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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취재한 외신기자도 트라우마 겪었다”

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 장영주 감독, “‘택시운전사’ 외신기자 촬영 영상으로 광주 진실 알리고 싶어” 박수선 기자l승인2018.05.11 12: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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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KBS스페셜> ‘푸른 눈의 목격자’편에서 힌츠페터를 조명한 장영주 KBS PD는 그 인연으로 <5‧18 힌츠페터 스토리> 연출을 맡게 됐다. ⓒ김성헌

[PD저널=박수선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는 외신기자 힌츠페터가 김사복 씨의 도움으로 광주를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힌츠페터의 실제 광주 취재기는 그 뒷이야기가 더 극적이다.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22일 독일 ARD 방송사에 촬영 영상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광주로 향했다. 계엄군에 희생된 참혹한 주검을 보고 전남도청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모습도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힌츠페터가 세 차례에 걸쳐 기록한 ‘광주의 진실’은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1980년대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외신기자 힌츠페터가 1980년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2003년 <KBS 스페셜> ‘푸른 눈의 목격자’편에서 힌츠페터를 조명한 장영주 KBS PD가 연출을 맡았다. <KBS스페셜> 취재로 처음 만난 장영주 감독과 힌츠페터는 이후로도 한국과 독일을 왕래하며 관계를 이어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2일 만난 장영주 감독은 “힌츠페터의 진짜 취재기는 <택시운전사>보다 훨씬 극적이다”며 “힌츠페터는 당시의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기자였지만, 개인적으로는 5‧18 취재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힌츠페터는 1980년 당시 기자의 사명을 다한 결과로 특종을 했지만, 직접 목격한 광주의 참상은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영화에서 힌츠페터는 "1980년 광주의 참혹한 모습은 베트남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회상한다.   

장영주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힌츠페터의 진심을 알게 됐다“며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사주를 받고 일어난 폭도로 알고 있는 젊은 청년들이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KBS가 제작을 맡았다. 지난해 하반기 KBS미디어 측에서 장영주 감독에게 처음 제의을 해오면서 영화 제작이 성사됐다.

KBS가 간혹 대형 다큐멘터리를 영화화한 적이 있긴 하지만 <5‧18 힌츠페터 스토리> 사례와는 다르다. 장영주 감독은 “보수 정권이 계속 이어졌다면 (이 영화 개봉이) 가능했겠느냐”고 씁쓸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음은 장영주 감독과의 일문 일답.

▲ 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이 영화를 힌츠페터에게 바칩니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김성헌

<5‧18 힌츠페터 스토리>가 어떻게 기획됐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9월께 KBS 미디어 쪽으로부터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고사했다. 주인공인 힌츠페터는 이미 고인이 됐고, 광주 영상은 저작권 문제가 복잡했다. 15년 만에 <KBS스페셜> ‘푸른 눈의 목격자’편의 ‘개정 증보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서 영광이었지만 본편보다 나은 속편을 만들 수 있을지 부담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2016년 힌츠페터 기자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못갔다. 개인적으로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 독일에 있는 힌츠페터 묘소를 찾았다. 힌츠페터의 발자취를 되짚으면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진정성을 알게 돼 다행이다.

처음 제안을 받은 시기는 영화 <택시운전사> 개봉 즈음이다. 영향을 받은 건가.

<택시운전사> 시사회에 <KBS 스페셜> 촬영을 했던 카메라맨과 함께 갔는데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실제 힌츠페터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재밌는데, 대중의 눈높이를 위해 이야기를 단순화했다는 생각도 했다.  <택시운전사> 제작과 개봉 즈음에 제안을 받은 건 사실이다.

실존인물인 힌츠페터와 김사복 씨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택시운전사>와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택시운전사>가 김사복의 이야기였다면 이건 힌츠페터의 이야기다. 알고 보면 <택시운전사>보다 힌츠페터의 이야기는 훨씬 극적이다. 김사복의 도움을 받아 광주에 한번 갔다 온 정도가 아니다. 힌츠페터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통해 긴박한 당시 상황과 참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힌츠페터 기자가 유명을 달리한 뒤, 힌츠페터를 다시 조명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2003년 <KBS 스페셜>을 제작한 뒤에 어떤 책임감이 있었다. 힌츠페터에게 받은 자료도 아직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방식이 영상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힌츠페터와 광주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집필을 구상하고 있었다. 제목은 ‘힌츠페터의 추억’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볼 예정이다.

