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in 타루트⑨] 그런데 말입니다, 상중 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저널=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우선,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수상 축하합니다. 짝짝짝.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미디어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들에게 늘 많은 행복과 감동을 주는 상중 씨에게 보내는 많은 이의 감사장으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게 무리수인 비정상 정권을 내보낸 후, 상식의 사회를 힘내 만들어내는 중대한 국면에서, 오랜 시간 ‘블랙리스트’라는 말도 안 되는 국가폭력에 시달린 김미화 씨와 함께, 삶 즉 문화에 대한 공적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뜻이 아주 커 보입니다. 앞으로도 오래 우리와 가까이 하면서 우리 문화, 대중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양하게 살찌워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상중씨. 하하, 긴장은 마시고요. 갑자기 이런 편지 받아 당혹스러운가요? 결례가 안 되길. 다른 더 좋은 방도가 딱 떠오르지 않아, 그래도 제 마음은 꼭 전해야 하겠기에, 이런 편지 형식을 빌리게 됩니다. 바쁜 일정 마치고 귀가하거나 이미 집에 돌아와, 그때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편히 읽어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지난 번 제가 <피디저널>에 실은 칼럼, ‘세계의 아나운서는 단결하라’도 파업 중인 MBC 언론노동자들을 위한 응원영상 촬영차 상암동으로 이동하던 중에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짬 잠깐만 내 편지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답장은 필요 없습니다.

에스토니아라는 낯선 데에 방문교수로 와, 타르투 대학이라는 곳에서 계획과 달리 꽤나 바쁘게 지내는 탱자입니다. 고인이 되신 제 어머니가 ‘칠락팔락(七落八落)’ 돌아다니길 좋아해 늘 걱정이셨던 인간이죠. 갈피 잡을 수 없이 쏘다니는 행색 이 나이 먼 타지에서도 쉬 고쳐지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산책길에서 느낀 개인적 단상들을 갖고 이곳 유력 일간지 기자와 꽤 긴 인터뷰를 했는데, 무슨 까닭인지 독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방인 시각이 신선해선지 아님 동의 안 되는 대목이 많아선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가는데 마다 일내는 탱자. 어휴, 제 팔잡니다. 상중 씨는 어떻습니까?

어느 날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의 사무처장이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놨습니다. “전쌤 안 자면 보세요~ 쏘맥 홀짝이다 발견하고 훌쩍입니다 ㅎ.” 시차가 커 나중에 발견하게 된 겁니다. 궁금해 첨부한 메시지를 봅니다.

대체 상중 씨가 제 글을 갖고 뭘 어떻게 했기에 냉철한 사무처장께서 저리 훌쩍 거리기까지 했을까? 급히 동영상 틀어봅니다. 그리고 낭독하는 상중 씨 얼굴 바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특유의 목소리도 반갑게 듣습니다. 몇 번이나 봅니다. 틀고 또 틉니다. 마지막, “세계의 아나운서들은 단결하라!” 구호 외쳐주실 때는, 저도 모르게 찌르르 전율이 오기까지 했습니다. 눈가가 살짝 촉촉해집니다. 감정이 묘하게 일어납니다.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파업콘서트 응원 영상으로 김상중 배우께서 제 글 일부를 읽어주셨다는 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직접 내셨다는 사실도요.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오 마이 갓! <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이 내 글 읽고 낭독까지 해? 대박. 그때의 심정을 그대로 옮기니, 표현이 조악해도 양해해주십시오. 평범한 대중의 일원인 제겐 이런 접선이 경험하기 쉬운 일상의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와우!

우리 처장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강한 호소력. 뜻한 게, 말하고자 한 바가 즉각 강력한 포스로 전달됩니다. 유별난 공감능력. 상중 씨의 능력, 장기입니다.

