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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관리 컨트롤타워의 몰락

[픽션] 기레기가 형님이라 부른 사내②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l승인2018.03.16 12: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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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약간은 표정이 침울해진 그가 저장해 둔 문자들 중 하나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곧 모두 지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보내주신 응원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큰 도움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온 건 별세계전자 휴대폰의 품질을 극찬하며 대법관 탈락 소회를 전한 판사뿐만이 아니었다. 정관계는 물론이고, 언론계 유력 인사 상당수도 연신 이런 문자를 보내온다.

저널리즘이고 권력의 감시견이고 어쩌고 하지만, 최대 광고주 실세로 자신들의 목줄을 쥔 그 앞에서는 모두가 애완견일 따름이다. 별 수 없는 것들. 회장님의 성매매 동영상이 유출되어 세상이 발칵 뒤집어 졌을 때다. 그는 그때 받은 심심한 위로의 문자가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사장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팎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누워계시는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도 있고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갑니다.’

‘사장님 여납뉴스 이땡땡입니다.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대 별세계 그룹의 대외업무 책임자인 사장님과 최소한 통화 한 번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는 혈맹’ 어쩌고 하는 닭살의 메시지,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조잡하고 유치하며 낯간지러운 문자들도 많았지. 그는 가끔 이렇게 아부하는 것들이 가소롭고 웃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다 저들 좋아서 하는 짓인데. 나나 우리한테 나쁠 것 없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해 오직 별세계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겠다지 않는가.

광고로 도와주면 자기들도 우리를 기사로 도와주겠다. 그런 냉정한 딜이 아닌가. 윈윈, 기브 앤 테이크의 룰이다. 실제로, 광고 슬쩍 찔러줘봐. 척척 알아서 나쁜 건 기사에서 빼고 좋은 건 팍팍 뉴스로 꽂아 넣는 서비스가 바로 오지. 그는 몇 해 전 엠빙신 출신 별세계 전자 커뮤니케이션 사장이 보내준 문자도 아직 저장해 두고 있다.

‘사장님, 방송은 KMS 모두 다루지 않겠다고 합니다. 종편은 jtv가 신경 쓰여 김숙일 대표께 말씀드렸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신문은 말씀하신대로 자극적인 제목이 나오지 않도록 잘 챙기겠습니다.’

제일모찌 상장으로 별세계 집안 삼남매가 6조의 평가차익을 얻었을 때였나. 부회장 그룹 승계에 결정적인 제일모찌 일에 여론이 관심 갖는 건 별로 재미없었지. 아, 그렇게 모든 게 짝짝 커뮤니케이션 잘 되어 갔는데. 권력이 뭐야. 돈이 곧 힘인 세상. 정권도 손 내밀고, 언론도 살아남으려면 기레기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세상이었는데.

탁. 그가 최신형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곤 안락의자를 돌려, 어둠이 내리고 일루미네이션이 화려한 도심을 내려다본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다. 그런데 시국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뭔가 큰 일이 불어닥칠 것 같은 조짐이다. 들려오는 첩보도 수상쩍다.

피곤을 느낀 그는 눈을 감은 채 지난 십년을 잠시 돌아본다. 휘리릭. 역사의 시침이 막 검찰에 소환된 MB씨가 대통령에 오른 2008년하고도 7월로 돌아간다. 모두가 더위에 땀 뻘뻘 흘리고 있을 때다. 반면 별세계는 모처럼 시원한 휴가를 맞는다. 불안했던 특검이 다행히 풍선 꺼지듯 피식 꺼졌고, 신경 쓰이던 언론들도 멋지게 짝짝 잘 맞춰 주었다. 그가 또 큰일을 해냈다.

아들로의 후계자 승계, ‘차기 회장’ 만들기 프로젝트가 더욱 탄력을 받는다. 그에 맞춰 가신그룹들도 새롭게 들어선다. 아버지 K를 모신 그룹이 쳐지고, 아들 J를 보위할 신진세력이 빡 뜰 것이다. 세대교체. 실세 ‘5인방’ 명단이 거명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어찌 되나. 부회장 학수씨처럼 명줄이 끊어지고 마는가. 천만의 말씀. 별세계 홍보를 총괄 기획하고 언론을 관리해 온 팔팔한 그다. 그 쓰임새를 쉽게 포기할 재벌이 아니다. 용도가 있으면 킵하는 게 철칙. 느낌 좋은 정권도 들어섰고, 이제 제대로 공장 돌려봐야 하지 않겠나.