이번 영화를 KBS가 제작을 맡은 것도 눈길이 간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좀 더 일찍 영화로 만들지 그랬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정권이 계속 집권했다면 이 영화 개봉이 가능했을까 싶다. 실제 힌츠페터의 한국 활동은 정권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 힌츠페터가 한국에 오면 집에 초청을 하기도 했는데 2007년 이후엔 힌츠페터를 보지 못했다.

제의를 받아들인 뒤에도 영화 제작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다.

주인공은 고인이 됐고, 2003년 찍은 30분짜리 테이프 12개밖에 남은 게 없었다. 어떤 내용을 영화에 담을지 난감했다. 가장 애를 먹은 건 예전 광주 자료 화면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2003년까지만 해도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엄격하지 않았다. 힌츠페터가 촬영한 다큐 영상도 힌츠페터가 모두 찍은 게 아니었다. 독일 ARD 방송사도 다른 방송사와 서로 영상을 교환하는 것으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더라. 영상의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고 구매하는 절차가 꽤 까다로웠다.

▲ 장영주 감독이 2016년 힌츠페터 부고 소식을 듣기 한 달 전에 힌츠페터 부인으로부터 받은 엽서. ⓒ김성헌

영화는 장영주 감독이 독일에서 ‘힌츠페터’의 부고 소식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레이션에서 개인적인 감정도 엿보이는데.

2016년 힌츠페터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픈 감정보다는 이 소식을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부고 소식을 듣기 한 달 전에 힌츠페터로부터 엽서를 받았는데, 독일에 오면 자기가 운전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게 아닌가 싶었다.

생전에는 취재원이라는 이유로 감정적인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까 미안함이 밀려왔다. 내가 만약에 타국의 경찰에게 부상을 당하고, 은퇴를 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돌아보는 시간도 됐다.

이번 영화에서 새롭게 공개되는 영상이 있나.

독일에서 만난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에게 힌츠페터가 광주 민주화운동 취재로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힌츠페터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취재가 특별했다고 말한 외신기자들이 여럿 있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한 선량한 시민’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취재하다 만난 대학생이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을 겪으면서 충격도 컸을 것이다.

영화에서 처음 공개되는 영상인데, 힌츠페터가 1986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광화문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확보했다. 수원에 있는 KBS 영상자료실에서 발견한 영상이다. 영상을 보면 힌츠페터가 시위를 진압한 경찰에 적개심이 드러내는 게 보인다. 시위 현장에서 목과 허리를 다친 힌츠페터는 독일로 돌아가 큰수술을 받고, 결국 부상으로 은퇴한다. 수술을 마친 뒤 부인에게 “광주에서 만난 군인들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있는 망월동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말도 광주 학생들에게 일종의 동지의식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래 전의 영상이라 화질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작업도 필요했을 것 같다.

힌츠페터가 촬영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은 촬영 원본에 독일 방송사에서 입힌 내레이션, 한국에서 번역한 자막과 내레이션 등이 겹겹이 추가된 것이다. 극장 개봉을 준비하면서 힌츠페터가 찍은 필름의 사운드를 제대로 살리고 싶었다. 힌츠페터 촬영 영상은 1980년 광주 자료 화면 중에서도 가장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에 온 녹음기사가 녹음을 따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 영화 제작에 참여한 녹음 엔지니어들도 80년대 영상인데 이렇게 소리가 깨끗하냐고 놀랐다.

영상과 소리를 분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언제 촬영했는지 알수 없는 영상들이 내레이션을 걷고 나니까 촬영 날짜가 선명하게 나왔다. 광주 시민들의 박수 소리,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는 예전 다큐에선 들리지 않았는데, 제법 또렷하게 들린다. 날짜별로 급박해지는 그날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본다.

▲ <5‧18 힌츠페터 스토리> 연출을 맡은 장영주 감독 ⓒ김성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힌츠페터 기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에 독일에 있는 힌츠페터 묘소에 가봤더니 누군가가 ‘광주 피플 리멤버 유’라는 쪽지를 달아놨더라. 광주 시민들이 힌츠피터를 기억하고 있고, 당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VIP시사회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초대했다. 어떤 이들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나.

젊은 친구들이 보러 왔으면 좋겠다.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은 전라도를 비하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내용이다. 아직도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이 광주 시민들을 부추겨 폭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믿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독일의 기자가 객관적으로 촬영한 영상을 통해 광주의 진실과 마주했으면 한다.  


박수선 기자  susun@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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