아침인데도, 처장과는 반대로, 훌쩍이다 홀짝이고 싶어집니다. 이곳으로 올 때 선물할까 가져온 팩소주, 저보다 더 가슴이 쿵덕거린다는 아내가 말려 아쉽지만 포기합니다. 이런, 술도 안 하시는 분께 괜히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상중 씨. 왜 제가 그렇게 당신의 낭독에 감동했을까요? 제 글 감사하게 읽어주셔서? 유명인이 쏙쏙 포인트 잘 잡아 참 좋은 목소리로 멋진 낭독 영상을 만들어 주셔서? 그렇게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직접 내주셔서? 맞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모든 게 참 감동적입니다. 고마웠습니다. 명색이 글쟁이고 학생이자 선생인 제게 상중 씨의 선택은 아주 특별한 선물인 게 맞습니다. 최고의 피드백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며 놀라워하는 주변 사람들은 제가 감동한 진짜 이유, 결정적인 까닭을 못 봅니다.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 외면한 사람들은 더욱 그렀습니다. 상중 씨 행동의 의미를 헤아릴 수가 없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는 겁니다.

우선 상중 씨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왜 상중 씨의 낭독이 감동적인지 설명하고 싶은 목적이 사실 더 큽니다. 그랬잖아요. 상중 씨는 파업하는 공영방송 아나운서라는 약한 자, 소수자의 편이 선뜻 되어 줬잖아요. 자동기계이기를 거부한, 화려함도 초라함도 아닌 언론인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아나운서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굴욕감 느낀 자들에게 연민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분노한 집단을 따뜻이 위로하며, 행동하려는 이들과 기꺼이 손잡습니다. 부정을 고발하고, 진실을 외칩니다. 변화를 요구합니다. 대놓고 하기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일시적 동정이나 상대에 대한 지지 표시와는 완전히 다른, 함께 한다는 연대의 몸짓입니다.

싸구려 감상의 표현이 아니죠. 용감한 의지, 확고한 의식의 표식. 나는 아나운서 언론인이다. 파업 중인 당신들은 멋진 아나운서 노동자들. 우리는 아나운서 사회를 다시 꾸리기 위해 모두와 연대해 싸울 것이다. 세계의 아나운서들 그러하니 단결하라! 그런 생각을, 그런 마음씨를 전하는 낭독 영상인데 어찌 감동적이지 않겠습니까?

당당한 행동 멋집니다. 따뜻한 마음 씀씀이 참 좋습니다. 당신이 한층 가깝게 느껴집니다. 탱자와 상중 씨 사이 묘한 인연의 실, 접촉의 면이 생긴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글쓴이로서의 과한 반응이 결코 아닙니다. 탱자는 그걸 느낍니다. 아나운서 세계를 넘어 이 세계 모든 약한 자, 사람들의 고통, 모순 빚는 부조리에 관심 갖고 책임을 지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상중 씨와 정감이 통한다.

사회 변화를 몸소 실천하려는, 사회 공론화에서 보람을 느끼는, 너무나 사회적인 상중 씨가 보인다. 그런 생각을 당신은 탱자에게 갖게 합니다. 함께 삶. 어찌 당신과 내가 따로 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더불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낭독은 그런 교신의 영상입니다. 그 메시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탱자 쑥스럽지만 감사의 편지 미루지 않고 써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왜 사람들이 당신께 매료되는지, 왜 당신이 <그알> 진행을 이리 길게 맡을 수 있는지, 왜 <그알>이 시청자들로부터 계속 사랑을 받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개의 시간’을 버텨낸 대중들, 벌레들로 전락한 대중들의 삶, 그래도 죽지 않는 대중문화와 함께 하려는 결기. 시대와 교통하는 당신의 빼어난 감응능력에 신뢰를 보냅니다. 정말이지 상중 씨는 보람 느껴도 됩니다. 더욱 큰 책임감 가져주세요. 아직 파업 와중입니다. SBS도 뒤숭숭합니다. 건승하시고, 멋진 모습 다방면에서 계속 만나보겠습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