 PD는 “상대방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그 요일에 받는다. 그냥 들어와도 힘든데, 가장 잘 나오는 날에 배치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할 짓 안 할 짓 다 하게 된다. 이런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된 건 처음 봤다”고 비판했다.

▲MBC <리얼스토리 눈> 다시보기 화면. 711, 712, 715회는 다시보기가 되지 않는다. '해당 VOD는 신상정보 보호 및 출연자 보호를 위해 다시보기 서비스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있다. 713회는 해당 안내는 없지만 다시보기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 ⓒMBC <리얼스토리>눈 화면캡처
▲ 19일에 열린 '방송 불공정사례 종합선물세트 -MBC <리얼스토리 눈>을 고발한다!' 기자회견 중 한경수 방불특위 미디어연대분과장이 발표한 기자회견문 자료 화면캡처 

<리얼스토리 눈> 외주제작사에 대한 부당한 요구와 선정성 강요, 책임 전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경수 PD는 “<리얼스토리 눈>에서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공익적인 내용, 확정된 사실 보다는 출연자 개개인의 사생활 폭로하라’는 주문이 많았다”며 “취재처 승인 없는 촬영 유도, 개인 사생활 폭로, 살인적 노동 강요, 방송 당일 오전 시사 수정 및 재촬영 요구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선정성 강요’ 또한 <리얼스토리 눈>의 제작진들을 힘들게 한 부분 중 하나였다. 이제까지 총 716회 방송이 된 <리얼스토리 눈>은 대부분 개인 간 치정, 살인, 재산 분쟁, 사건 사고, 소송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사건을 꿰뚫는 눈을 통해 사건의 이면, 사회의 이면, 인간 심리 이면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찾아내는 방송’이라는 기획의도와는 많이 동떨어진 주제들이다. 

한경수 PD는 “사건을 다룰 때는 본인들이 허락하지 않아도 반드시 피의자와 피해자의 얼굴이 나와야하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들의 아픔을 찍어와야 한다. 출연자의 인권과 초상권의 보호란 여기서 그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며 "이것이 현재 공영방송 MBC 프로그램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그는 “716회 방송(2017년 9월 14일 방송 기준)을 했는데, 그 중 ‘다시보기 삭제’가 75건이나 된다. 전체 방송 분량의 10%가 넘는다. 출연자나 관계자들이 항의해서 이뤄진 일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거나 방송심의위원회에 신고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한 MBC는 선정성에 따른 책임을 외주제작사가 져야할 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리얼스토리 눈> 외주제작 계약서 중 일부 발췌한 내용에 따르면 ‘책임의 귀속’ 조항 “‘프로그램’의 제작부터 완성까지 제작의 전 과정에서 ‘을’의 귀책사유로 발생하는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은 ‘을’에게 있다”고 적혀있다.

해당 계약서 중 '위약금 및 손해배상' 조항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임 전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을'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에 관한 규정 등에서 정하는 간접광고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갑'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재조치 등을 부과받을 경우 '을'은 다음과 같이 위약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단, 위약금은 '갑'이 '을'에게 지급할 외주제작비에서 공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방불특위와 제작사 특대위는 “방송사의 이러한 책임 전가는 명백하게 부당한 일”이라며 “이미 지난 2008년 KBS를 대상으로 한 대법원 판례(손해배상 (기) 대법원 2008.1.17.선고 2007다59912판결)로 이미 확정된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리얼스토리 눈>은 일종의 치외법권지대로서 2017년 현재까지도 이러한 책임 전가와 이를 빙자한 착취행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 2008년 한국방송공사를 대상으로 한 대법원 판례에서는 방송사도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동 배상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PD저널 

"문제의 본질은 불공정한 시스템...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리얼스토리 눈> 나올 것" 

한경수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자의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프로그램이 제작된 배경에 대해 “문제의 본질은 불공정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녹취록의) 이 개인도 참 문제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방송사 안에서 수백 명, 수천 명이 일하는 한복판에서 3년 4개월동안 일어났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도 아무런 자정작용이 없었고. 한없이 나약한 을로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결국, 이러한 불공정한 갑을관계를 바꾸지 않는 한 제2, 제3의 <리얼스토리 눈>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리얼스토리 눈> 사례는 수많은 방송사 불공정 사례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관련 제보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발표도 이뤄질 예정이다. 

최영기 방불특위 위원장은 “이번 기자회견은 특정 방송사나 특정 프로그램을 겨냥하는 자리가 아니다. 어느 특정인을 마녀 사냥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방송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독립PD와 제작사들은 많이 분노하고 있다. 이제는 시청자들이 분노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성주 제작사 특대위 위원장도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외주 산업 문제에 대한 관심 환기를 강조했다. 제작사 특대위 상임고문인 김옥영 방송작가(스토리온 대표)는 “한 프로그램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방송 산업계가 굉장히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아무도 이를 중간에 바로잡지 않았기에 이어져왔다. 외주 산업과 방송사 간의 관계가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상하관계가 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외주 산업 생태계의 대혁신이 필요한 때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콘텐츠 업계는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방불특위와 제작사 특대위는 “한없이 나약한 ‘을’이기에 비인간적인 인격 모독과 갑질에도 불구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악몽같은 현실이 바로, 진짜 ‘리얼스토리’다. 지금 MBC와 KBS는 전면파업을 감행하며 방송 정상화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리얼스토리 눈>과 같은 방송계 내부의 적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방송정상화’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MBC는 <리얼스토리 눈> 관계자를 중징계할 것 △MBC <리얼스토리 눈> 관계자는 그동안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모든 제작진에게 석고대죄할 것 △MBC는 이와 같은 갑질과 횡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수립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 한국독립PD협회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특별대책위원회(방불특위)'와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방송 불공정 관행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제작사특대위)'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PD저널 

언론연대는 19일 오후 ‘MBC는 <리얼스토리 눈>갑질 PD를 중징계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연대는 "가해 PD의 막말과 폭언은 당사자 개인의 인격수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갑질 횡포를 가능토록 하는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방송사 본사와 외주제작사, 독립PD간에 공정한 관계가 정립되어 있다면 부당한 지시도, 막말도, 폭언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갑질을 유도하고, 방치해온 불공정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방통위는 MBC에 관한 감독권을 행사하라. 실태를 파악해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에 반영하라"며 방통위의 적극적 역할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언론연대는 "MBC가 우리의 정중한 요구에 응답해 사태해결의 의지를 보여주길 간곡히 기대한다. MBC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 시청자는 방송제작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갑질 횡포를 규탄한다. 시청자는 출연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 방송에 반대한다. 시청자는 외주제작사와 독립PD들을 쥐어짜고, 착취하는 불공정 방송 환경을 거부한다. 시청자는 방송생태계를 황폐화하고, 시청자를 우롱하는 MBC에 분노한다. 시청자의 인내를 더 이상 시험하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