이듬해 초, 그가 별세계브랜드관리위원장에 임명된다. 엠빙신 출신 인용이 전자 부사장과 투톱체계를 이룬다. 그래서 별세계에서 언론계로 흐르는 모든 정보가 그들을 통하고, 거꾸로 언론계의 광고 수주도 전부 이들의 손을 거칠 것이다. 젊은 피로 새 정권 구축에 나선 아들 K의 콜을 받은, 그에게 언론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진다.

“별세계전자, ‘대변혁 신호탄’ 쏜다” “‘뉴 별세계’ 빨라진 발걸음” “별세계, ‘글로벌 위기대처 진용’으로 일신” “별세계전자 임원 성과급 반납…비상경영 고삐 조인다” “별세계, 이익내도 버릴 건 버려라…미래경영 속도 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이거다. “‘별세계 브랜드 파워’ 코카콜라 뺨치게.”

브랜드 관리. 가끔 기름만 쳐주면 된다. 약한 놈에게는 큰소리 뻥뻥 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길 줄 아는 언론. 가끔 깐죽거리는 신문들이 몇 개 있었지만, 무시하면 된다.

브랜드 관리와 언론 플레이의 이치는 간단하다. 별세계가 확 바뀌고 있다는 긍정적 이미지의 뉴스들이 마구 쏟아지도록 하는 적극적 플러스 전략. 그룹 홍보에 별 도움 안 되는 뉴스는 최소화시키는 소극적 마이너스 전략. 그 두 가지를 적당히 병행하면 된다. 광고라는 목숨 줄, 돈줄이 키다.

아들 체제의 공식화를 위해 회장이 깜짝 일선에 복귀했다. 그를 보위할 여섯 개 팀으로 짜인 미래전략실이 새롭게 발족한다. 그는 곧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전진 배치된다. 옛 구조본에 맞먹는 별세계 관제탑의 명실상부 최고 실세로의 등극이다. 최대 광고주 별세계의 컨트롤타워에 줄 대려고 움직이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회장이 갑자기 픽 쓰러졌다. 하지만 아들 J로 모든 게 착착 승계되고 있으니 별 상관은 없어. 호흡 괜찮던 MB의 시절이 갔지만, 더 협조적인 그네 정권이 들어서 괜찮았고. 기레기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그런데…

딩동.

꿈인지 현실인지 흐릿한 상태에서 들려오는 휴대폰 문자 전송 소리에 그가 눈을 뜬다. 누구야? 요즘 부쩍 침침해진 눈으로 메시지를 확인한다.

‘사장님, 바쁘시게 잘 지내시나요? 식사 한번 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인데 혹 틈 내실 수 있을는지요? 동지인 엠빙신 김 본부장과도 같이 가려 합니다. 여납뉴스 조상무 드림.’

젠장. 귀찮아. 만나 한가로이 노닥거릴 여유가 어디 있어. 멍청한 정권에 바보 같은 기레기들뿐이야.

사실 그는 요즘 기분이 안 좋다. 돌아가는 꼴이 수상하다. 순시리 게이트가 터지고, 촛불들이 광장으로 마구 몰려나왔다. 그네보고 당장 내려오라 왁왁 댄다. 대다수 기레기들이 잘 도와주고 하겠지만, 그래도 몇몇은 컨트롤이 잘 안 된다.

별세계 커뮤니케이션 컨트롤타워로서 걱정이 많다. 내일 당장 문자들을 싹 정리하고, 미래전략실 차원의 강도 높은 비상대책을 강구해야겠어. 설마 별세계를 치고 들어올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코트를 걸친 그가 집무실을 나선다.

아뿔싸.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이 별세계의 말타기협회 지원과 관련해 미래전략실에 들이닥친다. 기레기들이 형님이라 모신 사내의 서류를 꼼꼼히 뒤지며, 그가 쓰던 휴대폰도 압수해 간다. 그리고는 그가 고생해 지운 3년 동안의 문자메시지를 간단히 모두 복구할 것이다. 아차, 차명폰이나 대포폰을 쓰는 건데. 뒤늦은 후회였다.

이 소설은 세상에 공표된 '그'의 휴대폰 속 문자들 중 ‘기레기’와 관련된 내용으로 꾸민 허구의 이야기다. 진실 여부의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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