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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공판 '생중계' 보도...'총체적 난국'

일방 증언 실시간 보도로 편향 키운 보도 다수 ..."위력에 의한 성폭력 본질 못 짚어" 이미나 기자l승인2018.07.27 19: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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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던 중 여성단체의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미나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1심 재판이 27일로 마무리됐다. 안 전 지사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뒤 줄곧 지적받은 '선정적 보도'·'2차 가해' 등의 보도 문제는 여섯 차례 이어진 공판 과정에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첫 공판에서부터 고소인의 과거 모습을 부각하는 영상을 사용하거나 사생활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진료기록을 부각하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 안희정 공판 보도 '피해자 부각' 여전)

이어진 공판에서도 언론은 생중계를 하듯 공판 과정을 연달아 기사화했다. 첫 공판부터 27일 오후까지 안희정 전 지사의 공판과 관련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송고된 기사는 2천여 건에 달한다. "국정농단 보도도 이렇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27일 결심 공판에서도 고소인의 진술 한마디 한마디를 인용한 속보들이 등장했다.

TV조선 시사 프로그램인 <이것이 정치다>의 경우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전체 방송시간(681분) 중 20.7%에 달하는 141분을 안희정 전 지사 공판 관련 보도에 할애했다. 

▲ 27일 언론은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 고소인의 진술을 '속보'로 연달아 보도했다. ⓒ PD저널

고소인의 증인 신문 비공개 요청으로 피고인 측의 증언만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재판은 고소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고소인을 향한 '흠집 내기' 증언들도 여과 없이 보도됐다.

11일부터 12일간 쏟아진 '호텔 예약' 관련 보도가 대표적이다. 채널A의 <"김지은이 호텔 직접 예약">부터 <국민일보>의 <안희정의 반격 "김지은이 서울서 자고 간다며 호텔도 예약">, <중앙일보>의 <안희정 측근 "김씨가 서울서 자고 간다며 직접 호텔 예약"> 등 여러 언론사가 안 전 지사 측 증인의 말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고소인의 과거 업무에 대한 이해 없이, 안 전 지사 측 증인의 발언 중 자극적인 부분만을 받아쓴 전형적인 '따옴표 저널리즘'을 보여주는 보도들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6일 "피해자가 직접 호텔 예약을 했다면 '성적 관계'에 적극적으로 동의했을 거란 암시를 주는 보도"라고 지적했다.

안 전 지사 측 증인의 발언을 근거로 '반격' '새 국면' '반전' 등을 제목으로 단 기사들도 다수였다.

KBS <본격화된 안희정의 반격, 그는 성공할까>, <한국일보>의 <반격 나선 안희정…증인 "안희정·김지은 격의 없이 대화, 깜짝 놀랐다">, <서울경제>의 <"안희정과 김지은, 격의 없었다" 반전 증언···새 국면 맞나> 등은 모두 피고인 측 증인의 주장만을 바탕으로 재판을 중계하듯 표현했다.

피고인의 부인이 출석하는 것이 재판의 중요한 분기점인 양 보도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도 적지 않았다.

지난 16일 방송된 TV조선 <이것이 정치다>에선 아예 "이번 재판의 결론은 김지은과 민주원의 싸움"이라는 패널의 발언이 등장했다. 같은 날 방송된 <보도본부 핫라인>에선 피고인과 고소인, 그리고 피고인의 배우자 사진을 삼각형 구도로 세워놓고 세 사람이 삼각관계에 놓였던 것처럼 묘사했다.

▲ 16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화면 갈무리(고소인 얼굴은 < PD저널 >에서 따로 모자이크 처리함) ⓒ TV조선

이 같은 보도들은 사건을 불륜이나 치정 사건으로만 소비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5일 보고서에서 "피고인의 범죄 여부를 지워버린 채 성폭력 범죄를 피해자를 포함한 '여성들끼리의 싸움'으로 규정했다"며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이름은 지우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이어지면서 고소인이 받은 2차 피해는 상당했다. 재판부가 여러 차례 언론에 자제를 요청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고소인도 결심공판에서 "피고인과 피고인을 위해 이 법정에 나온 그 사람들의 의도적인 거짓 진술들로 더없이 괴로웠고, 그들의 허위 주장은 여과 없이 편향되어 언론에 실렸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는 지난 12일 <서울경제> <서울신문> <뉴데일리> <국제신문> <중앙일보> <국민일보> <뉴스1> <스포츠한국> 등 고소인에 대한 2차 피해를 유발한 '보도리스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언론시민단체와 언론학자들은 이번 공판에서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빙자해 인권 침해적 보도를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2014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만든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주의사항이 담겨 있음에도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긴급 토론회에서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포털을 중심으로 뉴스가 소비되는 환경에선 '강력한' 제목을 내세운 '따옴표 저널리즘'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봤다.

김 교수는 "보도 대부분이 증언을 직접 인용하는 식인데, '(증인이) 말한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니 사실보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 같은 보도는 사건의 일면만을 전할 확률이 크다. 독자들에겐 (사건을) 편향되게 이해하게 하는 프레이밍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는 "이번 사건은 피고인의 유명세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 신장에 기여할 것인지의 측면에서 보도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미투' 운동 이후 일어난 변화를 법원이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지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미나 기자  neptune@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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